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나 심리학, 철학 등에 관한 글을 보면 가끔 ‘엠파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요.

엠파스(Empath)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타인의 감정을 잘 느끼거나 공감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제가 엠파스의 특징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다보니 영혼의 진화과정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특징은 단순히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혼에서 나오는 성향으로, 평범한 영혼과는 다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감각기관인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에는 민감도라는 것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마다 유전적인 요인이나 신경계의 발달여부에 따라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운 고추를 전혀 먹지 못하지만 땡초를 밥 먹듯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건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이라는 성분에 대한 세포 반응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냄새도 마찬가지로 후각 수용체 세포의 개수나 민감도가 다르다보니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처럼 육체적인 감각의 민감성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듯이 영혼의 감각도 마찬가지인데, 영혼의 민감성은 영혼의 진동수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사람의 귀에는 가청주파수라는 것이 있는데,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최소 진동수와 최대 진동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가청주파수 대역은 보통 나이가 들면서 좁아지게 되는데, 젊은 사람이라도 선천적인 요인이나 건강상태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감지할 수 있는 에너지의 주파수도 영혼마다 일정범위를 가지고 있는데, 영혼의 진동수가 높을수록 훨씬 더 에너지를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에너지의 스펙트럼 범위가 넓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에너지의 종류나 수용범위가 더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진동수가 높을수록 모든 존재와 더 강하게 연결된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고 고차원의 에너지와 연결이 잘되어 있어서, 더 강한 직관과 통찰로 에너지를 쉽게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높은 진동수를 가진 영혼이 낮은 진동수를 잘 감지하지 못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들은 더 정제되고 고차원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감수성이 훨씬 높아서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와 여러 차원의 에너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해상도 렌즈가 세밀한 디테일을 포착하듯이, 인지할 수 있는 에너지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높은 에너지이든 낮은 에너지이든 더 깊고 넓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 평화, 지혜와 같은 높은 진동수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두려움, 분노, 슬픔과 같은 낮은 진동수의 에너지도 일반인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깊이 있게 감지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일정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보통 ‘엠파스’라고 부르게 됩니다.

제가 영혼의 구조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공감능력을 담당하는 ‘직관체’에 대해 설명을 한 적 있는데, 엠파스의 에너지에 대한 민감성이 그 체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직관체에는 공감능력뿐만 아니라 직관이나 통찰력, 사랑, 자비 등의 여러 가지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데, 공감능력은 그런 속성들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고 공감능력이 없이는 직관체가 발달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공감능력은 민감성뿐만 아니라 감성지수나 성격, 가치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민감성이 높다고 해서 꼭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민감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공감능력이 좋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공감력이 좋은 경우는 논리적 이해와 관찰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히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감정적으로 깊게 느끼기보다는 인지적이고 의식적인 이해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반해 민감한 사람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가슴 깊이 타인의 감정을 느낌으로써 좀 더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엠파스의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어릴 때부터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서 ‘예민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요. 그래서 보통 안 좋은 성격으로 인식이 되게 되고, 성격을 고치라는 조언을 가끔 들으면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엠파스의 민감성은 성격이 예민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요.

성격이 예민하다는 건 짜증이나 화를 잘 내거나 사소한 일에도 너무 신경을 많이 쓴다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을 하는 등의 부정적인 성격을 보통 말하지만, 엠파스는 그런 성격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 에너지나 감정들을 잘 느끼는 특성을 말합니다.

물론 그러한 민감성 때문에 성격이 예민하고 안 좋게 비춰질 수는 있지만, 그건 영혼의 개성이나 성격이 아니라 영혼의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능력이고 현상입니다.

그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이나 문제가 아니기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민감한 사람들은 주변의 감정이나 에너지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때때로 불안하거나 과민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들이 가진 높은 공감 능력과 감정적 인식의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영혼이 더 높은 진동수로 진화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민감성은 영혼의 성장과정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민감한 영혼은 그들의 감정과 에너지를 통해 사랑과 자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으며, 직관체의 발달을 더욱 촉진시킬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엠파스의 특징은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런 능력이 개발된 영혼일수록 진화의 속도가 더 가속화되게 됩니다.

엠파스들은 어릴 때부터 민감한 성격 고치라는 말을 가끔 들으면서 자라다 보니, 자신의 성격이 이상하고 잘못된 줄 알고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하게 되지만, 잘 되지가 않아서 좌절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도 않고 무감각하고 쿨하게 살아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힘들 때도 많다보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거나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요.

영성을 이해하게 되면 절대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민감성은 절대 자신이 이상하거나 성격적인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더 진화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걸 이해하게 되면 왜 자신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에너지나 감정들을 잘 느낄 수가 있고 약간은 소심하고 배려심을 가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고, 둔감한 사람들이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능력은 영적진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축복일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과 에너지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건,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거나 치유를 해줄 수가 있습니다.

상담가나 치유자로의 역할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평화를 느끼게 해주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더 큰 깨달음과 연결할 수 있게 하여, 영적진화를 가속화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떤 모임에 나갔을 때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엠파스들은 조금만 어울리다보면, 어떤 사람이 소외되거나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 매우 빠르게 알아챌 수 있는데요.

그들은 사람들 간의 미묘한 시선, 말투, 거리감, 혹은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이나 무관심등을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엠파스는 자신의 공감 능력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사람에게 끌리거나, 상대방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인해 눈치 빠르게 행동하거나,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이나 문제점들을 빠르게 인지하고 원활하게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능력이 자신을 힘들게 할 때도 있는데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에너지를 과도하게 흡수하거나 마치 자신의 것처럼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강하게 흡수하게 되면 스트레스나 불안 등의 정서적인 문제가 생길수도 있고,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져서 힘든 경우도 생기게 되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육체적인 고통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엠파스들은 끊임없이 주변의 에너지를 인식하고 반응을 하게 되어 있어서, 혼잡한 장소에 오래있으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쉽게 피로가 쌓일 수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을 잘해주는 성격이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모든 불만을 털어놓거나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말들을 계속 하면서 엠파스들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엠파스들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좀 힘들더라도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해서 남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어 지치기도 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어서, 자기관리와 경계설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도움을 주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좋고, 몸과 마음에 무리가 오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해주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구분하고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큰 도움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엠파스들은 부정적인 사람이나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상대방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엠파스들은 다 꿰뚫어볼 수 있는데,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냥 자동으로 다 읽혀지게 됩니다.

눈치가 보이는 이유는 '혹시 자신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이 안 좋아진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 때문이기도 한데요.

엠파스들은 배려심이 좋기 때문에,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최선을 다했는데 왜 상대방은 불편해하지? '라는 의문에 자신이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눈치 보인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자신이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면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요.

그건 그들 자신의 문제이지, 엠파스들이 그런 것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엠파스들은 타인의 감정과 고통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오인해서 그걸 자신의 것으로 떠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걸 분별하는 경계 설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타인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어야 한다거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보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하고, 어느 정도 선을 정해놓고 도움을 주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데요.

엠파스들은 보통 타인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도움을 거절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경계설정을 한다는 것이 사실 쉽지만은 않은데요.

조금이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애쓰거나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을 한 것만 하더라도, 이미 그 사람을 위해서 영적으로 엄청난 일을 한 겁니다.

그리고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영혼이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배움을 얻고 영적성장을 이룰 수 있는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하기에,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준다는 생각보다 적절한 도움을 주고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지켜봐주는 것 또한 그 영혼을 진정으로 돕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엠파스들은 남들에게는 작은 말이나 행동에도 쉽게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고 미세한 감정 변화까지도 민감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말이나 무심코 던진 표현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요.

특히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말은 엠파스에게 오래 남아 마음의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성을 모르는 엠파스들은 상처를 잘 받는 자신이 너무 실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소심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요.

제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절대 자신이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 이상한 게 아니라, 상처를 주는 말들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겁니다.

그들은 윤리나 도덕성의 기준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도 자신의 높은 기준에 어긋나면 불편함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지구와 고차원 영계는 윤리나 도덕성의 기준이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여기서는 남을 비난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거나 욕설이나 험담을 하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는 몰라도, 고차원 영계에서 그런 일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영혼의 진동수를 떨어뜨리게 되어 있어서, 이미 그 곳에 존재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엠파스들은 주기적으로 조용하게 혼자 있으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요.

사람이 많거나 시끄러운 곳에서는 엠파스들이 감지하는 감정이나 에너지들이 너무 많아서, 일반인들보다 훨씬 빨리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컴퓨터와 비교하자면 그런 시끄러운 장소에서 엠파스들은 cpu가 계속 그런 에너지들을 자동으로 감지하게 되고 감지되는 에너지들이 강하기 때문에, 에너지의 소모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고 과부하가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조용하게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명상이나 사색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고 활력을 얻는 영혼들도 있지만, 엠파스 같은 영혼들은 완전히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엠파스 영혼들을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사회 부적응자 같은 취급을 하기도 하고, 고립되거나 외로워 보여서 계속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무언가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요.

엠파스들은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그냥 가만히 두면 알아서 스스로 힐링도 하고 에너지를 회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엠파스들은 어느 정도 진보되어 있는 영혼들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능력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가족이나 주변에 엠파스가 있다면 이런 부분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엠파스들이 왜 그런 성향을 가지는지는 상식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쉽게 알 수가 있는데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진다면, 절대 남을 힘들게 하거나 괴롭힐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괴로운데 누가 돈을 주면서 하라고 해도 절대 그런 짓을 할리가 없죠.

그 사람들에게 남에게 피해를 주고 괴롭히라고 말하는 건 스스로 자해를 하라는 것과 같은 겁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에게서도 감정을 느끼거나 깊은 연결감을 느낄 수 있어서, 절대 동물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풀 한포기라도 절대 불필요하게 꺾지 않습니다.

어디가 아프면 고치기 위해 병원을 가듯이, 남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진다면 그 사람을 치료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남을 치료해주는 것이 곧 자신을 치료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은 타인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비웃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저히 사람한테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가지지도 않을뿐더러, 공감은 커녕 미안한 마음조차 느끼지 못하기도 하는데요.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영혼의 의식수준이 낮고 악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남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진다면 그런 짓을 절대 할 수가 없습니다.

엠파스들은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느끼듯이 긍정적인 감정들도 잘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기쁘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매우 좋아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할 때 자신도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엠파스들은 종종 타인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남을 돕거나 위로하는 데서 큰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로 말할 때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고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표현하기도 하고, 최대한 상대방이 불편해하거나 상처받는 것을 피하고자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약간은 내성적이거나 조심스럽고 소심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엠파스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성향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해주거나 도와주려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타심, 동정심, 연민, 측은지심, 배려심과 같은 성향들은 매우 높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어서 영혼의 진화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혼이 윤회를 하면서 많은 경험들이 쌓이고 배우고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감능력이 향상되면서 점점 엠파스의 성향이 짙어지게 됩니다.

영혼의 진화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과정이며 영혼마다 자신만의 고유한 성장경로나 능력들이 있기 때문에, 영혼이 진화될수록 엠파스의 성향이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아도 진보된 영혼들은 둔한 성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영혼퇴행의 자료들을 보면 매우 진보된 지도령이나 원로영혼들은 매우 섬세하고 배려심이 깊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섬세함과 깊은 배려심을 가지려면 상대방의 의식이나 감정상태를 직관적으로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섬세하게 느끼는 능력과 공감능력이 필수적으로 발달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자가 말하는 도인의 특징’에 대한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요.

그 글에서도 고급령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영혼들은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고 따뜻한 여성의 느낌이 많이 나기도 하고, 약간 내성적이고 소심해 보인다고 해석을 해 놓았는데, 이런 성향도 엠파스의 기질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이 진화를 하면서 에너지를 느끼는 능력과 공감능력이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수많은 윤회를 통해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기타 여러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공감능력이 향상되게 되는데요.

가해자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되고, 피해자의 경험에서는 고통이나 상처의 감정을 깊이 체험하면서 공감과 연민을 배우게 됩니다.

물론 단순히 반복된 경험만 한다고 그런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깊게 생각하고 자기성찰을 함으로써 조금씩 발전하게 됩니다.

영혼은 진화함에 따라 진동수가 높아지고 의식이 확장되게 되는데, 더 높은 차원의 감각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감정, 에너지, 심리적 상태 등의 주변의 에너지를 더 세밀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자아 중심적인 사고가 줄어들고 ‘무아’상태에 조금씩 더 가까워짐에 따라,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게 됩니다.

자기 인식력이 높아지게 되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타인의 감정과 에너지를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되는데, 자기 인식이 깊어질수록 타인과의 연결성도 강화됩니다.

그리고 영혼이 성장하게 되면 직관이 발달하게 되는데, 직관은 직감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고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또한 영혼은 진화하면서 에너지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지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갈 때는 에너지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끼기가 힘들기 때문에, 에너지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나 수련을 한 사람들만 느끼고 다룰 수 있지만, 영계에서는 물질적인 제약이 없고 차원이 높다보니 대부분의 영혼들이 쉽게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보고 흐름도 파악할 수 있고 조절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진보된 영혼일수록 그러한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상에 태어나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도 일반인들보다 에너지를 더 예민하게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지구에는 엠파스 성향을 많이 가진 영혼들이 별로 없다보니 엠파스들이 지내기가 정말 힘든 환경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전쟁과 범죄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다보니 엠파스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가혹하고 적응하기 힘든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후에 영계에 가게 되면 전부 자신과 비슷한 엠파스의 특징을 가지는 영혼들만 모여 살고 있어서 엄청나게 편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되는데요.

