여러 신비주의 사상이나 뉴에이지, 신지학, 철학, 심리학, 종교 등에서 영혼은 층 구조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에테르체나 아스트랄체 같은 용어들은 이러한 사상들에서 유래된 것인데, 그러한 다층적인 구조로 영혼의 의식구조를 설명하며 영혼이 성장함에 따라 영혼의 몸체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되어 가는지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임사체험이나 영혼퇴행이나 유체이탈의 자료들을 보면 영혼을 다층구조로 분류해서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비주의 사상이나 철학, 전통적인 종교들은 사상이나 신앙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인 틀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체계 중에는 깊은 영적 체험과 통찰을 통해 형성된 것도 있겠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론들도 있을 것이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질된 부분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틀에 갇힌 사상이나 철학, 종교 등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영혼의 구조와 깨달음에 대한 부분은 다양한 사상들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공통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많기도 하고 볼만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 분석을 좀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한두 가지의 사상에서 나오는 내용들이 아니고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사상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들만을 정리하고 추려내어서, 그 내용들을 기반으로 저의 영적 견해를 적은 글이며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영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부분들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웹에서 검색해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 통합하고 추론을 해서 내린 결론이기는 하지만, 근거도 부족하고 절대 확실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꼭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영혼의 몸체의 발달 수준에 따라 영혼이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성향들은 실제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현실적으로 잘 설명해주기도 하고, 특히 깨달음에 대한 부분은 제가 평소에 생각을 해왔었던 것들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이 글은 꼭 영성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사람의 성격이나 자질, 재능, 심리, 인격 등을 철학적이고 이론적으로 해석을 해놓은 글이니 한번쯤 읽어보시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 신비주의 사상이나 뉴에이지, 철학, 신지학, 종교에서는 영혼은 층 구조로 이루어진 여러 몸체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혼의 구조가 제각각 다르게 묘사되어 있고 몸체의 개수나 역할은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가장 낮은 육체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올라갈수록 체가 미묘해지고 고차원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육체 에너지의 조절과 균형을 담당하는 에테르체나 감정적인 경험을 저장하고 표현하는 아스트랄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환생을 할 때는 그 체들을 입고 태어나게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런 하위체들은 점점 소멸하거나 상위체에 통합이 된다고 하는데 개인의 영적상태와 경험에 따라 소멸하는 시간이나 과정은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스트랄체가 소멸하게 되면 인간적인 감정은 사라지게 되지만, 더 높은 차원의 평화와 조화 같은 정제된 감정들은 유지되게 됩니다.
하위체가 소멸하는 시간이 다른 이유는 사람마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체와 더 깊이 상호작용하고 그것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가 모두 다르다보니, 많이 사용하는 체일수록 에너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육체적 경험에 강하게 의존하며 물질세계에 대한 집착이 크다면 에테르체나 아스트랄체에 남아 있는 에너지 패턴도 그만큼 강해지게 되고, 반대로 영적으로 성숙하고 물질적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 체들의 에너지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사후에 하위체들이 더 빠르게 소멸하거나 상위체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진보된 영혼일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체들이 더 미묘하고 덜 물질적이기 때문에 감정적, 에너지적 잔여물이 적고 더 순수한 에너지 상태로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최면영상을 보면 영혼들은 이 과정을 ‘무거운 옷을 벗고 천상으로 올라간다’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하위체들을 ‘무거운 옷’으로 많이 표현을 하더군요.
하위체들이 느리게 소멸하게 되면 그만큼 중음계나 하위 아스트랄계에 오래 머물게 되어 혼란이 생기기도 하고, 그 영혼이 다시 환생할 때 하위체의 잔여 에너지나 감정적 패턴을 가지고 올 수 있어서 다음 생에서도 영향을 받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는 사후에 안내자 영혼을 만나게 되면 영계로 데려가기 전에 보통 지상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충분히 준다고 하는데요.
영계에 올라가서 이전 삶을 되돌아보고 다음 환생도 준비해야 하고 영계에서의 또 다른 배움을 위해 해야 할 일들도 있기 때문에, 안내자 영혼이 너무 오래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런 곳에 오래 있지 말고 자신이 가야할 높은 차원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정상적인 곳으로 가게 되면 먼저 죽은 가족과 재회하기도 하고 지난 생애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도 하고 안내자 영혼이나 친구 영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는 원래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살던 차원으로 가게 되고 상위자아와 합일을 하게 됩니다.
중간계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고차원으로 바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 물질적 소유나 부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좋고, 명상이나 내면탐구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도움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미움, 분노, 두려움, 탐욕 등의 낮은 진동수의 강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많이 가지고 살게 되면 아스트랄체에 그 에너지들이 남을 수가 있기 때문에, 되도록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한을 가지지 말고 수용하고 용서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타인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에고에서 벗어나 하위체의 에너지 패턴을 약화시키게 되어 매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수함, 소박, 사랑, 지혜, 용서, 자비와 같은 높은 진동수를 가지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게 되면 상위체들의 에너지가 더 활성화가 많이 되게 되고 하위체들의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하위체가 빨리 소멸하게 되어 높은 차원으로 빠르게 올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중간계로 들어간 영혼이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을 자각하는 것라고 하는데,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해야하고 물질적 삶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차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고, 그 곳으로 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데요.
안내자나 수호천사들은 항상 자신의 주변에 있어서 부르면 도와주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유체이탈을 했을 때 가끔 도움이 필요하면 마음속으로 수호천사를 부르기도 하는데, 저차원만 아니면 바로 말을 걸어주는 경우가 많더군요.
차원이 너무 낮은 곳에 있으면 고차원과 진동수의 차이가 너무 커서 고차원의 존재들이 잘 보이지도 않고 그들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가 않습니다.
차원의 높이에 따른 고차원 존재와의 소통에 대해서는 제가 유체이탈을 하면서 정말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헤매고 있는 영혼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차원에서 내려와 활동하고 있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혼들은 매우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고 진심으로 도우려는 에너지가 느껴지게 되는데요.
그런 느낌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저급령들과 구분하시면 되고,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안내를 받으시면 됩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자신의 차원이 너무 낮은 곳에 머물러 있으면 고급령들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의식의 진동수를 높여주어야 하는데요.
기도나 명상을 해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평화가 찾아오게 되고 차원이 높아져서 고차원 존재들이 접근하기가 더 쉬워지게 됩니다.
만약 살아생전에 어떤 사람에 대한 원한이 있었다거나 엄청 미워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에 대해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과 자비심이 생기게 되어 진동수가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살아생전에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특히 순수하고 따뜻했던 기억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빛을 생각하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요.
빛은 영성에서 신성함, 의식의 상승, 보호의 상징으로 간주되는데 그 빛이 더 높은 차원으로 가는 의식의 통로를 열어주게 됩니다.
빛을 생각해서 고차원으로 가는 길을 여는 방법은 영성에서 많이 언급이 되고 있기도 한데요.
제가 유체이탈 한 상태에서 가끔 차원을 높이기 위해 실제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하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체이탈을 해서 어떠한 차원에 있을 때 빛을 떠올리면 주변이 엄청 밝아지거나 유체가 공중으로 급상승하면서 높은 차원에 진입하기도 하고, 매우 밝은 빛으로 이루어진 동그란 웜홀이나 터널 같은 고차원으로 가는 통로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차원을 높이기도 하고 평소에 듣던 음악 중에 진동수가 높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떠올려도 도움이 되더군요.
그리고 자신과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카르마의 무게를 덜어내는 효과도 있어서 차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혹시라도 사후에 그런 곳에 가게 된다면 이 글을 잘 기억해두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영계에는 수많은 층들이 존재하는데 죽고 나서 중음계나 아스트랄계를 벗어나서 정상적인 영계로 올라가면 영혼이 입고 있는 여러 몸체 중에 가장 발달이 되어있고 활성화되어 있는 체와 진동수가 일치하는 차원에 머물게 된다고 합니다.
영계에서 각 차원은 그 차원에 속하는 영혼들이 공유하는 의식 상태와 에너지를 반영하고 있어서, 영혼이 가진 에너지 패턴과 의식 수준이 해당 차원의 에너지와 공명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요.
이는 마치 물리적인 법칙처럼 작용하는 것인데 물리적으로도 같은 진동수끼리는 서로 공명하는 원리와 비슷한 것입니다.
영혼이 가진 진동수와 일치하지 않는 차원에서는 그 차원이 제공하는 에너지가 영혼에게 부담스럽거나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머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영혼은 모든 체를 입고 영계에서 살아가지만 영혼들마다 진화정도에 따라 그 체들의 발달 정도가 모두 다릅니다.
영혼의 몸체들의 속성과 역할은 약간 중복되는 부분들도 존재하지만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각각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요.
영혼의 몸체를 분류하는 이름이나 개수는 사상이나 철학에 따라 모두 다르지만 이 글에서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세 가지로 단순화하고 “멘탈체”, “직관체”, “근원체”라는 명칭을 임으로 만들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멘탈체]
멘탈체는 논리적인 사고나 분석, 판단, 추론, 이성, 지적활동을 담당하는데 일반적으로 영혼의 지성이 발달하게 되면 이 체가 강화되고 확장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학습하거나 수학이나 물리학 등을 배우면서 논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문제해결 등을 하게 되면 이 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높은 수준의 철학적, 영적 사고를 다루는 상위 멘탈체와 일상적인 사고와 감정, 분석적 이성을 담당하는 하위 멘탈체로 구분짓기도 합니다.
이 체가 발달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문제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지식에 기반 한 의견을 제시하는데 능숙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데요.
감성보다는 이성에 근거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리려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거나 높은 학위가 있을 수도 있고 사업적인 수완이 좋아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수도 있겠죠.
이 체는 인지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인지력은 자기인식, 생각, 학습, 기억, 주의력, 문제 해결, 의사 결정과 같은 모든 정신적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지력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이며, 살면서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모든 행위들이 이 체와 관련되어 있는데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런 능력들이 실제로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러한 능력은 뇌의 발달여부와도 관계가 있긴 하지만 육체적인 능력이기 이전에 영적인 차원에서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들을 영혼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윤회를 하면서 많은 경험들이 쌓이게 되고 그런 능력들이 좋아지게 되면 이 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지력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 자기 인식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철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도 하는데 ‘자신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 그리고 내면적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사고 과정과 내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인데요.
누구나 항상 하는 생각이고 사람마다 다 똑같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을 관찰해 본 결과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했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객관적으로 보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생각의 깊이는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자기인식력이 좀 부족한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앞뒤가 안 맞거나 비합리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좋은 결론으로 가지 못하고 계속 갈등이 반복되거나 답답한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대화가 불균형해지거나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무례함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되는데요.
이기적이라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인식력이 부족해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도 있고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윤회를 하면서 자기 인식능력이 좋아지게 되면 생각이 논리적이거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고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또한 자신이 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주게 되는지에 대한 인식력이 좋아지게 되면 상대방은 대화의 흐름이 부드럽고 편하고 소통이 잘 된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대화할 때 그런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성격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이 수많은 윤회를 통해 성장하고 배우면서 터득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나는지, 우울한지 등의 마음의 상태를 인지하는 능력에도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게 생활화되어 있고 익숙해져 있다 보니, 자신이 듣기 불편한 말투나 거친 표현을 한다는 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꼭 소리를 질러야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은 말투나 표정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에너지적인 차원에서도 다 느껴지기 때문에 상대방은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정중하지 못하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스스로는 그걸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대인관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생기게 되고 그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자기성찰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은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전조증상들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자기인지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그런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면 스스로 인지를 하고 병원에 가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하고 마음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걸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뭔가 좀 이상함을 느끼지만 뭔지 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병이 깊어지게 되는데, 그 때가 되면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떨어지게 되어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위해서는 정신력이나 문제해결 능력도 중요하지만 자기 인지 능력도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인지능력이 좋아지게 되면 더 깊은 자기 인식이 가능해서 자기성찰이나 자아실현이 가능해지고 감정통제 능력도 함께 향상된다고 하는데요.