그런 차원에는 엠파스가 아니면 갈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한번 상상을 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절대하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으며, 혹시 어려움에 처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영혼들만 존재하는 곳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이나 다툼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항상 친절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혼자 지내는 시간동안에는 절대 방해를 하지 않는 사람들만 모여 살고 있다는 것인데요.

엠파스들에게는 그게 정상적인 사회이고 바로 그런 곳이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엠파스들은 보통 세상이 너무나 가혹하고 힘들게 느껴지고, 자신이 왠지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거나 자신이 살 곳이 아니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 같은 영계에서만 살다가 지상에 내려오니 뭔가 이질적이고 적응이 안 되는 것이지요.

지구생활이 좀 힘들더라도 잠시 왔다 가는 것이니, 나중에 돌아갈 아름답고 따뜻한 고향 생각하면서 잘 이겨내고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이글이 영혼의 진화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지구에서 소외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엠파스 영혼들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엠파스인지 테스트하는 방법에 대한 자료를 모아봤는데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모아봤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80퍼센트 이상 일치한다면 엠파스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엠파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성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으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상대방의 진짜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잘 느낀다.

2.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즉시 느낀다.

3. 과민하거나 수줍음이 많다거나 내성적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4. 고함이나 말싸움을 들으면 불편해진다.

5. 냄새, 소음, 화학물질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6. 새 가구나 새 옷에서 나는 화학약품 냄새가 견디기 힘들고 거부감을 많이 느낀다.

7. 약물이나 카페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8. 깜짝깜짝 잘 놀라는 편이다

9.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힘들다.

10. 다수보다 소수와 교류하는 것이 더 편하고 좋다

11. 멀티태스킹이 어렵고 한 가지 일만 처리하는 것이 좋다

12. 대도시보다 소도시나 시골이 편하다.

13. 누가 괜찮다고 말해도 그 사람의 숨겨진 불안이나 슬픔이 느껴진다.

14. 어디를 가든 일찍 나오고 싶은 경우를 대비해서 차를 항상 가져가는 편이다.

15.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의 감정이나 상태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16. 인간관계에서 최대한 갈등을 피하고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17. 다른 사람이 슬프거나 괴로워할 때 그 감정을 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18. 사람들의 말에서 숨은 의도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쉽게 인지하는 편이다.

19.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소외감을 느끼거나 왕따를 당하는지 빠르고 쉽게 파악하는 편이다.

20. 사람들 간의 미묘한 시선, 말투, 거리감, 혹은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이나 무관심등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21.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감정이 더 안정되고 편안함을 느낀다.

22. 다른 사람이 슬프거나 화가 나면, 그 감정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쳐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느껴지고 힘들 때가 있다.

23. 친구나 가족이 어떠한 문제를 겪을 때 그 문제를 꼭 해결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24. 시끄러운 곳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빨리 지치고 피곤해져서 오래 있기가 힘들다.

25. 잠을 깊게 잘 못자는 편이거나 작은 소리에도 잘 깬다.

26.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에너지가 회복되는 느낌이 든다.

27.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의 기분에 따라 자신도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자주 느낀다.

28.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때 무시하거나 거절하기가 매우 힘들다.

29.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30. 어릴 때부터 예민한 편이라는 말을 가끔 들었다.

31.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영화나 드라마가 보기 힘들다.

32. 사람들과 대화할 때 조금이라도 불편해하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쓰는 편이다.

33. 주변사람들이 힘들 때 자신이 꼭 도와주거나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미안하거나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타로, 점, 사주 등을 많이 보는 것이 어떤 종교 단체에서는 죄가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시 사후에 문제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저의 견해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인간이 만든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종교는 교리와 신념 체계를 강조하면서 그 범위 안에서만 사고하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영혼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내면적 탐구를 바탕으로 더 넓은 시각에서 영성을 이해하고 성장을 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의식을 어떠한 규율이나 일정한 틀 안에 제한시키는 것은 영적성장에 제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연구한 바로는 영계에서는 선악이나 죄의 개념이 기성종교에서처럼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행위를 단순히 죄의 유무로 판단하기보다, 영적인 차원에서는 행위의 동기나 의도, 주변에 미치는 영향, 자신의 영적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등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영계에서 사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유의미하게 보는 부분 중에 하나는, ‘자신의 삶을 영혼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잘 살았는가’입니다.

영계에서는 단순히 ‘어떤 경험을 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어떤 태도로 마주했는가’를 더 중요하게 본다고 합니다.

에고에 끌려 다니면서 물질적인 삶에 너무 치우치거나, 남들 따라 산다거나,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거나, 남들 눈치 보면서 사는 것들을 별로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생각해보면, 영혼이 삶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사는 것은 영적으로 별로 좋지 않다는 뜻인데요.

사람이 살다보면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사는 게 힘들다보면 여러 가지 미신들을 믿기도 하고 점, 타로, 사주 등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곳에 너무 집착을 한다거나 그런 곳에서 하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살게 되면, 이것 역시 수동적인 삶이 되는 것이며, 영혼이 주체가 되어 삶을 이끌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수동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유의지'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전체적인 삶을 계획하기 때문에, 인생의 큰 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은 맞지만, 그 틀 안에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생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영혼은 체험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스스로 선택을 하면서 삶을 창조해나가게 되는데요.

임사체험자들은 이 부분을 보고 선택을 할 때마다 평행우주가 계속 바뀐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 실수를 통해서 영혼은 교훈과 깨달음을 얻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반성도 전혀 안하고 교훈을 얻지도 못하고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을 하는 것이 문제이지, 실수를 하더라도 배우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 실수는 영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영적성장에 있어서 ‘자유의지’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을 하는데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 선택을 해나가면서 체험을 해 나가야지만, 자신의 영혼이 결과에 대해 느끼는 점들도 많고 책임감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점이나 사주를 보고 거기서 말한대로 어떠한 선택을 했다가 일이 잘못되거나 피해를 보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탓하기보다 점이나 사주를 잘못 봐준 사람들만 탓하고 원망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영혼은 남을 미워하면서 책임을 그 사람에게 떠넘기게 되고, 자신의 판단력을 보완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들도 영혼의 성장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후회, 미련, 집착이 많으면 감정적인 에너지가 무거워서 사후에 고차원으로 빠르게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기도 하고, 같은 감정을 해소하거나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울 때까지 윤회가 좀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영혼은 사후에도 의식이 타인의 신념이나 특정한 차원에 얽매이지 않게 되어 좀 더 자유로운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은 높은 수준의 자아 인식과 정신적인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영적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성에서 ‘수용’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어떤 사람이 점이나 사주를 보고난 후, 자신은 운도 별로 따라주지도 않고 성공할 사주도 아니고 별 볼일 없는 사주라고 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한 채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노력으로 주변 환경을 바꾸거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마저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점이 나쁘게 나왔다고 해서 스스로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쌓이다보면 실제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그와 상응하는 결과를 끌어당길 수가 있어서,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모르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노력해도 안될거라는 체념을 할 수도 있겠죠.

임사체험자들은 가끔 자신의 미래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동시에 자신이 몸으로 돌아가면 그 미래의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질꺼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걸 알게 되면 자신이 리얼하게 체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고,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이 그 결과를 수용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영혼이 배우고 성장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계에서는 자신의 처지나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어떻게 내면의 힘으로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창조했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체험자’가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가 삶을 평가할 때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합니다.

영혼퇴행이나 임사체험이나 종교나 철학에서도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진리를 탐구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가끔 언급이 되고 있는데요.

자신의 내면적 소명을 따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 곧 영혼의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외부 환경과 운명에 의해 이끌려 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 타인의 기대, 사회적 구조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요.

체험 자체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성장과 깨달음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겠죠.

영혼은 본래 창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식과 의도를 통해 의식적인 선택과 능동적인 창조를 함으로써 더 깊은 자각과 성장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은 한 생에서 크게 성장하기 위해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고 장애인으로 태어나기도 하는데요.

영혼이 어려운 환경을 계획하고 태어났다면, 그 사람의 사주는 풍파도 많이 겪고 매우 어렵고 힘들게 살아간다고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영혼은 그러한 역경을 이겨내면서 성장을 하려고 일부러 그런 환경을 계획한 것일 줄도 모르고, 사주만 믿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우울하거나 방탕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 영혼은 스스로 자유의지에 의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며, 태어나기전의 계획도 전혀 실현하지 못하고 실패한 삶을 자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마치 사지 멀쩡한 사람이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한계를 긋는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겠죠.

장애인들도 엄청난 노력에 의해 어떤 분야에서는 일반인들보다 더 월등히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기도 하고, 누구보다도 긍정적이고 밝은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한 힘든 삶을 계획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영혼은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이 긍정적인 빛을 잃지 않고 삶을 자신의 의지로 개척해 나가면서 신성이 확장되고 큰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사주는 어떻게 보면 영혼이 선택한 삶의 운명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지도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정해진 길이라기보다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틀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주는 영혼이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주의 흐름대로 사는 것보다, 사주의 틀 안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삶을 창조해 나갈 때, 더 높은 깨달음과 성숙함을 이루어 나갈 수 있으며, 그것을 하나의 도구로 삼아 더 깊은 자각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때 영혼은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유의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떠한 순간에도 절대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요.

운명은 노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고,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정해진 운명 속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설령 엄청나게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 죽고 나면 영계에서도 높게 평가받게 되고 자신의 영혼에게는 소중한 경험이고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점, 타로, 사주 같은 것들을 많이 보러 다녔다는 것이 사후에 문제가 된다기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영혼이 성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가장 문제가 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후에 인생회고를 할 때 영적가이드들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 조언을 해주겠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후회를 하게 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걸 보면서 너무 창의적이지 못하고 기계처럼 산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는데요.

사회에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주입식 교육방식들도 그렇고 정해진 코스대로 살면서 너무 개성도 없고 일률적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산다’라는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나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풍토 같은 것이 있는데요.

제가 좀 답답해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특히 한국사회가 좀 심한 것 같습니다.

부모나 주변사람들도 영성을 모르다보니 성공하려면 남들이 하는 것들을 똑같이 해야 하고, 본인 스스로도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면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 다니지 않아도 상관없고, 돈 좀 못 벌고 허름한 집에 살아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물질계에 잠깐 살다 가는 것인데 아무 의미 없는 것들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경쟁만 하면서 남들 눈치만 보다가, ‘자아실현’을 통한 영적성장도 못하고 죽게 되는데요.

창의적이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른다는 게 사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죠.

인간으로 살아갈 때는 문화나 관습에 의해 형성된 에고가 작용하기도 하지만 삶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가 좁다보니 잘 느낄 수가 없지만, 사후에 영계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 너무 정해진 대로 살 필요가 없었는데, 왜 저렇게 살았는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점, 타로, 사주 같은 것들은 가끔 힘들 때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화를 피해가도록 도와주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을 한다거나 그것만 너무 믿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영적으로 별로 좋지 못하기 때문에,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참고자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노자의 명언을 하나 소개한바 있는데요.

“자아와 영혼은 환상을 자아낸다.

인간의 가장 큰 환상은 현실이 환상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환상을 창조하는 자는 현실보다도 더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고,

영혼의 길을 따라 우주의 길 또한 찾아낼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환상은 현실이 환상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라는 부분은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믿음에 의해 형성되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환상을 창조하는 자는 현실보다도 더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라는 부분은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길을 따라 우주의 길 또한 찾아낼 것이다"라는 부분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실제로는 더 깊은 진리를 숨기고 있다는 것으로, 현실이라는 겉모습을 보지 말고 내적인 탐구와 영혼의 길을 따르는 것이 더 높은 진리와 우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의 말의 핵심은 자신의 의지대로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이 영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는 때로는 물리적 현실보다 더 강렬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제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수동적인 삶보다 자신의 영혼이 삶의 주체가 되어, 단순히 ‘체험자’가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노자도 역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자신은 ‘창조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다면, 왜 모든 불행이나 사고를 다 막아주지 않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가 있는데요.

그 질문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영성에 대한 수많은 자료들을 토대로 어느 정도 추론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이 글은 저의 직접적인 체험에서 얻은 결론은 아니고 통계적인 자료와 저의 직관을 토대로 적은 글이라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우선 수호천사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수호천사들을 직접 보기도 하고 가끔 대화도 하기 때문에 그 존재들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으며, 저를 지켜주고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직접적으로 느끼기보다 중대한 결정을 하거나 깊은 생각을 할 때 직관이나 영감으로 도와주는 듯한 느낌이지만, 유체이탈 상태에서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텔레파시나 상징적인 이미지로 직접적인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영성자료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 한명 이상의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으며, 영적 단계가 높을수록 배움의 수준이 높아지고 지원해주어야 할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더 많은 수호천사들이 필요하며 고차원 천사들이 배정된다고 합니다.