특히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에고와 참 자아를 구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우주 전체와의 연결을 깨달아 영적성장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인식이 없다면 내면의 상처, 감정적 패턴, 부정적인 생각 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영적 진보가 방해받을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인지할 수 있어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성에서는 ‘현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언급이 되어 있는데 자기 인식력이 부족하면 의식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어 과거의 상처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항상 현재에 살아가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데요.
그건 물리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시간에 존재한다는 개념일 뿐이고, 영성적으로 보면 물질적인 시간 개념보다 정신적인 시간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육체는 현재에 존재하더라도 정신이 과거의 상처와 집착에 얽매여 있다면, 그 사람은 현재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요.
의식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마음과 감정의 흐름을 인식하고 그것에 휘말리지 않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현재 순간에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에 머무는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고 깨어있는 의식 상태에 더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존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나 인내심이 필요한데 그런 능력이 좋아짐에 따라 멘탈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어떠한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할 때 사람들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나 집중력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그 일을 해도 금방 질리고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몇 시간 이상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성격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한 부분들도 영혼의 멘탈체의 발달유무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목표를 세우게 되면 사람마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건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감량에 성공하고 요요현상 없이 계속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멘탈체의 속성 중에 인내심이 매우 발달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멘탈이 강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임감도 멘탈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요.
책임감은 감정적인 충동보다 계획적이고 신중한 행동을 요구하므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평가하여 행동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임감이 좋으려면 자신의 행동이 타인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사랑과 공감과 같은 감성적인 면도 필요하기에 직관체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책임감이 다른 이유도 영혼의 이러한 특징 때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직관체]
그 다음으로 높은 체는 “직관체”인데 영적 직관, 지혜, 통찰, 통합, 사랑, 자비와 같은 높은 차원의 영적 특성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이 체는 직관적 통찰과 영적 진리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개인의 자아를 넘어서 타인이나 모든 생명체와 연결성을 느끼고 더 높은 차원의 통합된 자아를 가지게 합니다.
직관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멘탈체와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인데요.
멘탈체만 발달한 사람과 직관체가 함께 발달한 사람은 대화를 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주로 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의 추론이나 직관이 필요한 질문을 하면 질문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직관적인 느낌보다는 경험과 논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많아 보일지라도 통찰력 있는 답변을 얻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이 책에서 보지 못했거나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강하게 부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증명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한다면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멘탈체가 발달한 사람은 계속 증거 자료를 요구하게 되고,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느낌으로 거의 확실하다고 알고는 있지만 사람들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지식에 기반해서 논리적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 믿지 않는다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는 학자들의 견해를 완전히 신뢰하거나 신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데서 오는 불확실성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멘탈체만 발달한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사랑의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떠한 판단을 할 때 과도하게 이성적이거나 기계적인 느낌을 받을 수가 있어서, 판단은 잘 하는 것 같지만 조금은 차갑거나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복잡한 사고나 추론을 해야 할 때는 뇌보다 영혼의 사고능력이 많이 발휘가 되게 되는데, 영혼마다 발달한 몸체에서 생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직관체가 발달한 영혼은 멘탈체만 발달한 영혼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상위영체를 동시에 사용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매우 직관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은 지식에 기반을 둔 논리적인 생각을 초월하여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어떠한 직관적인 느낌이나 촉에 많이 의존해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고장 난 장비를 수리하거나 프로그램 버그를 잡아야할 때,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강력한 직관으로 매우 빠르고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통합적인 통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직관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인데요.
통찰력은 복잡한 주제나 상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여 그 안에 숨겨진 의미나 연결성을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은 꿈, 자각몽, 유체이탈, 원격투시, 임사체험 등의 영적체험들을 해석을 할 때 서로 분리해서 전혀 다른 체험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연결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따로따로 분석을 해보려고 해도 깊이 있게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통찰력이 발달한 사람은 그 체험들은 의식의 상태에 따라 경험하는 현상이 조금씩 다른 것일 뿐, 결국 의식의 측면에서 봤을 때 같은 체험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의식의 진동수와 차원의 높이가 달라서 체험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 체험들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굳이 따로 분리해서 설명을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도 못하고, 그런 것을 분류해서 분석을 하는 것보다 그 체험들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영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건강이나 의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통찰력이 뛰어난 경우, 몸을 단순히 기계나 부품으로만 보지 않고, 몸의 모든 부위가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는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와 연결성을 깊이 이해하기 때문에, 어떠한 질병이 생겼을 때 육체적인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치유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정보를 찾고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어서, 병원에만 의지하지 않고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하기도 하고, 한의학이나 대체의학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하려고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기, 혈액, 음식, 운동, 마음, 스트레스, 습관 등의 연관관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데 중점을 두게 됩니다.
통찰력이 발달한 사람은 무엇이든 표면적인 것보다 근본이나 본질을 찾는데 깊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요.
영성에 관심을 가진다면 신비체험이나 영적인 현상들보다 영성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어 있고, 질병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질병의 현상이나 치료제보다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관심을 더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나 껍데기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면적인 본질과 진리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보더라도 외모나 직업보다 마음이나 영혼, 가치관 등의 내면적인 부분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겠죠.
그리고 이 체가 발달하면 사랑이나 자비심, 배려심 등을 많이 가지게 되어 있어서 단순히 문제해결보다 감정적인 공감이나 조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논리적인 사고만 하는 사람들보다는 공감능력이나 배려심도 뛰어나고 부분보다 전체를 통찰하는 능력이 좋아서 매우 따뜻하고 편하고 지혜롭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영적 삶과 물질적 삶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며 두 차원의 조화를 이루는 데 능숙하다고 합니다.
영성에만 몰두해서 현실을 등한시 한다거나 에고가 강해 물질적인 삶에 치우치는 성향이 거의 없고, 영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고차원적인 에너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가 있어서 치유, 보호 또는 창조적인 목적으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계에서는 물리적인 제한이 없고 영혼은 더 정제된 고차원의 에너지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능력들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상에 태어나게 되면 기억을 잃어버려서 자신이 그런 능력이 있는지조차 모르기도 하지만, 명상이나 영적 수련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구의 육체적인 한계 때문에 영계에서보다 능력에 제한이 많이 생기긴 하지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매우 세밀하게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에너지적 수준에서 인식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떠한 분위기나 표정으로 읽어내는 게 아니라 영혼이 실제로 에너지 차원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감각이나 관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과 에너지적 연결을 통해 감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로 인해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내고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체의 이런 부분이 발달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타인의 에너지 진동수에 맞추어 자신의 진동수를 조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사람이 슬픔에 빠져 있다면 자신의 에너지를 그 슬픔의 낮은 진동수에 조화롭게 맞추어 함께 공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영혼은 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 에너지에 맞추어 자신의 에너지를 부드럽고 안정된 상태로 조율하기도 하고 치유의 에너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치유를 통해 상대방의 진동수가 점점 올라가게 되면 자신의 진동수도 그에 맞추어 조금씩 회복시킨다고 합니다.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위로와 지지가 되어주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은 깊은 내면의 평화와 고요함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이 항상 평온하고 안정적이라고 합니다.
높은 진동수의 따뜻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외롭고 우울하거나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들이 별로 없으며, 그런 마음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회복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있어서 타인에 대해 깊은 연민과 사랑을 표현하며, 모든 생명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조차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류와 우주 전체를 위한 사명과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류를 위한 봉사와 헌신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합니다.
또한 이 체가 발달하면 창의력과 상상력도 좋아진다고 하는데, 문제해결을 할 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생각해낼 수도 있고 예술 활동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직관체는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으로 볼 수가 있는데,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감정과 직관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기존의 사고 틀을 벗어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근원체]
그 다음으로 높은 체는 최상위체는 근원체인데 이 체가 발달한 영혼은 신성한 의지와 절대적 진리에 따라 살아간다고 합니다.
영혼이 더 이상 개인적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우주적 계획이나 신성한 목적과 일치하여 존재하게 됩니다.
모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할 수 있고 현실의 표면을 넘어 존재의 근본적인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며, 우주적 진리와 자아의 진리를 명확하게 인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깊은 연대감과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직관체는 실생활의 문제 해결, 감정의 흐름, 사람과의 관계 등에서 작용하며 일상 속에서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근원체는 철학적·영적 질문이나 보편적 원리와 같은 더 심오한 주제에 적용됩니다.
삶의 목적이나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나 우주의 근본 원리를 깨닫고자 하는 깊은 욕구는 근원체의 발달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체의 작용을 통해 영혼은 진리를 추구하고 더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며, 본질적인 존재의 이해로 나아가게 됩니다.
직관체가 발달한 영혼들에 비해 개인적인 욕망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개별적 정체성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생명과 존재의 상호 연결성을 인식하고 있어서 에고의 개념을 초월하여 고차원의 무아(無我) 상태에 좀 더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무아’는 한자 그대로 자아의 실체가 없다는 것인데, 그걸 깨닫는 다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게 되고 타인과 자신을 더 이상 분리되거나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고통과 행복이 자신의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마음이 생길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아를 깨닫게 된다고 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갑자기 사람이 이타적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시작일 뿐, 계속 윤회를 하면서 실제 삶 속에서 자아의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고 지속적인 자기성찰과 이타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수많은 생을 통해 무아 상태와 이타적인 마음이 자연스럽게 체화되게 되면 근원체가 발달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되면 의도적으로 집착을 내려놓거나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항상 그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그게 당연하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무아’ 상태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런 사람들은 물질적 성공이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으며, 개인적인 야망보다는 타인의 복지와 공익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삶의 목적이 절대 돈이나 권력 같은 자신의 욕망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위나 물질적 소유에 집착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려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자원을 아껴 쓰기도 하고 다른 생명체나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결정이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깊은 공감을 잘 느낀다고 합니다.
이원적인 세계관을 넘어선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선과 악, 옳고 그름 같은 이원적 구분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실직하게 된 상황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원적인 세계관에서는 실직을 불행이나 나쁜 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원적 구분을 초월한 사람은 이 실직이 결국 그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거나 더 큰 성장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단순히 나쁘거나 불행한 일로만 보지 않고 더 큰 흐름 속에서의 필요성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단순히 미워하기보다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이 낮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려는 생각도 이원적인 구분을 초월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그 사람의 행동을 단순히 "잘못"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이나 성장 단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원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생각들은 영성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생각들입니다.
근원체가 매우 발달한 사람이라도 물질계에 태어나게 되면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게 되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원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더 높은 차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영혼이 가지고 있어서, 영성을 조금만 이해하게 되면 이원적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 직관적으로 더 넓은 시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근원체가 전혀 발달해 있지 않은 사람이 영성공부를 많이 한다면 그런 전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실제 경험하고 내면 깊이 체화하는 것은 힘들다고 합니다.
머리로 그런 개념을 이해하는 것과 현실에서 직관적인 통찰이나 초연한 시각이 충분히 발휘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수많은 윤회를 하면서 실제 삶에서 체화되고 경험을 통해 완전히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직관체가 발달한 영혼은 감정적 공감과 직관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는 능력이 뛰어난 반면,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에고나 감정적 연결을 초월하여 더 높은 차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과 상담을 해주는 상황이라고 가정했을 때,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그 사람이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공감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감정적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거나 적절한 조언을 해주게 됩니다.