어떤 영혼들은 상위자아와의 연결이 매우 강력하고 내면의 지혜를 통해 스스로 길을 찾을 수가 있어서, 수호천사 없이 상위자아의 보호와 안내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천사들 중에는 인간으로 윤회하면서 높은 영적 성장을 이루고 천사로 승격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으로 태어난 적이 없고 원래부터 천사계통으로 창조된 존재들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이, 제가 천사들과 대화를 해보면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수호천사들도 있고, 인간적인 감정은 거의 느낄 수가 없고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으로 삶을 살다가 천사가 된 영혼들은 인간적인 감성이나 느낌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화방식이나 분위기가 상당히 이질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고 안정적이고 평온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게 됩니다.

감정이 없는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은 아니면서도 깊은 평온함이나 차분함, 사랑, 지혜 등의 수준 높은 감성과 지성을 지녔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듯합니다.

자료들을 검색해보니 차원이 높은 수호천사일수록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천사는 아스트랄계나 멘탈계 사이에서 주로 활동하며, 인간적인 모습과 형태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고차원 천사는 멘탈계 이상의 훨씬 더 높은 차원에서 활동하며, 일반 천사보다 더 순수한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고 형태가 거의 없거나 유동적이라고 합니다.

일반 천사는 특정한 인간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주로 하며 인간과 감정적으로 가까운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만, 고차원 천사는 우주적 균형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매우 드물지만 특정한 사명을 가진 영혼, 높은 수준의 영적 성장 가능성을 지닌 영혼, 인류 전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영혼에게는 고차원 천사가 직접 배정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전생의 인연이나 조상이 수호천사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천사’라기보다 ‘조상령’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요.

천사는 인간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고 보통 인간의 영혼보다는 더 높은 차원에서 활동한다고 합니다.

아마 영적 성장단계나 특별한 유대관계나 여러 이유들로 인해 전생의 인연이나 조상이었던 영혼들이 배정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수호천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막을 수는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보통 수호천사들은 영혼에게 위험이 생길 것 같으면 직관 같은 느낌으로 전달해주는데요.

어떤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가 되거나 급한 일이 생겨서 그 곳에 가지 못하기도 하고, 꿈자리가 안 좋았다거나 뭔가 자신도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아서 다른 길로 돌아가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경험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자신의 직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느낌들은 수호천사들이 많이 개입을 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건물에 있다가 갑자기 나가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갔는데, 얼마 후 그 건물이 폭탄 테러를 당했다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리고 우울증이 심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순간에 가족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만두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런 느낌들은 수호천사들의 개입이 많은 듯합니다.

수호천사들은 느낌이나 기분, 이미지 등으로 사람을 위로해주거나 도와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예민하거나 직관이 발달한 사람은 그 느낌을 따라 잘 대처하면 위험을 피해갈 수도 있겠지만, 직관이 부족한 사람은 그런 신호를 잘 감지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 신호를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그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수호천사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자유의지까지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선택에 대해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험을 알고서도 그걸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은 들겠지만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수호천사들이 실제로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 사람을 보호해주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은데요.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거의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떠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핸들을 꺾어 주어서 큰 사고를 피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옮겨주어서 큰 부상을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고 막 길을 건너려고 하는 찰나에 뭔가 모를 힘이 자신을 뒤로 끌어당겨서 몇 초 뒤에 건너게 되었는데, 조금만 빨랐으면 사고를 당할 뻔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절벽에서 차가 굴러 떨어져서 큰 사고가 났었는데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한 사람이 사고 당시에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들 몇 명이 차체가 찌그러지지 않게 계속 받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글도 본적도 있습니다.

차원이 높은 천사일수록 에너지가 더 강력하고 하위차원에서도 에너지를 정교하게 다룰 수 가 있어서, 물질계에 실제로 물리적인 힘을 행사해서 사람을 구해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힘으로 사고현장 같은 곳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상당히 차원이 높은 수호천사가 개입을 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천사들은 강력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고차원 에너지를 낮은 차원에서 정밀하게 활용할 수 있게 변형하고 다루는 능력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나타나 위험에서 구해주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수호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잠시 물질화해서 도와주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가끔 애완견이 자기 주인이 부상을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곳에 알려서 주인을 살리는 경우도 많은데, 제 생각에 수호천사가 강아지의 의식에 의도적으로 개입을 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어떤 글을 보면 천사들은 높은 차원의 에너지를 조작할 수 있어서, 순간적으로 공기 밀도를 변화시키거나 에너지를 집중하여 물리적 힘을 가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천사들뿐만 아니라 고인이 된 가족의 영혼들도 그러한 원리로 물질계에 자신을 알리려는 신호를 보내는 듯합니다.

수호천사의 급이 높을수록 더 정교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차원이 높은 존재일수록 물리법칙을 초월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차원의 천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듯합니다.

게임으로 치면 레벨이 높은 캐릭터가 더 다양하고 강력한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ㅋ

그리고 차원이 높으면 시간과 공간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활동하는 범위가 넓어져서, 어떠한 이벤트를 발생하게 하거나 어떠한 위험을 막으려고 할 때 훨씬 더 정교하고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보호하는 사람이 언제 어느 곳에 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을 그 곳에 가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에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나 움직임이나 만나는 시간 등을 모두 계산해서 조율해야 하는데요.

차원이 높은 천사일수록 시야가 넓고 더 많은 변수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겁니다.

낮은 차원의 천사는 직관적인 경고나 감정적인 신호등의 가벼운 개입 정도만 가능할 수가 있지만, 높은 차원의 천사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현실세계를 조율해서 사람을 보호해 준다고 합니다.

영혼이 삶의 계획을 세울 때 어떠한 교훈을 얻거나 다른 영혼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질병이나 특정한 사고, 심지어는 죽음까지 계획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건 영혼퇴행의 자료들을 보면 가끔씩 나옵니다.

이런 경우에도 수호천사들이 개입을 할 수 없는 듯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러한 일들을 단순히 불행으로만 보지 않고, 더 큰 성장을 위한 기회로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 사람 스스로가 태어나기 전에 계획하고 동의를 한 것이므로 간섭을 할 수 없는 듯합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생사에 관한 일이 가장 큰일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수호천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 동안 그 사람을 무탈하게 잘 지켜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영적성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했다면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겁니다.

수호천사들은 영혼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이 주된 임무이긴 하지만, 영혼이 잘 성장하도록 인도하고 이끌어주는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는 목적이 성장에 있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성취하더라도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없는 이유에는 위험을 알아차리는 자신의 직관능력, 수호천사들의 능력, 운적인 요소, 영혼의 계획, 카르마, 자유의지 등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일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현실차원 뿐만 아니라 영적인 차원까지 의식을 확장하고, 각각의 차원의 관점에 현상을 바라보고 다각적이고 종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한 듯합니다.

수호천사들이 사람에게 어떻게 배정이 되고 어떻게 사람을 보호해주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나름대로 적어보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꿈이나 명상이나 유체이탈과 같은 영적체험 중에 검은 형체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무의식의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상상이고 두 번째는 실제로 저차원의 존재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억압된 기억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작용하면서 영적체험 중에 자신의 내면적 상태가 아스트랄계에서 투영되어 형상이 만들어지고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평범한 꿈을 꾸거나 가위상태일 때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자신의 의식차원이 좀 낮을 때 주로 생기게 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몸이 아파서 몸의 에너지 순환이 좋지 않을 때도 그런 현상이 생길수도 있고,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상상물이 아니라 실제로 그 차원에 살고 있는 존재들 일수도 있는데요.

제 경험상 보통 고차원 영혼들은 반투명하거나 빛이 나는 밝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고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영혼들은 엄청 귀엽게 보이기도 하고 천사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굉장히 편안하고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며 자신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사람으로 치면 착하고 인격이 높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에 반해 어두운 느낌이 든다는 것은 대게 낮은 차원의 존재들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리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대기 상태나 중력이나 주변 환경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낮은 차원인데, 그런 존재들이 보인다는 것은 자신도 그 차원의 진동수와 유사한 차원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연히 그런 차원에 접속이 되기도 하고, 차원을 높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게 상상이든 실제이든 저는 그런 차원이 보이면 바로 벗어납니다.

별로 느낌도 좋지 않은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지요.

가위상태에서 그런 것이 보인다면 몸 생각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하게 되면 의식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강력한 효과가 있어서 깨어나면 되고, 유체이탈 상태라면 차원을 높이면 되고 그게 잘 안되면 몸으로 복귀하면 바로 해결됩니다.

가끔 그런 존재들이 자신을 인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자신이 접속한 차원이 그 차원과 같거나 진동수가 유사하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영혼들을 눈으로 볼 수가 없듯이 자신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들은 볼 수도 없고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는 차원을 높이거나 꿈이나 명상 중에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차원을 높이기 위해 제가 해본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을 밝게 해달라고 요청하거나 더 깊은 차원이나 고차원으로 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것인데요.

차원은 마음이나 의식의 상태에 따라 대부분 결정되지만, 의식의 힘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잘 안됐었지만 계속 연습하다보니 어느 정도는 되더군요.

아무래도 사람으로 사는 동안에는 영혼이 육체에 항상 묶여 있다 보니, 영계에서 만큼은 잘 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런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되면 주변이 엄청 밝아지거나 유체가 공중으로 급상승하면서 높은 차원에 진입하기도 하고, 공중에 태양과 같이 매우 밝은 빛으로 이루어진 동그란 터널 같은 고차원으로 가는 통로가 보이기도 합니다.

빛은 영성에서 신성함, 의식의 상승, 보호의 상징으로 간주되는데 그 빛이 더 높은 차원으로 가는 의식의 통로를 열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 빛과 사랑으로 채워지는 상상을 하면 큰 도움이 되는데, 그러한 신성한 빛이 자신의 보호해주는 에너지 막을 형성해서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에너지들로부터 막아주기도 합니다.

스스로 보호막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수호천사들이 도와주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수호천사들은 우리를 보호해주고 도와주기 위해 우리 곁에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요청하지 않아도 항상 도와주고 있지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현실에서는 어떠한 상상을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상상으로 끝나지만, 고차원에서 상상을 하고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은 에너지나 물질을 창조할 수도 있고 차원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차원이 높으면 높을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원을 높이려면 마음속에 사랑스럽거나 행복한 느낌을 떠올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느낌들은 높은 진동수를 가지기 때문에 그런 느낌들이 많이 느껴질수록 의식의 차원이 높아지게 됩니다.

편안한 음악들을 마음속에 떠올려도 좋고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특히 순수하고 따뜻했던 기억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유체이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각몽을 꾸거나 명상을 할 때에도 그런 방법들을 해보면, 실제로 차원이 상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차원에서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제가 그동안 설명을 많이 했으니, 실제로 비교를 해보시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명상을 할 때 그런 게 보이는 분들도 있는데요.

명상 시작 전에 긍정적인 의도를 설정하고, 위에서 언급한데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빛이나 에너지를 요청하거나 상상하면 명상 중에 부정적인 존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몸이 힘든 상태에서 명상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의식의 차원이 낮아질 수 있으니, 그럴 때는 명상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 명상 전에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진동수를 높여줄 수 있는 부드러운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 등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이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의식의 진동수가 계속 변하게 되는데, 의식의 진동수가 좀 떨어지면 그런 경험을 할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의식의 진동수가 떨어지면 영적체험을 할 때 낮은 차원에 접속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평소에 진동수를 약간 높여주는 습관을 들이면 그게 상상이든 실제든 그런 경험들이 많이 줄어들게 되고, 밝고 행복한 꿈을 꾸거나 높은 차원의 경험을 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됩니다.

마음 공부에 좋은 글이나 영성에 관한 글을 본다거나, 힐링이 되고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듣는다거나, 조용하게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취미생활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편안하게 해주면 진동수가 조금씩 상승하게 됩니다.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공포물에 관한 영상이나 부정적이거나 적대감을 유발하는 뉴스 등은 자제를 하는 것이 좋고, 순수하거나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영화나 TV를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육체의 건강상태도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요.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고 에너지 흐름이 좋지 못하면 의식에 영향을 주어서 진동수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요.

유산소 운동이나 요가 같은 스트레칭 운동이 기혈순환에 상당히 도움이 되고 채식위주의 식단을 습관화하면 몸이 회복하면서 의식의 진동수도 함께 올라가게 됩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죠.

그 이외에도 제가 진동수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글을 적었으니 참고하시면 될 듯합니다.

영적으로 예민한 분들은 진동수가 상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가 있는데요.

일상생활에서 높은 진동수를 유지한다는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고, 약간 긍정적인 상태를 자주 경험한다거나 화가 잘 나지 않고 좀 너그러워 진다거나,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이 느껴지거나 어떤 장면을 보거나 음악을 들었을 때 아름다움과 감동이 잘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감정의 기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느낌들은 영적인 차원에서부터 의식의 진동수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오게 되고, 에고보다 영혼을 잘 느끼는 상태가 되었을 때 많이 느껴지게 됩니다.

스스로 영혼을 느끼고 진동수를 높여서 그런 상태들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인도해주는 수호천사들이 그런 좋은 느낌들을 전달해주어서 느껴지기도 합니다.