반면, 직관체의 발달이 부족하고 근원체가 발달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감정적 고통을 이해하지만 그 사람의 고통이 단지 영적 성장의 과정임을 알고 있어서, 더 큰 관점에서 그 사람의 경험을 바라보기 때문에 감정에 크게 동요되지 않고 조금 초연해 보일 수가 있습니다.
공감을 느끼지만 그 공감이 감정적 교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온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사람은 좀 차갑기도 하고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직관체와 근원체가 조화롭게 발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두 체가 균형 있게 발달한 사람들은 감정적 공감과 직관을 통해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에고나 감정을 초월하여 더 높은 차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인 공감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공감보다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의 체가 균형 있게 발달한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공감도 하면서 동시에 차분함속에서 지혜로운 대처를 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체가 균형 있게 발달하지 못하고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물질적 현실과의 연결이 약해질 수 있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처도 부족해질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체가 골고루 발달해서 영성과 현실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멘탈체나 직관체를 더 발달시키기 위해 계속 윤회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
영혼의 모든 체가 균형 있게 다 발달을 하게 되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고 윤회를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종교나 사상에 따라 이 상태를 표현하는 이름이 다양한데, 보통 신성이나 우주의 근원과 하나가 된다는 ‘합일’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신일합일’, ‘해탈‘, ’자아초월‘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대해서는 불교적인 관점과 현대영성의 관점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요.
불교는 집착과 업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다른 사상들은 영혼이 경험과 배움을 쌓아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나가가는 영적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불교에서도 지혜와 통찰력의 중요성이나 영혼성장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고 서로 공통되는 부분들도 적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맞는 것인지는 저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영혼퇴행이나 임사체험이나 최면영상의 자료들을 보면 배움과 성장을 위해 삶을 계획하는 부분들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단순히 카르마 청산이나 선한 삶을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지혜를 배우거나 다른 영혼들을 도와주거나 예술 활동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깨달음을 얻어 윤회를 벗어난다는 개념보다는 영혼이 더 이상의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성장을 하게 되면 윤회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개념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윤회의 고리를 끊는다”는 표현보다 “더 이상 윤회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라는 표현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데요.
윤회를 단순한 고통의 연속으로 보는 것 보다 모든 경험들이 영혼의 배움과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우주적 차원에서 더 넓고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악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카르마가 무거운 낮은 단계의 영혼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적인 관점이 더 맞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영혼들에게는 배움과 성장을 중요시하는 관점이 좀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현대영성에서 말하는 영혼 몸체들의 발전 수준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성격이나 성향, 성품, 능력들이 잘 설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들은 영계에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깊은 평화의 상태에 머물게 되는데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분리나 갈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욕망이나 집착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항상 사랑과 조화 속에서 존재하게 되며, 고통이나 고뇌 없이 영적 평온을 누리게 됩니다.
자아와 신성이 통합되고 신과 하나가 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정체성을 초월한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개별성은 유지된다고 합니다.
어떤 형태의 지배나 권위에 기반하지 않고 상호 존중과 이해에 바탕을 둔 비위계적이고 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임사체험을 보면 우주와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사랑과 평화가 느껴진다는 글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요.
제가 볼 때 그 상태가 바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영혼이 느끼는 상태와 비슷한 것인데, 임사체험은 일시적으로 그걸 잠깐 경험하는 것이지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항상 그 상태로 영계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사체험자들은 잠시 동안의 경험만으로도 인생이 완전히 바뀔 만큼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그 경지에 도달한 영혼들이 영원히 그 상태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한 상태로 살아갈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의식성장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도 그 길이 너무나 험난하고 멀게 느껴지더라도, 길을 잃지 말고 잘 견뎌내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해서 모든 영혼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영적인 여정을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근원에서 창조되어 떨어져 나와 물질체험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해서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 합일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데요.
정말 철학적이고 심오한 표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최면영상을 보면 영혼들이 수호천사나 안내자 영혼에게 이렇게 힘든 체험을 왜 계속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수호천사들은 체험의 목적을 “근원으로 회귀하는 과정” 혹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더군요.
그 곳은 엄청나게 밝은 세상이고 고향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곳인데, 영혼이 어떠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임사체험을 보면 그 고차원의 상태를 경험하면서 “모든 영혼들은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모든 것이 이미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들은 영계에서 매우 고차원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며 지낸다고 하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우주적 섭리와 전체적인 균형에 기여하는 일들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다른 영혼들의 안내자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지혜와 사랑을 전하며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영혼들을 도와주고 안내하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법칙과 에너지들이 작용하는데 그러한 에너지 흐름을 관리하거나 균형을 조절해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우주의 존재들과 협력하여 창조적 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세계나 새로운 형태의 영적 차원을 창조하기도 하면서 우주의 진화에 기여하는 작업도 한다고 합니다.
행성이나 생명체가 아닌 차원 자체를 창조할 정도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매우 진보된 영혼으로 보이는데요.
아마 그 정도 일을 혼자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영혼들이 그룹별로 모여서 함께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차원간의 에너지 흐름이나 균형, 시공간의 구조, 물리적인 변수들, 생명체들의 진화과정, 영적 성장의 방식 등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이 월등해야하기 때문에, 깨달음과 능력이 극도로 높은 존재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영혼들은 좀 더 특별한 존재로 인식이 되는 듯합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도 매우 진보된 영혼들이 영계에서 우주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창조적인 일에 참여한다고 언급이 되어 있는데요.
영혼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영혼들의 진화를 돕기 위해 행성이나 물리적인 차원의 세계를 창조하기도 하고, 영혼들이 윤회의 사이에서 휴식이나 학습을 위해 머무르는 영적 공간을 창조하고 관리한다고 나와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물질세계들도 그렇지만 윤회를 하면서 머무르는 여러 차원의 비물질 세상들도 그냥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고차원 영혼들이 성장이 필요한 영혼들을 위해 철저히 계획하고 세밀하게 디자인해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는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등의 기본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매우 정밀하고 미세하게 조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힘의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우주가 유지되지 못하고 붕괴된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구와 태양의 거리, 지구의 공전 궤도, 자전축 기울기, 대기 구성 성분 등 어느 것 하나 조금만 맞지 않아도 지금처럼 지구에 생명체가 살기가 힘들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미세 조정되어 있는 우주의 상수들이나 지구가 놓여있는 조건들이 도저히 우연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경이롭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위에서 말한 차원이나 행성을 창조하는 고차원 영혼들이 그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수학과 물리학으로 정밀하게 계산해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들이 다루는 수학이나 물리학은 지구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서, 지구인들이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양자물리학이나 수학 난제들은 그냥 산수정도로 보일 만큼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고 차원이 다른 수준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혼들은 굳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우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랑과 평화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게 되어 우주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지구나 다른 차원에서 다른 존재들이 의식적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특정 시점에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은 사람들의 발전 수준에 따라 그들이 왜 특정한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영혼은 각 개인의 의식 수준, 경험, 감정 상태 등을 에너지 수준에서 감지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 두려움, 기쁨, 그리고 혼란을 이해하며 그들의 반응이 어떤 내적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는지를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는 비판이나 판단이 아니라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자신만의 길을 따라 배우고 성장하고 있음을 존중하게 됩니다.
모든 행동 뒤에 숨겨진 의미와 이유를 이해할 수 있기에 진실한 마음으로 그들의 영적 여정을 도우려는 의도로 다가가게 됩니다.
만약 그런 영혼이 사람들을 위해 영성 글을 쓴다면 사랑이 가득한 마음과 진리를 나누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를 담아 겸손하게 쓰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깨달음을 과시하거나 절대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부드럽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복잡한 이론이나 어려운 용어는 진리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들은 깨달음의 본질이 단순함과 명료함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며,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론적인 부분보다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실천적 지혜를 전달한다고 합니다.
글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됩니다.
진실하고 따뜻한 어조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사랑과 평화, 그리고 조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로 안내하게 됩니다.
절대 자신의 글이 대단하거나 수준 높게 보이도록 포장하지도 않고 듣기 불편한 단어나 거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기보다 그런 것들이 자신의 에너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영혼들은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거나 다른 이들보다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이 없고, 그런 표현과는 진동수도 맞지 않고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고 그들의 의식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성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썼을 때, 그 사람의 영혼이 어느 정도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제가 위에 적어놓은 부분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들의 의식 수준, 세상의 이치와 진리, 그리고 우주의 원리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되는데요.
단지 표면적인 이해를 넘어 모든 존재의 깊은 본질과 상호 연결된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경험들과 지혜가 영혼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혹은 어떠한 의도가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유추해낼 수가 있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행위보다 그 사람의 내면에서 왜 그런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개선해야하는지도 알 수 있는데,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직감으로 알 수 있게 되는데요.
현실적인 관점에서 통찰할 수도 있고 영적인 관점이나 우주적인 관점에서도 꿰뚫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몰라서가 아니라, 영혼들이 성장하기 위해서 겪는 과정의 일부로 생각하기에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들을 굳이 비판하거나 지적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고 간접적인 조언을 해 줄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상에 태어난다면 영혼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한적한 곳에서 조용하게 살고자 하는 성향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요.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높은 위치에 오르거나 물질적인 부를 얻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럴 능력은 있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가 않기 때문에 그런 삶은 전혀 끌리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속적인 삶을 살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이나 그들의 잘못에 얽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되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삶을 선호하게 됩니다.
탐욕, 이기심, 과도한 경쟁, 증오, 폭력, 비양심, 비윤리, 비도덕적인 생각이나 행동들은 낮은 진동수의 에너지를 생성하게 되고, 그런 에너지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본능적으로 카르마를 생성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내면에서 불편함과 거부감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에너지를 느끼는 감각이 예민하고 매우 발달이 되어 있어서 시끄럽고 혼잡한 환경에 있으면 쉽게 에너지가 소모되거나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방출되는 감정적, 정신적 에너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어서 쉽게 피로해지거나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안정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을 선호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보호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도 ‘현자’들이 지상에 태어나면 외진 곳에서 많이 살게 되는데, 그 이유를 위의 내용들과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상에 태어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영성을 전혀 모를지라도 내면의 영혼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깊은 지혜와 깨달음을 가지고 있어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질적인 진리를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적수준이 매우 높은 영혼이 생활이 엉망이라거나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인데요.
영적수준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다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영성공부를 많이 했거나 명상수행을 얼마나 했는지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영성을 전혀 모를지라도 사람을 대할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보면 영적수준을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제약으로 인해 영계에 있을 때보다 직관력이나 통찰력이 많이 제한되긴 하지만 복잡한 문제나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감정과 상황을 깊이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지혜와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질계에서도 영적 진리를 이해하고 이를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말에 그치지 않고 영적 진리를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현실적인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우울함이나 공허함을 계속 느낀다면 영적인 차원에서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시작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고, 약이나 단순한 상담을 권하기보다 그 사람의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게 해준다거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삶의 목적과 연결되는 길을 찾도록 돕는 방향으로 조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지속적인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그에게 더 많은 운동이나 건강한 식습관을 권장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영적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 건강 문제가 단순한 육체적 원인이 아니라 정신적 또는 감정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정신과 마음이 영혼의 에너지 차원에서부터 육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다 이해할 수 있어서, 육체적인 치료 이전에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필요하다거나 내면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줄 수가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려면 기의 순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기순환에 좋은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제시할 수도 있겠죠.
이들의 지혜는 단순한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니라 신성에 기반한 깊은 통찰과 영적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삶의 본질과 우주의 진리를 꿰뚫어 보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인도하고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차원에서 자기 인식이 가능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영적 성장과 깨달음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본질과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탐구하려는 성향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요.