진동수가 높아지면 몸에서 뭔가 뭉쳐있는 에너지들이 부드럽게 흐르면서 기혈순환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거나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진동수가 높아지는 느낌이 자주 든다면 에고와 영혼의 균형이 조화롭게 맞춰지고 있다는 신호이며, 자신이 영적인 삶을 잘 사는 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그런 느낌들은 누구나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얼마나 더 깊고 자주 느낄 수 있는지가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삶의 질과 행복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의식의 차원이 낮아질 때 보이는 현상들과 진동수와 차원을 높여서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제가 아는 데로 적어보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의 하나는 꿈이나 유체이탈로 고인을 만났는데, 자신의 상상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인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자신이 영적체험을 통해 본 것은 자신의 무의식이 창조한 것들과 실제 영계의 모습이 섞여 있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저도 체험을 하면서 혼란이 많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하고 체험이라는 것이 워낙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주관적인 영역이다 보니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수많은 경험과 직관을 통해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절대 확실한 것은 아니니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체험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꿈에서 의식이 활동을 하거나 유체이탈을 하게 되면 낮은 진동수를 가지는 뇌가 항상 연결되어 있어서, 체험을 하는 동안 뇌가 계속 의식적으로 개입을 하기 때문에, 뇌의 생각이 아스트랄계에서 물질로 창조가 되어 보여지는 현상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가 아닌 뇌에 각인되어 있던 과거의 환경이나 고인의 살아생전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아스트랄계에 투영되고 창조되어 보여지기도 하고, 뇌가 아니더라도 영혼 스스로가 물질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물질이나 환경을 창조하기도 합니다.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영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상상의 창조물도 아니고 모든 것이 실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의식의 명확성’과 ‘차원의 높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서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면 뇌를 포함한 여러 가지 본능이나 에고들이 의식적으로 섞여있어서 영혼 고유의 순수하고 높은 진동수를 유지하면서 체험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이나 영적인 수련을 많이 하게 되면 고차원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정도의 높은 차원을 경험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에고가 작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은 의식의 진동수가 높아서 영계에서의 기억이나 전생을 쉽게 기억하기도 하고 천사들을 보기도 하는데요.

나이가 들면서 에고가 커질수록 진동수가 높은 영혼의식을 상대적으로 느끼기 힘들기 때문에 고차원을 경험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체험을 하는 동안 자신이 창조한 상상물들은 대부분 지상에서 사는 동안 습득한 여러 가지 체험이나 지식들에 근거하여 창조되어지는데요.

상상은 에고라는 개별적인 자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며, 경험, 기억, 감정, 사고의 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에고라는 것이 영혼보다 진동수가 낮기 때문에 에고의 개입이 많아진다는 것은 낮은 차원의 의식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며, 의식이 주관적이고 제한된 관점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만의 관념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차원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낮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 뇌, 본능, 에고 등에서 자신의 의식이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상상물이 별로 없는 순수한 영계를 볼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됩니다.

뇌를 포함한 육체적인 의식들과 분리가 잘 될수록 차원이 높아지고 그런 의식들에서 벗어나 순수 고차원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최면이 깊어질수록 영계정보를 더 잘 알 수 있거나 고차원의 존재들과 소통이 가능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차원 영계도 존재하기 때문에 차원이 낮다고 해서 모두 상상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로버트 먼로에 대해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그 연구소에서도 원격 투시로 어떠한 장소를 보고자 할 때는 절대 장소나 대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항상 시간과 좌표만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장소나 대상에 대해 미리 알려주게 되면 그러한 정보들이 원격투시나 유체이탈을 하는 동안 생각을 일으키고 물질이 창조가 되어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한 정보를 미리 알게 되면 좌뇌가 계속 개입을 해서 실제를 보는데 방해가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실제로 유체이탈을 해보아도 차원이 낮으면 뇌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러한 생각들이 물질을 창조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실제 영계를 보려면 차원의 높이가 매우 중요하고 의식의 명확성 또한 매우 중요하게 작용을 합니다.

보통 평범한 꿈들은 의식이 좀 흐릿하거나 집중되지 못한 느낌이 들지만, 차원이 높으면 의식이 현실과 차이가 없거나 현실보다 더 명확하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무의식에 끌려다니는 느낌이 아니라 현실에서처럼 의식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제 경험상 자각몽이 평범한 꿈보다 의식이 더 명확한 상태이고 유체이탈은 그보다 훨씬 더 명료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꿈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의식이 명확할 때는 이상하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차원을 경험하려면 의식이 명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잠을 깊이 자게 되면 의식의 명확도가 떨어지게 되고, 완전히 깨어 있는 현실에서는 의식이 명확하지만 진동수가 너무 낮기 때문에 그 중간지점이 가장 적절한 상태가 됩니다.

잠시 쪽잠을 자는 동안이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에는 의식이 꿈과 현실의 중간정도를 유지하기가 좋기 때문에, 그런 시간에 체험을 한다면 실제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 고차원에서는 몸이 공중에 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일정시간이 지나면 땅으로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고차원에서 차원이 떨어질 때는 유체가 몸으로 바로 복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낙하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차원이 낮으면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중력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게 되는데요.

차원이 떨어지게 되면 밝은 세상에 있다가 좀 어두운 세상으로 바뀐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고차원을 잠시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임사체험 중에 지구로 다시 돌아올 때는 터널을 통과하거나 지구로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표현들이 정말 많은데, 그것도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들이 매우 예민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몸이 오감을 느끼듯이 영혼들도 모든 감각들을 가질 수가 있는데, 제 경험상 시각과 청각이 가장 예민해집니다.

제가 현실에서는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데 유체이탈을 해서 가장 좋은 점은, 안경을 쓰지 않아도 엄청 멀리 있는 것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잘 보인다는 것인데요.

시력측정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매의 시력이 9.0이라고 하는데 제 추측으로 영혼의 시력은 아마 훨씬 더 능가할 듯합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것들도 엄청 선명하고 깨끗하게 잘 보이는 느낌이 들고 색감이 정말 진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후각이나 촉각들도 느낄 수가 있는데, 물질계의 육체와 거의 차이가 없거나 더 예민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인을 만나서 포옹을 한다거나 촉각을 느끼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감각들은 영혼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히려 더욱더 리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은 사람처럼 체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기가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많은 분들이 경험하는 현상이니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닌 듯하고요.

차원이 높으면 유체의 이동속도가 매우 빠른데, 유체의 이동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에테르체나 아스트랄체 같은 낮은 진동수를 가지는 하위체들의 에너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의식이 더 순수해서 잡다한 상상물들이 더 보이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의식이 순수해지면 더 높은 차원의 상태에 도달하기가 쉬워지며, 불필요한 감정적 혼란이나 하위체에서 오는 왜곡된 사고나 착각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스트랄체는 주로 감정적인 에너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감정, 집착, 개인적인 욕망 등에 영향을 받다 보니 주관적인 상상이나 감정적인 해석이 더 커질 수가 있습니다.

멘탈체 이상의 고차원 몸체로 유체이탈을 하면 이성적 사고와 추상적 이해에 의존하기 때문에, 경험이 더 객관적이고 진리와 가까운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높은 차원의 명상 상태를 통해 '망상'이 사라지고 진리를 직접적으로 깨닫는 상태에 도달한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차원을 경험할 때는 머리에서 잡다한 생각이 별로 안 들고 순수하고 약간 멍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아서, 어떠한 상황에 감정적으로 동요하기 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적인 욕망이 많거나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사람들은 하위체들의 에너지에 많이 묶여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고차원을 경험하기가 더 힘들지만 사랑, 자비, 배려, 연민, 지혜 등의 높은 진동수를 가지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하위체보다 상위영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유체이탈을 할 때도 그렇고, 사후에도 고차원으로 올라가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그리고 차원이 높을수록 공기가 청정하고 맑은 느낌이 들게 되는데, 차원이 낮으면 좀 무겁거나 탁한 느낌이 들 수가 있습니다.

차원이 높을수록 중력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어 있어서, 몸이 가볍고 유체가 빠르게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고차원에서도 원하면 걸을 수도 있지만 보통 날아다니거나 생각한 곳으로 바로 순간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은 차원에서는 전혀 날지 못하거나 새보다 느린 속도로 날아가기도 하지만, 차원이 높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태양계를 벗어날 정도로 유체가 매우 가볍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유체는 엄청난 고주파로 진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간이나 거리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원하는 지점에 의식의 힘으로 ‘즉시이동’하기도 합니다.

영혼이 원하는 장소로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임사체험의 자료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통 고차원 유체이탈을 하면 지구가 아니라 다른 차원이나 우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차원은 같은 공간에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유체이탈을 해서 자신의 방이라고 할지라도 고차원일수도 있지만, 고차원에서는 차원이동이 쉬워지고 유체의 이동속도가 워낙 빨라서 보통 다른 차원계나 먼 곳으로 이동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차원이 높을수록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많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과거나 미래의 시대를 보거나 방문할 가능성이 높고 우주의 먼곳이나 다른 은하계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영혼의 진동수가 높고 차원이 높으면 지구영계를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꿈이나 유체이탈시에 어떠한 존재가 실제인지 자신이 만든 환영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대화를 해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자신이 생각하거나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반응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상상 속 존재라면 대화의 내용이 대개 자신의 의도나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정보를 말하거나, 깊은 지혜의 말을 건넨다면 실제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그리고 실제라면 물체, 소리, 빛과 같은 주변환경의 변화에 대해 스스로 반응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떠한 질문을 했을 때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않고,숙고하거나 반문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독립적 사고의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도 반복적으로 만났을 때 그 존재의 느낌이나 성격이나 말투 같은 것이 변하지 않고 일관성이 있다면, 실제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영계로 직접 가서 고인들을 보게 된다면 이곳의 문화나 풍경과 좀 다른 이질적이고 초월적인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이나 건물이 엄청 크다거나 건물들이 물리법칙을 벗어나 떠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입은 옷들이 좀 낯선 느낌이 들거나 시대나 문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계는 차원이 높은 곳일수록 에너지가 높고 밀도가 낮아서 물질들이 고체보다 빛에 가까운 비물질의 형태들을 많이 띄게 되고, 밝고 투명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원이 더 높아지면 물질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자신이 본 세계에서 본 물질들이 고체가 아니라 반투명하거나 빛에 가까운 형태가 많이 보인다면 고차원일 가능성이 높고, 그 곳에서 고인을 만난다면 고인이 높은 차원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될 듯합니다.

그런 분들은 원래 진동수가 높은 영혼이었고 아마 살아생전에 누가 봐도 인격이 높거나 훌륭한 사람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인이 그런 곳에 있다면 천국같이 엄청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평범한 꿈은 체험의 내용이 일관성이 없거나 무작위적이고 산만한 경우가 많지만, 차원이 높은 체험은 내용이 논리적이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차원이 낮은 꿈은 자아의 욕망이 표출되는 경우가 많아서 음식이나 돈이나 욕정 등에 관한 내용이 많습니다.

하지만 차원이 높으면 의식이 에고의 욕망에서 많이 벗어나 있으므로, 어떠한 깨달음이나 진리를 이해하게 되거나 영적 성장이나 내적 평화를 가져오는 경험이 많은 편입니다.

보통 도망가거나 쫒기는 꿈들은 차원이 낮을 때 꾸게 되는데, 그런 꿈들은 대게 어둡고 불쾌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게 되는데요.

억압된 기억이나 무의식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내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이 아프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이 꿈에 나온다면 대부분 에고의 기억이 만들어낸 상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혼은 육체가 없기 때문에 아프거나 통증 같은 게 전혀 없습니다.

제가 가끔 몸이 안 좋거나 몸살이 났을 때 유체이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육체의 고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아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영혼이 통증을 느낀다면 그건 사람으로 살 때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영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일 수는 있지만, 그런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꿈들은 대부분 자신의 심리적인 불안이나 걱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상일 뿐이니, 고인이 아플까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영혼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간일 때의 습관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는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건 일시적인 현상일 뿐, 대부분의 영혼들은 자신들이 가야할 고차원으로 올라가서 평온한 상태에 머물게 된다고 합니다.

고인이 어두운 공간에 있는 것을 보았다거나 표정이 좋지 못해서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위에서 설명했듯이, 뇌가 기억하고 있던 고인의 생전모습이 창조되어 보여지기도 하기 때문에, 그게 고인의 현재 영계에서의 모습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별로 좋지 않은 모습들은 자신이 스스로 창조한 상상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그런 좋지 못한 모습이 실제 영혼의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죽음이후에 영혼이 본래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가기 전에 대부분의 영혼들은 중음계나 하위아스트랄계에 일정 기간 머물게 되는데, 그 곳에서 아스트랄체라는 감정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그런 현상들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는 합니다.

어둡다는 것은 낮은 차원일 가능성이 있지만, 영혼이 일시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거나 그런 감정들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과정에서 그런 환경을 스스로 창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혼들을 도와주는 영혼들이 많이 있어서, 안내를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많이 이기적이었다거나 엄청 물욕이 많아서 돈에 집착을 많이 했다거나, 좀 악하게 살던 사람이 아니었다면 안 좋은 곳에 갈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물론 중음계에서 길을 헤매는 영혼들도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성격에 평범한 삶을 살았던 대부분의 영혼들은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곳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특히, 성품이 착하다거나 인격이 높았다거나 남에게 베풀며 살았던 사람들은 중간차원이상의 고차원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영혼들은 절대 낮은 진동수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걱정이 된다면 고인을 위해 기도를 해주고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주면, 고인에게 위안이 되고 두려움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으로 찾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고인과 어떠한 장소에서 대화를 했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영적인 세계에서는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사실 공간이라는 개념이 이곳과는 많이 다릅니다.