만약 일상적인 경험이나 어떤 사건을 겪었을 때, 그들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사건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나 영적 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영적인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은 영계에서 항상 위에서 설명한 의식 상태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지상에 태어나면 물질계의 제약으로 인해 영계에서의 완전한 능력들이 감추어져 있거나 발휘하지 못할지라도, 일반인들보다 더 깊은 직관력과 통찰력 그리고 높은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현실에서 영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개별적 사상이나 전통을 넘어서 여러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핵심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 영적체험들이나 철학적, 종교적, 영적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근본적 진리를 꿰뚫어 보고,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인식해서 영성의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다양한 악기들이 연주하는 음악에서 공통의 화음을 찾는 것과 비슷한 것인데요.
특정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한 사상들을 살펴보면 진리가 아니거나 불필요한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무엇이 보편적인 진리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영혼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주적 진리나 영적 원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완전히 깨달은 영혼들은 그 내부에 흐르는 보편적 진리를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진리들을 서로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이론적인 부분들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영적원리들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영계에서의 차원이동]
영계에서 영혼은 자신의 영체 중에 가장 잘 발달이 되어 있는 영체와 진동수가 맞고 조화를 이루는 차원에 머물게 됩니다.
멘탈체가 발달한 영혼은 중간차원 정도의 멘탈계에서 주로 활동하게 되고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매우 고차원인 근원계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영혼이 자신이 머무는 차원보다 상위차원으로 가는 것은 영혼의 진동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영계에서도 명상을 한다거나 고차원 존재나 영적인 가이드의 도움으로 일시적인 체험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체험은 그 차원을 완전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원의 부분적인 성질이나 에너지를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데요.
경험이 매우 제한적일 뿐 아니라 그 차원의 에너지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다룰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좀 알아보았는데요.
근원체가 매우 발달되었지만 멘탈체가 별로 발달하지 못한 영혼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영혼은 윤회를 하면서 모든 체가 통합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근원체가 상당히 발달된 영혼이라면 하위체인 멘탈체는 기본적으로 발달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영혼은 정신적, 감정적, 에너지적 측면에서 모든 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고 조화를 이루어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체만 발달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영혼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멘탈계를 방문할 경우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더군요.
영혼의 진동수가 매우 높기 때문에 하위층을 방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저차원의 영혼이 고차원을 일시적으로 방문했을 때 그 차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멘탈계의 논리적 구조나 지적 패턴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떤 방정식을 보고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멘탈계의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거나 혼란을 느낄 수가 있고, 멘탈계에 살고 있는 영혼들과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합니다.
멘탈체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 감정,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그 차원에 살고 있는 영혼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기가 힘든 것으로 보입니다.
근원체가 매우 발달을 했다는 것은 고차원의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멘탈계에서의 에너지 체계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고차원적 에너지를 그 차원에 맞게 변형하거나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강력한 엔진을 가진 자동차가 섬세한 조종 시스템 없이는 제대로 달릴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죠.
고차원의 몸체가 충분히 발달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위체들이 불완전하게 성장한 상태라면 계속 윤회를 하면서 모든 체를 골고루 발전시키게 됩니다.
모든 체들은 각각의 역할들이 있기 때문에 영혼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체들이 균형 있게 발달하고 조화를 이루어야하기 때문인데요.
사랑과 자비의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논리적인 사고와 지적 능력을 담당하는 체가 덜 발달되어 있으면, 영계에서 상위 차원의 진리를 이해하거나 고차원적 사고와 지혜를 요구하는 영적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영적 진화와 성숙이 지연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더 높은 차원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그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멘탈체의 발달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근원체는 영혼의 뿌리이며, 멘탈체는 영혼이 세상과 소통하고 성장하는 가지와 같은 것이므로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영혼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매우 높은 차원의 영적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우주의 법칙이나 영적인 실재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가지고는 있지만, 하위체들의 발달이 부족하게 되면 영적인 영역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현실 세계에서의 물질적 삶이나 감정적, 지적 균형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고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모든 체가 골고루 발달한 영혼은 물질적, 감정적, 지적, 영적 모든 측면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어 현실 세계에서 적응하며 생활하는 능력뿐 아니라, 영적인 통찰과 직관도 가지고 있어 양쪽 모두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균형 잡힌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영혼들은 다양한 차원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각 차원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이해하며 경험할 수 있게 되는데요.
영혼이 다양한 차원에서 오는 정보와 경험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영적 진리를 깊이 깨닫는 데 도움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해 영혼은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는 영적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가는 길]
완전한 깨달음은 차원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의 경험을 통합하여 완전한 의식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깨달음이라고 하면 어떠한 상태를 초월한다거나 가장 높은 차원에 도달하는 개념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비슷하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경험을 통해 모든 차원들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통합해서 의식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한다는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깨달음은 어떠한 수행을 통해 단순한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모든 영혼을 구성하는 여러 체들의 깊은 변화와 성장을 통해 완성되게 됩니다.
자신이 신성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은 깨달음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건 시작점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수행을 통해 고차원적인 어떠한 상태를 경험하거나 인식하는 것이 깨달음의 끝이라면 영계에서 명상수행만 하면 되지 태어나서 물질체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철학적·영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며,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삶에 적용함으로써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고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차원적인 사랑을 이해하려면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하고 모든 존재의 본질이나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통찰력도 필요할 뿐 아니라 철학적인 사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성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그만큼의 경험과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자신이 이해한 것을 실제 생활에서 얼마큼 적용하고 반영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배우는 사랑, 자비, 친절, 배려, 용서, 연민, 논리적 사고, 직관, 통찰력, 지혜, 감정적 균형, 집중력, 인내 등 모든 것들이 영혼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그냥 착한 것만으로도 부족하고 지혜와 통찰력만 가지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인데요.
물론 모두 상호보완적이고 중요한 요소들이긴 하지만 저는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사랑에 관련된 마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르마적인 문제들도 그렇고 영혼이 거주하는 차원을 결정할 때 사랑의 에너지가 중요하게 작용을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인데요.
논리적인 사고에 능숙하고 통찰력이 발달했지만 이기적이거나 배려심이 부족한 영혼이라면 그런 영혼들이 모여 있는 차원으로 가게 될 겁니다.
논리적인 사고와 지적활동을 주로 하게 되는 멘탈계라고 하더라도 그 차원에서 또 수많은 차원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지성이 풍부하고 똑똑하지만 너무 이성적이고 따뜻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영혼들이 사는 세상이면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곳에는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지성이 부족하고 생각하는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이타적이고 남을 배려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영혼들이 사는 곳이 훨씬 더 나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한 그런 차원의 세상들을 한번 상상해보시면 제가 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영성을 처음 접하고 놀랐던 점 중에 하나는 명상수행이나 영성공부를 엄청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 인격에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인격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영적인 수행만 혼자서 열심히 하기도 하고 영성과 인격을 별개로 보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제가 볼 때 그 영혼이 성장하려면 대인관계를 통해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영성에 관련된 어려운 한자들로 가득한 책을 펴놓고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명상수행을 엄청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더군요.
신비주의나 뉴에이지, 신지학, 철학, 전통적인 종교들에서는 영혼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런 고행이나 수행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물론 그러한 수행이 자신의 존재와 우주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영혼의 몸체들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해주기도 하고, 내면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어서 영적성장을 촉진시켜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자 하나의 방법일 뿐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며 영혼은 물질적 체험을 통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충분히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마음공부에 좋은 글들을 보는 일들도 마음의 평화를 찾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들이기에 충분히 명상과 같은 효과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영혼의 여러체들을 발전시키는 방법에는 수행과 일상생활에서의 경험 둘 다 도움이 되게 되지만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멘탈체의 논리적인 사고나 판단, 추론 같은 영역을 발전시키려면 생활에서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한 일들을 실제로 해봐야지만 발전시킬 수가 있는데요.
명상수행을 가끔 해주면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는데, 논리적인 생각을 할 때 더 효과적으로 할 수가 있어서 멘탈체의 성장을 더 빠르게 촉진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명상수행만 한다고 논리적인 사고의 능력이 발전하는 건 아니고 간접적인 도움이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직관체의 직관적 통찰이나 영감은 생각을 한다기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에 의존하게 되는데요.
명상을 가끔씩 해주면 내면의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이 되기 때문에 직관적인 내면의 느낌을 떠올리는데 더 도움이 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수행도 간접적인 도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생활을 하면서 직관이 필요한 문제해결이나 창의적인 일들을 하면서 실제로 직관을 사용하고 적용을 해보아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직관체의 공감능력도 마찬가지인데요.
명상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그래서 자기 인식 능력을 향상시키게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공감능력이 좋으려면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에너지로 느껴야하는데 명상을 해주면 내면이 고요해지고 에너지를 느끼는 감각을 발달시킬 수가 있어서 도움이 되게 되죠.
하지만 생활 속에서 대인관계를 통해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그런 감각을 향상시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근원체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명상을 통해 자아를 초월하는 영적체험을 하거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을 이해하게 되면 발달에 도움이 되게 되는데요.
명상수행을 통해 무아를 깨달았다면, 실제로 생활에서 사랑과 자비심을 발휘해보고 이타적인 활동을 해보아야 비로써 근원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수행과 생활에서의 경험과 실천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면서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의 차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활에서의 경험과 실천을 하게 되면 수행을 전혀 하지 않아도 몸체들을 발전시킬 수 있지만, 수행만 하고 실제로 해보지 않는다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가 있겠지요.
최면 영상을 보다가 좀 특이한 분을 본적이 있는데요.
사는 게 너무 고단해서 자신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영성에서 찾고자 했던 분이었습니다.
최면을 해보니 그 분은 전생에 어느 큰 절에서 오랜 시간 수행을 하며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덕망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현생의 고난과 어려움은 그가 스스로 더 큰 시련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는 것이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속세를 떠나 절이나 산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이들을 보며 그들이 영적으로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요.
그건 단지 직업과 삶의 방식이 다르고 영혼이 배우는 과정이 다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사는지가 아니라 영혼이 얼마나 성장했으며 어떤 의식 수준에 도달해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 다양한 과목 공부를 통해 쌓는 지식과 논리적 사고, 철학적 고민에서 얻는 통찰, 남을 돕고 봉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사랑과 자비, 어려운 상황을 가족과 함께 극복하며 얻는 용기와 지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힘, 그림이나 음악이나 글쓰기 등의 예술 활동을 통해 표현되는 감성이나 창조성,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통해 경험하는 인간애 등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배우는 모든 것들은 영혼의 다양한 측면을 조화롭게 발달시켜 영적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 자비, 희생, 봉사, 헌신,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삶, 양심적인 생각, 논리적 사고력, 지적 활동, 철학적 탐구, 지혜의 증진, 대인관계를 통해 얻는 교훈, 예술적 표현, 감성 발달, 창조적 활동, 문제 해결 능력 등은 우리의 영혼이 더 높은 의식 상태로 나아가도록 돕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의 방식이 영적 성장을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루게 하는지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상이나 종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영혼이 점차 성장할수록 환생을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시대, 환경, 조건의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영혼이 윤회를 통해 모든 측면에서 균형 있게 최상위 단계까지 발달하게 되면 윤회에서 자유로워지거나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환생할 필요는 없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고귀한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신비주의 사상이나 뉴에이지, 신지학, 철학, 종교 등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영혼의 구조와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적어보았는데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예시를 많이 들다보니 글이 좀 길어졌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상들보다는 임사체험이나 영혼퇴행, 유체이탈 등을 훨씬 더 신뢰하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지만 참고할 정도로만 가끔 보는 편입니다.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이 있어서 정리한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기에 모든 내용을 다 믿기보다는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