유체이탈을 해서 영혼이 직접 영계로 가기도 하고 유체가 이동하지 않고 지상에서 원격투시로 영계를 보기도 하지만, 물질이 없는 공간에서 텔레파시로 대화만 하기도 합니다.

고인의 영혼이 지구를 방문해서 지구에서 만난다면 아무래도 자신이 살던 물질계 환경과 비슷한 느낌이 들겠지요.

그래서 먼저 가신 분들과 연결이 되고 교감이 된다면 장소보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돌아가신 분이 화려하고 멋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거나 부축해서 올려 보내주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제가 볼 때 그런 꿈은 실제 영계에서 거주하는 집을 보았을 가능성도 있고 영혼이 어떠한 차원의 장소에 안착 한 것을 상징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차원이 높은 곳에서는 어떠한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거주하는 집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영혼이 가야할 곳으로 잘 가고 있다는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될 듯합니다.

영혼은 자신이 거주하는 환경을 스스로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창조의 능력은 차원의 특성에 따라 다르고 영혼마다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계에서 영혼들의 집단의식이 전체적인 환경을 창조하게 되고 영혼 개인의 의식이 그 환경에 조화를 이루어 자신만의 공간에 환경을 창조한다고 합니다.

지상에서의 환경이나 건물들은 고정적인 형태를 띠지만 영계에서는 영혼이 의식의 힘으로 쉽게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꿈을 꿀 때마다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머무는 장소나 환경보다는 그 영혼의 심리상태나 표정이 훨씬 더 중요하겠지요.

차원이 높아질수록 물질이 투명하거나 견고하지 못해서 잡히지도 않는 두리뭉실한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곳은 절대 꿈처럼 두리뭉실하거나 흐릿한 세계가 아니라 물질의 밀도나 형태만 다를 뿐, 어떤 무엇보다 명확하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곳입니다.

저에게는 길을 건너면 옆 동네가 있고, 바다를 건너면 다른 나라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가보지 못했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동네 밖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아이가 동네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떼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겠죠.

그럴 땐 ‘없다’보다 ‘모른다’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겁니다.

‘실제’라는 개념을 뇌의 감각에 한정지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잠시 뇌를 활용해서 경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이지,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죠.

모두가 죽고 나면 알게 될 일이지만, 살아생전에 자신의 본질을 알고 사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겠죠.

마지막으로 노자의 명언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사람은 그의 영혼보다 육신에 신경을 쓰게 되면, 그는 육신이 되어버릴 것이고 영혼의 길은 영영 잃게 되는 것이다.

자아와 영혼은 환상을 자아낸다.

인간의 가장 큰 환상은 현실이 환상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환상을 창조하는 자는 현실보다도 더한 현실을 창조할 것이고,

영혼의 길을 따라 우주의 길 또한 찾아낼 것이다.”

먼저 가신 분들이 영혼이 된 입장에서 지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에 대해 깊이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완전히 고차원 영계로 올라가기 전에는 인간일 때의 감정들이 아직 남아있고 약간의 혼란한 시기가 있겠지만, 영계에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기억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면, 인간의 관점에서 본 가족과 많이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우선 그쪽 세상으로 가게 되면 사람이 태어나는 이유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이 왜 그런 삶을 선택했던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자신이 왜 그런 가족들과 인연을 맺고 산 것이며, 지난 삶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고 얼마나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생기게 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영혼에게 전생이란 한 번의 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생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만남과 이별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일임을 알고 있어서, 이번 한 번의 생에 크게 집착을 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가족들과의 이별에 깊은 슬픔을 느끼기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떨어져있는 건 잠시일 뿐 시간이 지나고 가족들도 이번 생을 마감하게 되면 어차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상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세계를 볼 수도 없고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답답하기만 하고 슬프기만 하겠지만, 거기서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고 체험을 위해 잠시 경험하러 내려간 것임을 알고 있어서, 답답할 일도 없고 그렇게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지상의 가족들과 다시 재회하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겠죠.

임사체험이나 여러 영적체험들을 보면 고인들과의 만남을 가질 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당장 돌아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영계가 훨씬 더 좋은 곳이니 자신과 함께 영계로 가자고 말하는 경우는 제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영혼이 되어도 지상의 가족이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건 당연한 것인데 도대체 왜 그런 말을 계속하는지 논리적으로 천천히 생각을 해보면 이해할 수가 있는데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상을 떠나 영계에서 기억을 회복하게 되면 사람으로 태어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가장 큰 목적은 경험을 통해 영혼이 성장하는 것인데, 거의 대부분의 영혼들은 한생에서 거의 성장하지 못하거나 미미한 발전만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지난 삶에 대해 후회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망각하고 또 전생과 같은 삶을 반복했다는 사실에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을 하는 영혼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영혼들이 평균적으로 더 많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그동안 수많은 임사체험, 영혼퇴행, 전생최면, 유체이탈의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지상의 가족의 영혼과 특별한 계기를 통해 만나게 되었을 때, 가족의 영혼이 자신이 지나온 전처를 똑같이 밟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자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영혼은 지상에서의 목적을 꼭 달성해서 영적성장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겁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영혼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가족이 그 기회를 놓치고 인생을 허비하게 놔두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 만큼은 끝까지 말리게 되고, 다시 되돌아가서 영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계속 설득을 하게 됩니다.

그 설득에 수긍을 하고 스스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가족의 영혼이 밀어서 떨어지듯이 지구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쪽 세상과 이쪽 세상은 어떠한 눈에 보이지 않은 에너지의 경계가 있는데 그 선을 넘어가게 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생사를 넘나드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런 체험들을 하게 되는데, 회생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정해져있고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다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돌아가야 한다고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합니다.

빛의 존재들도 마찬가지고 고인이 된 가족들도 모두 하나같이 해야할 일이 있으니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만큼 가족의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가족을 위해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없다면 돌아가거나 말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겠죠.

제가 한번은 유체이탈을 해서 어느 영계의 절 주위를 구경하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나가던 어떤 중년의 여자스님이 저를 보더니 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여기까지 어떻게 왔느냐며 저를 물질계로 내려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그 스님은 약간 걱정스런 눈빛이었고 저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영계에서 사는 영혼들은 확실히 물질계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많은 듯합니다.

가끔 죽을 뻔 하다가 살아 돌아오신 분들 중에 저승사자가 명부를 잘못 보고 엉뚱한 사람을 데리고 영계로 갔다가, 높은 존재의 영혼들이 호통을 치고 서둘러 되돌려 보내서 살게 되었다는 경험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만큼 지상에서의 삶이 영혼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에, 실수로라도 그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영계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상관없이, 명이 다할 때까지 기회를 공평하게 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가족이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영혼도 함께 그 슬픔에 깊이 공감을 하게 됩니다.

영혼이 되었을 때는 인간일 때 보다 감정의 깊이가 훨씬 깊게 느껴지게 되는데, 행복한 감정도 훨씬 더 크게 느껴지지만 슬픔이라는 감정도 10배 이상 더 크게 느껴지게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가족이 너무 큰 슬픔에 빠져있으면 자신도 그 슬픔의 몇 배가 느껴지게 되고, 그 모습을 보는 게 힘들기도 하고 그리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유체이탈을 해서 사람들이 화가 나거나 술 취해서 싸우는 장면들을 본 적도 있고 슬퍼서 우는 장면들을 보기도 하는데, 영혼일 때 그런 낮은 진동수를 가진 감정의 에너지들을 느끼게 되면 그리 좋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특히나 가족들끼리 다투거나 가족이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큰 슬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족들끼리 축하파티를 한다거나 재밌게 놀면서 행복해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한번 상상을 해보시면 되는데요.

만약 자신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면,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 게 가장 좋을지 생각을 해보면 됩니다.

너무 슬퍼서 일상생활도 못하고 병문안도 못 올 정도로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건 누구나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슬프고 힘들더라도 자신을 걱정해주고 위로해주고자 하는 마음에 병문안도 가끔씩 와주고, 남은 가족들도 잘 챙기면서 마음을 추스리려고 노력을 하는 모습을 저라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쉽지는 않겠지만 가족들에게 영혼과 사후세계의 존재를 이해시키고,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와 같은 것이니, 내가 없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라는 말을 전해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가족 곁에 내가 살아있었음을 기억해주고, 그립고 보고 싶더라도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기 전까지는 잘 견뎌내고 과제를 잘 수행한 후 사후에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자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가끔은 지상의 가족들을 보러 왔을 때는 밝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을 할 것 같습니다.

사별하시는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보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살아생전에 고인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일겁니다.

남은 가족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영혼들도 그런 아쉬움을 느끼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항상 내가 더 성장하고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내가 지금 성장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 때의 가족에게도 힘들게 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과 같은 후회를 또 반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전생에서도 가족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후회하고 다음 생에서는 꼭 잘해 볼 거라는 다짐을 하고 태어났음에도,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의식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사별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겠지만, 살아생전에 사랑을 많이 베풀어주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는 덜 후회하고 고통도 그만큼 덜하지 않을까 합니다.

영혼은 성장하게 되면서 인격이 향상되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성숙해지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능력들이 생기게 됩니다.

대표적인 능력중의 하나는 차원이동의 능력인데요.

진동수가 높은 영혼은 낮은 영혼에 비해 갈 수 있는 차원들이 훨씬 더 다양합니다.

자신보다 진동수가 높은 차원은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진동수가 높은 영혼이 훨씬 더 고차원들을 자유롭게 오갈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이 가지고 있는 진동수보다 낮은 차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진동수를 낮추어야 하는데요.

영계에서 영혼들은 마음공부에 관한 것들도 배우게 되지만, 에너지를 조절하거나 다루는 능력들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진보된 영혼일수록 에너지를 능숙하게 다룰 수가 있는데, 자신이 원하는 차원으로 원활하게 방문하려면 그 차원의 진동수에 맞게 자신의 진동수를 조절해야합니다.

진동수를 조절하는 능력도 그렇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차원의 에너지를 저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들도 영혼들의 발전 수준마다 모두 다르다고 합니다.

영계에서는 자신의 모든 전생에서의 가족들을 다 기억할 수가 있는데, 어떤 가족의 영혼이 보고 싶다면 우선 그 가족이 살고 있는 차원의 진동수보다 자신의 진동수가 같거나 높아야 하고 방문하려는 차원의 진동수에 맞게 자신의 진동수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진보된 영혼일수록 차원이동이 자유로워서 보고 싶은 영혼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보러 갈 수가 있다는 것인데요.

자신의 능력으로 차원이동을 하기도 하지만, 발전단계가 그리 높지 않은 영혼들은 고차원 영혼이나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아 차원이동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제가 유체이탈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유체이탈을 하면 보통 자신의 의지로 차원이동을 하거나 무의식에 자신도 모르게 차원이동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상위자아나 수호천사가 자신이 지켜주는 영혼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거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어 할 때 차원이동을 시켜주거나 함께 그 차원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고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하는데요.

영계에서도 그런 식의 차원이동이 이루어질 거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인연이 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영혼과 함께 다양한 차원들을 방문할 수도 있고, 영적인 가르침을 주어 그 영혼이 좀 더 진화하고 차원 상승을 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됩니다.

영혼퇴행의 자료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영계에서 살 때에는 하늘을 떠다니며 비눗방울로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전생에서 자신과 가족으로 살았던 영혼이 보였는데, 그 영혼에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높은 차원으로 올라 올 수 있겠다면서 격려와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 주더군요.

아마도 자신보다 좀 낮은 차원에 살고 있는 자신과 친했던 영혼을 보는 장면으로 보이더군요.

제가 유체이탈로 본 영계 중에 '천공의 섬 라퓨타'처럼 떠다니는 차원의 세상이 있고,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요.

위에 비눗방울 세상에서 살았었던 영혼이 적은 글처럼, 영계에는 실제로 떠다니는 듯 한 차원의 세상들이 있고 그 차원보다 낮은 차원들은 보통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차원은 분리되어 있고 저차원은 고차원을 볼 수가 없지만 고차원에서는 저차원을 훤히 다 볼 수가 있어서, 그런 구조나 형태로 보이는 경우가 있는 듯합니다.

에너지 치유능력도 영혼마다 모두 다른데 진보된 영혼일수록 에너지를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 좋아서 자신과 친한 영혼이나 치유가 필요한 영혼들에게 에너지 치유를 통해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영혼들을 치유해줄 수도 있지만, 낮은 차원의 에너지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다른 영혼들을 지켜줄 수도 있습니다.

진보된 영혼일수록 에너지 보호막을 형성하는 능력이 좋아지게 되고 영계에서도 그런 능력은 다른 영혼들을 보호하는데 유용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의 수호천사로 활동하게 된다면 그 능력은 지상의 영혼을 지켜주는 데에도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이 그만큼 진보하고 더 높은 존재가 될수록 영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게 되고, 자신이 사랑하는 영혼들에게도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줄 수 있게 됩니다.

지상에서는 물질적인 도움을 주거나 위로해주고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이지만, 영계에서는 영적인 차원에서 다방면으로 지원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많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영적인 차원까지 삶의 의미를 확장시켜서 생각을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몸은 죽어도 정신은 절대 죽지 않고 영혼과 함께 불멸합니다.’

사별하신 분들은 이 말을 꼭 가슴에 새겨두시고 힘들 때 마다 되뇌이면서 강한 믿음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가족이 몸이 병들고 노화가 온다고 하더라도 절대 우리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져버리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가족의 몸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신 분들과 다시 만나는 것은 기다리면 자연스레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니,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영적으로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먼저 가신 분들도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를 한번 쯤 생각해보셨으면 어떨까 합니다.

사별하신 분들을 위해 가족이라는 관점에서의 영적성장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보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러 신비주의 사상이나 뉴에이지, 신지학, 철학, 심리학, 종교 등에서 영혼은 층 구조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에테르체나 아스트랄체 같은 용어들은 이러한 사상들에서 유래된 것인데, 그러한 다층적인 구조로 영혼의 의식구조를 설명하며 영혼이 성장함에 따라 영혼의 몸체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되어 가는지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임사체험이나 영혼퇴행이나 유체이탈의 자료들을 보면 영혼을 다층구조로 분류해서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비주의 사상이나 철학, 전통적인 종교들은 사상이나 신앙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인 틀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체계 중에는 깊은 영적 체험과 통찰을 통해 형성된 것도 있겠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론들도 있을 것이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질된 부분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틀에 갇힌 사상이나 철학, 종교 등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영혼의 구조와 깨달음에 대한 부분은 다양한 사상들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공통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많기도 하고 볼만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 분석을 좀 해보았습니다.

이 글은 한두 가지의 사상에서 나오는 내용들이 아니고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사상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들만을 정리하고 추려내어서, 그 내용들을 기반으로 저의 영적 견해를 적은 글이며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 영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부분들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웹에서 검색해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 통합하고 추론을 해서 내린 결론이기는 하지만, 근거도 부족하고 절대 확실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꼭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영혼의 몸체의 발달 수준에 따라 영혼이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성향들은 실제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현실적으로 잘 설명해주기도 하고, 특히 깨달음에 대한 부분은 제가 평소에 생각을 해왔었던 것들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이 글은 꼭 영성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사람의 성격이나 자질, 재능, 심리, 인격 등을 철학적이고 이론적으로 해석을 해놓은 글이니 한번쯤 읽어보시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 신비주의 사상이나 뉴에이지, 철학, 신지학, 종교에서는 영혼은 층 구조로 이루어진 여러 몸체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혼의 구조가 제각각 다르게 묘사되어 있고 몸체의 개수나 역할은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가장 낮은 육체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올라갈수록 체가 미묘해지고 고차원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육체 에너지의 조절과 균형을 담당하는 에테르체나 감정적인 경험을 저장하고 표현하는 아스트랄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환생을 할 때는 그 체들을 입고 태어나게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런 하위체들은 점점 소멸하거나 상위체에 통합이 된다고 하는데 개인의 영적상태와 경험에 따라 소멸하는 시간이나 과정은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스트랄체가 소멸하게 되면 인간적인 감정은 사라지게 되지만, 더 높은 차원의 평화와 조화 같은 정제된 감정들은 유지되게 됩니다.

하위체가 소멸하는 시간이 다른 이유는 사람마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체와 더 깊이 상호작용하고 그것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가 모두 다르다보니, 많이 사용하는 체일수록 에너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육체적 경험에 강하게 의존하며 물질세계에 대한 집착이 크다면 에테르체나 아스트랄체에 남아 있는 에너지 패턴도 그만큼 강해지게 되고, 반대로 영적으로 성숙하고 물질적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 체들의 에너지가 크지 않기 때문에 사후에 하위체들이 더 빠르게 소멸하거나 상위체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진보된 영혼일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체들이 더 미묘하고 덜 물질적이기 때문에 감정적, 에너지적 잔여물이 적고 더 순수한 에너지 상태로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최면영상을 보면 영혼들은 이 과정을 ‘무거운 옷을 벗고 천상으로 올라간다’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하위체들을 ‘무거운 옷’으로 많이 표현을 하더군요.

하위체들이 느리게 소멸하게 되면 그만큼 중음계나 하위 아스트랄계에 오래 머물게 되어 혼란이 생기기도 하고, 그 영혼이 다시 환생할 때 하위체의 잔여 에너지나 감정적 패턴을 가지고 올 수 있어서 다음 생에서도 영향을 받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는 사후에 안내자 영혼을 만나게 되면 영계로 데려가기 전에 보통 지상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충분히 준다고 하는데요.

영계에 올라가서 이전 삶을 되돌아보고 다음 환생도 준비해야 하고 영계에서의 또 다른 배움을 위해 해야 할 일들도 있기 때문에, 안내자 영혼이 너무 오래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그런 곳에 오래 있지 말고 자신이 가야할 높은 차원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정상적인 곳으로 가게 되면 먼저 죽은 가족과 재회하기도 하고 지난 생애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도 하고 안내자 영혼이나 친구 영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는 원래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살던 차원으로 가게 되고 상위자아와 합일을 하게 됩니다.

중간계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고차원으로 바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 물질적 소유나 부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좋고, 명상이나 내면탐구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도움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미움, 분노, 두려움, 탐욕 등의 낮은 진동수의 강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많이 가지고 살게 되면 아스트랄체에 그 에너지들이 남을 수가 있기 때문에, 되도록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한을 가지지 말고 수용하고 용서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타인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게 되면 에고에서 벗어나 하위체의 에너지 패턴을 약화시키게 되어 매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수함, 소박, 사랑, 지혜, 용서, 자비와 같은 높은 진동수를 가지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게 되면 상위체들의 에너지가 더 활성화가 많이 되게 되고 하위체들의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하위체가 빨리 소멸하게 되어 높은 차원으로 빠르게 올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중간계로 들어간 영혼이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을 자각하는 것라고 하는데,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해야하고 물질적 삶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차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고, 그 곳으로 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데요.

안내자나 수호천사들은 항상 자신의 주변에 있어서 부르면 도와주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유체이탈을 했을 때 가끔 도움이 필요하면 마음속으로 수호천사를 부르기도 하는데, 저차원만 아니면 바로 말을 걸어주는 경우가 많더군요.

차원이 너무 낮은 곳에 있으면 고차원과 진동수의 차이가 너무 커서 고차원의 존재들이 잘 보이지도 않고 그들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가 않습니다.

차원의 높이에 따른 고차원 존재와의 소통에 대해서는 제가 유체이탈을 하면서 정말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헤매고 있는 영혼들을 구제하기 위해 고차원에서 내려와 활동하고 있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혼들은 매우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고 진심으로 도우려는 에너지가 느껴지게 되는데요.

그런 느낌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저급령들과 구분하시면 되고,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안내를 받으시면 됩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자신의 차원이 너무 낮은 곳에 머물러 있으면 고급령들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의식의 진동수를 높여주어야 하는데요.

기도나 명상을 해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평화가 찾아오게 되고 차원이 높아져서 고차원 존재들이 접근하기가 더 쉬워지게 됩니다.

만약 살아생전에 어떤 사람에 대한 원한이 있었다거나 엄청 미워했던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에 대해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과 자비심이 생기게 되어 진동수가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살아생전에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특히 순수하고 따뜻했던 기억들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빛을 생각하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데요.

빛은 영성에서 신성함, 의식의 상승, 보호의 상징으로 간주되는데 그 빛이 더 높은 차원으로 가는 의식의 통로를 열어주게 됩니다.

빛을 생각해서 고차원으로 가는 길을 여는 방법은 영성에서 많이 언급이 되고 있기도 한데요.

제가 유체이탈 한 상태에서 가끔 차원을 높이기 위해 실제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하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체이탈을 해서 어떠한 차원에 있을 때 빛을 떠올리면 주변이 엄청 밝아지거나 유체가 공중으로 급상승하면서 높은 차원에 진입하기도 하고, 매우 밝은 빛으로 이루어진 동그란 웜홀이나 터널 같은 고차원으로 가는 통로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차원을 높이기도 하고 평소에 듣던 음악 중에 진동수가 높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떠올려도 도움이 되더군요.

그리고 자신과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카르마의 무게를 덜어내는 효과도 있어서 차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혹시라도 사후에 그런 곳에 가게 된다면 이 글을 잘 기억해두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영계에는 수많은 층들이 존재하는데 죽고 나서 중음계나 아스트랄계를 벗어나서 정상적인 영계로 올라가면 영혼이 입고 있는 여러 몸체 중에 가장 발달이 되어있고 활성화되어 있는 체와 진동수가 일치하는 차원에 머물게 된다고 합니다.

영계에서 각 차원은 그 차원에 속하는 영혼들이 공유하는 의식 상태와 에너지를 반영하고 있어서, 영혼이 가진 에너지 패턴과 의식 수준이 해당 차원의 에너지와 공명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요.

이는 마치 물리적인 법칙처럼 작용하는 것인데 물리적으로도 같은 진동수끼리는 서로 공명하는 원리와 비슷한 것입니다.

영혼이 가진 진동수와 일치하지 않는 차원에서는 그 차원이 제공하는 에너지가 영혼에게 부담스럽거나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머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영혼은 모든 체를 입고 영계에서 살아가지만 영혼들마다 진화정도에 따라 그 체들의 발달 정도가 모두 다릅니다.

영혼의 몸체들의 속성과 역할은 약간 중복되는 부분들도 존재하지만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각각 고유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요.

영혼의 몸체를 분류하는 이름이나 개수는 사상이나 철학에 따라 모두 다르지만 이 글에서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세 가지로 단순화하고 “멘탈체”, “직관체”, “근원체”라는 명칭을 임으로 만들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멘탈체]

멘탈체는 논리적인 사고나 분석, 판단, 추론, 이성, 지적활동을 담당하는데 일반적으로 영혼의 지성이 발달하게 되면 이 체가 강화되고 확장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학습하거나 수학이나 물리학 등을 배우면서 논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문제해결 등을 하게 되면 이 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높은 수준의 철학적, 영적 사고를 다루는 상위 멘탈체와 일상적인 사고와 감정, 분석적 이성을 담당하는 하위 멘탈체로 구분짓기도 합니다.

이 체가 발달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문제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지식에 기반 한 의견을 제시하는데 능숙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데요.

감성보다는 이성에 근거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리려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거나 높은 학위가 있을 수도 있고 사업적인 수완이 좋아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수도 있겠죠.

이 체는 인지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인지력은 자기인식, 생각, 학습, 기억, 주의력, 문제 해결, 의사 결정과 같은 모든 정신적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지력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이며, 살면서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모든 행위들이 이 체와 관련되어 있는데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런 능력들이 실제로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러한 능력은 뇌의 발달여부와도 관계가 있긴 하지만 육체적인 능력이기 이전에 영적인 차원에서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들을 영혼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윤회를 하면서 많은 경험들이 쌓이게 되고 그런 능력들이 좋아지게 되면 이 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지력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 자기 인식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철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도 하는데 ‘자신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 그리고 내면적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사고 과정과 내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인데요.

누구나 항상 하는 생각이고 사람마다 다 똑같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을 관찰해 본 결과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했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객관적으로 보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생각의 깊이는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자기인식력이 좀 부족한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앞뒤가 안 맞거나 비합리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좋은 결론으로 가지 못하고 계속 갈등이 반복되거나 답답한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대화가 불균형해지거나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무례함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되는데요.

이기적이라서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인식력이 부족해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도 있고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윤회를 하면서 자기 인식능력이 좋아지게 되면 생각이 논리적이거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상대방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고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또한 자신이 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주게 되는지에 대한 인식력이 좋아지게 되면 상대방은 대화의 흐름이 부드럽고 편하고 소통이 잘 된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대화할 때 그런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성격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이 수많은 윤회를 통해 성장하고 배우면서 터득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나는지, 우울한지 등의 마음의 상태를 인지하는 능력에도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는 게 생활화되어 있고 익숙해져 있다 보니, 자신이 듣기 불편한 말투나 거친 표현을 한다는 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꼭 소리를 질러야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은 말투나 표정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에너지적인 차원에서도 다 느껴지기 때문에 상대방은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정중하지 못하고 말을 함부로 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스스로는 그걸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대인관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생기게 되고 그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자기성찰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은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전조증상들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자기인지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그런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면 스스로 인지를 하고 병원에 가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기도 하고 마음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걸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뭔가 좀 이상함을 느끼지만 뭔지 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병이 깊어지게 되는데, 그 때가 되면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떨어지게 되어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위해서는 정신력이나 문제해결 능력도 중요하지만 자기 인지 능력도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인지능력이 좋아지게 되면 더 깊은 자기 인식이 가능해서 자기성찰이나 자아실현이 가능해지고 감정통제 능력도 함께 향상된다고 하는데요.

특히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에고와 참 자아를 구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우주 전체와의 연결을 깨달아 영적성장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인식이 없다면 내면의 상처, 감정적 패턴, 부정적인 생각 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영적 진보가 방해받을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인지할 수 있어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성에서는 ‘현존’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언급이 되어 있는데 자기 인식력이 부족하면 의식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어 과거의 상처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항상 현재에 살아가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데요.

그건 물리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시간에 존재한다는 개념일 뿐이고, 영성적으로 보면 물질적인 시간 개념보다 정신적인 시간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육체는 현재에 존재하더라도 정신이 과거의 상처와 집착에 얽매여 있다면, 그 사람은 현재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요.

의식수준이 높을수록 자신의 마음과 감정의 흐름을 인식하고 그것에 휘말리지 않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현재 순간에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에 머무는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고 깨어있는 의식 상태에 더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존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인식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나 인내심이 필요한데 그런 능력이 좋아짐에 따라 멘탈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어떠한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할 때 사람들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나 집중력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그 일을 해도 금방 질리고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몇 시간 이상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성격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한 부분들도 영혼의 멘탈체의 발달유무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목표를 세우게 되면 사람마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건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감량에 성공하고 요요현상 없이 계속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멘탈체의 속성 중에 인내심이 매우 발달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고 ‘멘탈이 강하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임감도 멘탈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요.

책임감은 감정적인 충동보다 계획적이고 신중한 행동을 요구하므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평가하여 행동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임감이 좋으려면 자신의 행동이 타인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사랑과 공감과 같은 감성적인 면도 필요하기에 직관체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책임감이 다른 이유도 영혼의 이러한 특징 때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직관체]

그 다음으로 높은 체는 “직관체”인데 영적 직관, 지혜, 통찰, 통합, 사랑, 자비와 같은 높은 차원의 영적 특성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이 체는 직관적 통찰과 영적 진리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개인의 자아를 넘어서 타인이나 모든 생명체와 연결성을 느끼고 더 높은 차원의 통합된 자아를 가지게 합니다.

직관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멘탈체와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인데요.

멘탈체만 발달한 사람과 직관체가 함께 발달한 사람은 대화를 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주로 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의 추론이나 직관이 필요한 질문을 하면 질문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직관적인 느낌보다는 경험과 논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많아 보일지라도 통찰력 있는 답변을 얻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대부분 자신이 책에서 보지 못했거나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강하게 부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증명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한다면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멘탈체가 발달한 사람은 계속 증거 자료를 요구하게 되고,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느낌으로 거의 확실하다고 알고는 있지만 사람들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지식에 기반해서 논리적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 믿지 않는다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는 학자들의 견해를 완전히 신뢰하거나 신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데서 오는 불확실성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멘탈체만 발달한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사랑의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떠한 판단을 할 때 과도하게 이성적이거나 기계적인 느낌을 받을 수가 있어서, 판단은 잘 하는 것 같지만 조금은 차갑거나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복잡한 사고나 추론을 해야 할 때는 뇌보다 영혼의 사고능력이 많이 발휘가 되게 되는데, 영혼마다 발달한 몸체에서 생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직관체가 발달한 영혼은 멘탈체만 발달한 영혼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상위영체를 동시에 사용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매우 직관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은 지식에 기반을 둔 논리적인 생각을 초월하여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어떠한 직관적인 느낌이나 촉에 많이 의존해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고장 난 장비를 수리하거나 프로그램 버그를 잡아야할 때,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강력한 직관으로 매우 빠르고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통합적인 통찰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직관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인데요.

통찰력은 복잡한 주제나 상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여 그 안에 숨겨진 의미나 연결성을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은 꿈, 자각몽, 유체이탈, 원격투시, 임사체험 등의 영적체험들을 해석을 할 때 서로 분리해서 전혀 다른 체험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연결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따로따로 분석을 해보려고 해도 깊이 있게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통찰력이 발달한 사람은 그 체험들은 의식의 상태에 따라 경험하는 현상이 조금씩 다른 것일 뿐, 결국 의식의 측면에서 봤을 때 같은 체험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의식의 진동수와 차원의 높이가 달라서 체험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 체험들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굳이 따로 분리해서 설명을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도 못하고, 그런 것을 분류해서 분석을 하는 것보다 그 체험들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영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건강이나 의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통찰력이 뛰어난 경우, 몸을 단순히 기계나 부품으로만 보지 않고, 몸의 모든 부위가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는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와 연결성을 깊이 이해하기 때문에, 어떠한 질병이 생겼을 때 육체적인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치유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정보를 찾고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어서, 병원에만 의지하지 않고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하기도 하고, 한의학이나 대체의학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하려고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기, 혈액, 음식, 운동, 마음, 스트레스, 습관 등의 연관관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데 중점을 두게 됩니다.

통찰력이 발달한 사람은 무엇이든 표면적인 것보다 근본이나 본질을 찾는데 깊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요.

영성에 관심을 가진다면 신비체험이나 영적인 현상들보다 영성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어 있고, 질병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질병의 현상이나 치료제보다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관심을 더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나 껍데기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면적인 본질과 진리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보더라도 외모나 직업보다 마음이나 영혼, 가치관 등의 내면적인 부분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겠죠.

그리고 이 체가 발달하면 사랑이나 자비심, 배려심 등을 많이 가지게 되어 있어서 단순히 문제해결보다 감정적인 공감이나 조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논리적인 사고만 하는 사람들보다는 공감능력이나 배려심도 뛰어나고 부분보다 전체를 통찰하는 능력이 좋아서 매우 따뜻하고 편하고 지혜롭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영적 삶과 물질적 삶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며 두 차원의 조화를 이루는 데 능숙하다고 합니다.

영성에만 몰두해서 현실을 등한시 한다거나 에고가 강해 물질적인 삶에 치우치는 성향이 거의 없고, 영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고차원적인 에너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가 있어서 치유, 보호 또는 창조적인 목적으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계에서는 물리적인 제한이 없고 영혼은 더 정제된 고차원의 에너지를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능력들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상에 태어나게 되면 기억을 잃어버려서 자신이 그런 능력이 있는지조차 모르기도 하지만, 명상이나 영적 수련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구의 육체적인 한계 때문에 영계에서보다 능력에 제한이 많이 생기긴 하지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매우 세밀하게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에너지적 수준에서 인식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떠한 분위기나 표정으로 읽어내는 게 아니라 영혼이 실제로 에너지 차원에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감각이나 관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과 에너지적 연결을 통해 감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로 인해 타인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읽어내고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체의 이런 부분이 발달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타인의 에너지 진동수에 맞추어 자신의 진동수를 조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사람이 슬픔에 빠져 있다면 자신의 에너지를 그 슬픔의 낮은 진동수에 조화롭게 맞추어 함께 공감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영혼은 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고 그 에너지에 맞추어 자신의 에너지를 부드럽고 안정된 상태로 조율하기도 하고 치유의 에너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치유를 통해 상대방의 진동수가 점점 올라가게 되면 자신의 진동수도 그에 맞추어 조금씩 회복시킨다고 합니다.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위로와 지지가 되어주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은 깊은 내면의 평화와 고요함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이 항상 평온하고 안정적이라고 합니다.

높은 진동수의 따뜻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외롭고 우울하거나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들이 별로 없으며, 그런 마음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회복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있어서 타인에 대해 깊은 연민과 사랑을 표현하며, 모든 생명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조차도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류와 우주 전체를 위한 사명과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류를 위한 봉사와 헌신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합니다.

또한 이 체가 발달하면 창의력과 상상력도 좋아진다고 하는데, 문제해결을 할 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생각해낼 수도 있고 예술 활동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직관체는 창의력과 상상력의 원천으로 볼 수가 있는데,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감정과 직관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기존의 사고 틀을 벗어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근원체]

그 다음으로 높은 체는 최상위체는 근원체인데 이 체가 발달한 영혼은 신성한 의지와 절대적 진리에 따라 살아간다고 합니다.

영혼이 더 이상 개인적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우주적 계획이나 신성한 목적과 일치하여 존재하게 됩니다.

모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할 수 있고 현실의 표면을 넘어 존재의 근본적인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며, 우주적 진리와 자아의 진리를 명확하게 인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깊은 연대감과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직관체는 실생활의 문제 해결, 감정의 흐름, 사람과의 관계 등에서 작용하며 일상 속에서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근원체는 철학적·영적 질문이나 보편적 원리와 같은 더 심오한 주제에 적용됩니다.

삶의 목적이나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나 우주의 근본 원리를 깨닫고자 하는 깊은 욕구는 근원체의 발달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체의 작용을 통해 영혼은 진리를 추구하고 더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며, 본질적인 존재의 이해로 나아가게 됩니다.

 

직관체가 발달한 영혼들에 비해 개인적인 욕망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개별적 정체성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생명과 존재의 상호 연결성을 인식하고 있어서 에고의 개념을 초월하여 고차원의 무아(無我) 상태에 좀 더 가까워진다고 합니다.

‘무아’는 한자 그대로 자아의 실체가 없다는 것인데, 그걸 깨닫는 다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게 되고 타인과 자신을 더 이상 분리되거나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고통과 행복이 자신의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마음이 생길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아를 깨닫게 된다고 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갑자기 사람이 이타적으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시작일 뿐, 계속 윤회를 하면서 실제 삶 속에서 자아의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고 지속적인 자기성찰과 이타적인 행동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수많은 생을 통해 무아 상태와 이타적인 마음이 자연스럽게 체화되게 되면 근원체가 발달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되면 의도적으로 집착을 내려놓거나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항상 그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그게 당연하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무아’ 상태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런 사람들은 물질적 성공이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으며, 개인적인 야망보다는 타인의 복지와 공익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삶의 목적이 절대 돈이나 권력 같은 자신의 욕망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위나 물질적 소유에 집착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려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자원을 아껴 쓰기도 하고 다른 생명체나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결정이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깊은 공감을 잘 느낀다고 합니다.

이원적인 세계관을 넘어선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선과 악, 옳고 그름 같은 이원적 구분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실직하게 된 상황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원적인 세계관에서는 실직을 불행이나 나쁜 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원적 구분을 초월한 사람은 이 실직이 결국 그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거나 더 큰 성장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단순히 나쁘거나 불행한 일로만 보지 않고 더 큰 흐름 속에서의 필요성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단순히 미워하기보다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이 낮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려는 생각도 이원적인 구분을 초월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그 사람의 행동을 단순히 "잘못"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이나 성장 단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원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생각들은 영성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생각들입니다.

근원체가 매우 발달한 사람이라도 물질계에 태어나게 되면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게 되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원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더 높은 차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영혼이 가지고 있어서, 영성을 조금만 이해하게 되면 이원적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 직관적으로 더 넓은 시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근원체가 전혀 발달해 있지 않은 사람이 영성공부를 많이 한다면 그런 전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실제 경험하고 내면 깊이 체화하는 것은 힘들다고 합니다.

머리로 그런 개념을 이해하는 것과 현실에서 직관적인 통찰이나 초연한 시각이 충분히 발휘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수많은 윤회를 하면서 실제 삶에서 체화되고 경험을 통해 완전히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직관체가 발달한 영혼은 감정적 공감과 직관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는 능력이 뛰어난 반면,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에고나 감정적 연결을 초월하여 더 높은 차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과 상담을 해주는 상황이라고 가정했을 때, 직관체가 발달한 사람은 그 사람이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공감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감정적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거나 적절한 조언을 해주게 됩니다.

반면, 직관체의 발달이 부족하고 근원체가 발달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감정적 고통을 이해하지만 그 사람의 고통이 단지 영적 성장의 과정임을 알고 있어서, 더 큰 관점에서 그 사람의 경험을 바라보기 때문에 감정에 크게 동요되지 않고 조금 초연해 보일 수가 있습니다.

공감을 느끼지만 그 공감이 감정적 교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온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사람은 좀 차갑기도 하고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직관체와 근원체가 조화롭게 발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두 체가 균형 있게 발달한 사람들은 감정적 공감과 직관을 통해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에고나 감정을 초월하여 더 높은 차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인 공감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공감보다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의 체가 균형 있게 발달한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공감도 하면서 동시에 차분함속에서 지혜로운 대처를 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체가 균형 있게 발달하지 못하고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물질적 현실과의 연결이 약해질 수 있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처도 부족해질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체가 골고루 발달해서 영성과 현실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멘탈체나 직관체를 더 발달시키기 위해 계속 윤회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

영혼의 모든 체가 균형 있게 다 발달을 하게 되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고 윤회를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종교나 사상에 따라 이 상태를 표현하는 이름이 다양한데, 보통 신성이나 우주의 근원과 하나가 된다는 ‘합일’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신일합일’, ‘해탈‘, ’자아초월‘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대해서는 불교적인 관점과 현대영성의 관점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요.

불교는 집착과 업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다른 사상들은 영혼이 경험과 배움을 쌓아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나가가는 영적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불교에서도 지혜와 통찰력의 중요성이나 영혼성장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고 서로 공통되는 부분들도 적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맞는 것인지는 저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영혼퇴행이나 임사체험이나 최면영상의 자료들을 보면 배움과 성장을 위해 삶을 계획하는 부분들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단순히 카르마 청산이나 선한 삶을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지혜를 배우거나 다른 영혼들을 도와주거나 예술 활동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깨달음을 얻어 윤회를 벗어난다는 개념보다는 영혼이 더 이상의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성장을 하게 되면 윤회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개념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윤회의 고리를 끊는다”는 표현보다 “더 이상 윤회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라는 표현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데요.

윤회를 단순한 고통의 연속으로 보는 것 보다 모든 경험들이 영혼의 배움과 성장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우주적 차원에서 더 넓고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악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카르마가 무거운 낮은 단계의 영혼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적인 관점이 더 맞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영혼들에게는 배움과 성장을 중요시하는 관점이 좀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현대영성에서 말하는 영혼 몸체들의 발전 수준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성격이나 성향, 성품, 능력들이 잘 설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들은 영계에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깊은 평화의 상태에 머물게 되는데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분리나 갈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욕망이나 집착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항상 사랑과 조화 속에서 존재하게 되며, 고통이나 고뇌 없이 영적 평온을 누리게 됩니다.

자아와 신성이 통합되고 신과 하나가 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정체성을 초월한 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개별성은 유지된다고 합니다.

어떤 형태의 지배나 권위에 기반하지 않고 상호 존중과 이해에 바탕을 둔 비위계적이고 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임사체험을 보면 우주와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사랑과 평화가 느껴진다는 글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요.

제가 볼 때 그 상태가 바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영혼이 느끼는 상태와 비슷한 것인데, 임사체험은 일시적으로 그걸 잠깐 경험하는 것이지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항상 그 상태로 영계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사체험자들은 잠시 동안의 경험만으로도 인생이 완전히 바뀔 만큼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그 경지에 도달한 영혼들이 영원히 그 상태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한 상태로 살아갈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의식성장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도 그 길이 너무나 험난하고 멀게 느껴지더라도, 길을 잃지 말고 잘 견뎌내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해서 모든 영혼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영적인 여정을 한 구절로 표현하자면 “근원에서 창조되어 떨어져 나와 물질체험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해서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 합일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데요.

정말 철학적이고 심오한 표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최면영상을 보면 영혼들이 수호천사나 안내자 영혼에게 이렇게 힘든 체험을 왜 계속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수호천사들은 체험의 목적을 “근원으로 회귀하는 과정” 혹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더군요.

그 곳은 엄청나게 밝은 세상이고 고향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곳인데, 영혼이 어떠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임사체험을 보면 그 고차원의 상태를 경험하면서 “모든 영혼들은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모든 것이 이미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들은 영계에서 매우 고차원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며 지낸다고 하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우주적 섭리와 전체적인 균형에 기여하는 일들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다른 영혼들의 안내자나 영적 지도자가 되어 지혜와 사랑을 전하며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영혼들을 도와주고 안내하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법칙과 에너지들이 작용하는데 그러한 에너지 흐름을 관리하거나 균형을 조절해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우주의 존재들과 협력하여 창조적 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세계나 새로운 형태의 영적 차원을 창조하기도 하면서 우주의 진화에 기여하는 작업도 한다고 합니다.

행성이나 생명체가 아닌 차원 자체를 창조할 정도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매우 진보된 영혼으로 보이는데요.

아마 그 정도 일을 혼자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영혼들이 그룹별로 모여서 함께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차원간의 에너지 흐름이나 균형, 시공간의 구조, 물리적인 변수들, 생명체들의 진화과정, 영적 성장의 방식 등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에너지를 다루는 능력이 월등해야하기 때문에, 깨달음과 능력이 극도로 높은 존재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영혼들은 좀 더 특별한 존재로 인식이 되는 듯합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도 매우 진보된 영혼들이 영계에서 우주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창조적인 일에 참여한다고 언급이 되어 있는데요.

영혼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영혼들의 진화를 돕기 위해 행성이나 물리적인 차원의 세계를 창조하기도 하고, 영혼들이 윤회의 사이에서 휴식이나 학습을 위해 머무르는 영적 공간을 창조하고 관리한다고 나와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물질세계들도 그렇지만 윤회를 하면서 머무르는 여러 차원의 비물질 세상들도 그냥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고차원 영혼들이 성장이 필요한 영혼들을 위해 철저히 계획하고 세밀하게 디자인해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는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등의 기본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매우 정밀하고 미세하게 조율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힘의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우주가 유지되지 못하고 붕괴된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구와 태양의 거리, 지구의 공전 궤도, 자전축 기울기, 대기 구성 성분 등 어느 것 하나 조금만 맞지 않아도 지금처럼 지구에 생명체가 살기가 힘들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미세 조정되어 있는 우주의 상수들이나 지구가 놓여있는 조건들이 도저히 우연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경이롭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위에서 말한 차원이나 행성을 창조하는 고차원 영혼들이 그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수학과 물리학으로 정밀하게 계산해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들이 다루는 수학이나 물리학은 지구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서, 지구인들이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양자물리학이나 수학 난제들은 그냥 산수정도로 보일 만큼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고 차원이 다른 수준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혼들은 굳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우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랑과 평화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게 되어 우주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지구나 다른 차원에서 다른 존재들이 의식적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특정 시점에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은 사람들의 발전 수준에 따라 그들이 왜 특정한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영혼은 각 개인의 의식 수준, 경험, 감정 상태 등을 에너지 수준에서 감지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 두려움, 기쁨, 그리고 혼란을 이해하며 그들의 반응이 어떤 내적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는지를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는 비판이나 판단이 아니라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자신만의 길을 따라 배우고 성장하고 있음을 존중하게 됩니다.

모든 행동 뒤에 숨겨진 의미와 이유를 이해할 수 있기에 진실한 마음으로 그들의 영적 여정을 도우려는 의도로 다가가게 됩니다.

만약 그런 영혼이 사람들을 위해 영성 글을 쓴다면 사랑이 가득한 마음과 진리를 나누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를 담아 겸손하게 쓰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깨달음을 과시하거나 절대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부드럽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복잡한 이론이나 어려운 용어는 진리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로 진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들은 깨달음의 본질이 단순함과 명료함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며,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론적인 부분보다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실천적 지혜를 전달한다고 합니다.

글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됩니다.

진실하고 따뜻한 어조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사랑과 평화, 그리고 조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길로 안내하게 됩니다.

절대 자신의 글이 대단하거나 수준 높게 보이도록 포장하지도 않고 듣기 불편한 단어나 거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기보다 그런 것들이 자신의 에너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영혼들은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거나 다른 이들보다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이 없고, 그런 표현과는 진동수도 맞지 않고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있고 그들의 의식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성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썼을 때, 그 사람의 영혼이 어느 정도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제가 위에 적어놓은 부분들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영혼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들의 의식 수준, 세상의 이치와 진리, 그리고 우주의 원리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되는데요.

단지 표면적인 이해를 넘어 모든 존재의 깊은 본질과 상호 연결된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경험들과 지혜가 영혼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혹은 어떠한 의도가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유추해낼 수가 있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행위보다 그 사람의 내면에서 왜 그런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개선해야하는지도 알 수 있는데,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직감으로 알 수 있게 되는데요.

현실적인 관점에서 통찰할 수도 있고 영적인 관점이나 우주적인 관점에서도 꿰뚫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몰라서가 아니라, 영혼들이 성장하기 위해서 겪는 과정의 일부로 생각하기에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들을 굳이 비판하거나 지적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고 간접적인 조언을 해 줄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상에 태어난다면 영혼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한적한 곳에서 조용하게 살고자 하는 성향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요.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높은 위치에 오르거나 물질적인 부를 얻고자 한다면 충분히 그럴 능력은 있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가 않기 때문에 그런 삶은 전혀 끌리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속적인 삶을 살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이나 그들의 잘못에 얽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되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삶을 선호하게 됩니다.

탐욕, 이기심, 과도한 경쟁, 증오, 폭력, 비양심, 비윤리, 비도덕적인 생각이나 행동들은 낮은 진동수의 에너지를 생성하게 되고, 그런 에너지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본능적으로 카르마를 생성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내면에서 불편함과 거부감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에너지를 느끼는 감각이 예민하고 매우 발달이 되어 있어서 시끄럽고 혼잡한 환경에 있으면 쉽게 에너지가 소모되거나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방출되는 감정적, 정신적 에너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어서 쉽게 피로해지거나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안정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을 선호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보호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도 ‘현자’들이 지상에 태어나면 외진 곳에서 많이 살게 되는데, 그 이유를 위의 내용들과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상에 태어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영성을 전혀 모를지라도 내면의 영혼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깊은 지혜와 깨달음을 가지고 있어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질적인 진리를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적수준이 매우 높은 영혼이 생활이 엉망이라거나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인데요.

영적수준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다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영성공부를 많이 했거나 명상수행을 얼마나 했는지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영성을 전혀 모를지라도 사람을 대할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보면 영적수준을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제약으로 인해 영계에 있을 때보다 직관력이나 통찰력이 많이 제한되긴 하지만 복잡한 문제나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감정과 상황을 깊이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지혜와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질계에서도 영적 진리를 이해하고 이를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말에 그치지 않고 영적 진리를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현실적인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우울함이나 공허함을 계속 느낀다면 영적인 차원에서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시작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고, 약이나 단순한 상담을 권하기보다 그 사람의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게 해준다거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삶의 목적과 연결되는 길을 찾도록 돕는 방향으로 조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지속적인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그에게 더 많은 운동이나 건강한 식습관을 권장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영적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 건강 문제가 단순한 육체적 원인이 아니라 정신적 또는 감정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정신과 마음이 영혼의 에너지 차원에서부터 육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다 이해할 수 있어서, 육체적인 치료 이전에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필요하다거나 내면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줄 수가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려면 기의 순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기순환에 좋은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제시할 수도 있겠죠.

이들의 지혜는 단순한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니라 신성에 기반한 깊은 통찰과 영적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삶의 본질과 우주의 진리를 꿰뚫어 보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인도하고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차원에서 자기 인식이 가능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영적 성장과 깨달음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본질과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탐구하려는 성향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요.

만약 일상적인 경험이나 어떤 사건을 겪었을 때, 그들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사건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나 영적 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영적인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런 영혼들은 영계에서 항상 위에서 설명한 의식 상태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지상에 태어나면 물질계의 제약으로 인해 영계에서의 완전한 능력들이 감추어져 있거나 발휘하지 못할지라도, 일반인들보다 더 깊은 직관력과 통찰력 그리고 높은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현실에서 영성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개별적 사상이나 전통을 넘어서 여러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핵심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 영적체험들이나 철학적, 종교적, 영적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근본적 진리를 꿰뚫어 보고,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인식해서 영성의 본질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다양한 악기들이 연주하는 음악에서 공통의 화음을 찾는 것과 비슷한 것인데요.

특정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한 사상들을 살펴보면 진리가 아니거나 불필요한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무엇이 보편적인 진리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영혼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주적 진리나 영적 원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완전히 깨달은 영혼들은 그 내부에 흐르는 보편적 진리를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진리들을 서로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이론적인 부분들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영적원리들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영계에서의 차원이동]

영계에서 영혼은 자신의 영체 중에 가장 잘 발달이 되어 있는 영체와 진동수가 맞고 조화를 이루는 차원에 머물게 됩니다.

멘탈체가 발달한 영혼은 중간차원 정도의 멘탈계에서 주로 활동하게 되고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매우 고차원인 근원계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영혼이 자신이 머무는 차원보다 상위차원으로 가는 것은 영혼의 진동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영계에서도 명상을 한다거나 고차원 존재나 영적인 가이드의 도움으로 일시적인 체험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체험은 그 차원을 완전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원의 부분적인 성질이나 에너지를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데요.

경험이 매우 제한적일 뿐 아니라 그 차원의 에너지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다룰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서 좀 알아보았는데요.

근원체가 매우 발달되었지만 멘탈체가 별로 발달하지 못한 영혼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영혼은 윤회를 하면서 모든 체가 통합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근원체가 상당히 발달된 영혼이라면 하위체인 멘탈체는 기본적으로 발달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영혼은 정신적, 감정적, 에너지적 측면에서 모든 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고 조화를 이루어야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체만 발달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영혼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멘탈계를 방문할 경우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더군요.

영혼의 진동수가 매우 높기 때문에 하위층을 방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저차원의 영혼이 고차원을 일시적으로 방문했을 때 그 차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멘탈계의 논리적 구조나 지적 패턴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떤 방정식을 보고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멘탈계의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거나 혼란을 느낄 수가 있고, 멘탈계에 살고 있는 영혼들과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합니다.

멘탈체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 감정,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므로 그 차원에 살고 있는 영혼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기가 힘든 것으로 보입니다.

근원체가 매우 발달을 했다는 것은 고차원의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멘탈계에서의 에너지 체계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고차원적 에너지를 그 차원에 맞게 변형하거나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강력한 엔진을 가진 자동차가 섬세한 조종 시스템 없이는 제대로 달릴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죠.

고차원의 몸체가 충분히 발달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위체들이 불완전하게 성장한 상태라면 계속 윤회를 하면서 모든 체를 골고루 발전시키게 됩니다.

모든 체들은 각각의 역할들이 있기 때문에 영혼이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체들이 균형 있게 발달하고 조화를 이루어야하기 때문인데요.

사랑과 자비의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논리적인 사고와 지적 능력을 담당하는 체가 덜 발달되어 있으면, 영계에서 상위 차원의 진리를 이해하거나 고차원적 사고와 지혜를 요구하는 영적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영적 진화와 성숙이 지연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더 높은 차원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그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멘탈체의 발달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근원체는 영혼의 뿌리이며, 멘탈체는 영혼이 세상과 소통하고 성장하는 가지와 같은 것이므로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영혼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근원체가 발달한 영혼은 매우 높은 차원의 영적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우주의 법칙이나 영적인 실재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가지고는 있지만, 하위체들의 발달이 부족하게 되면 영적인 영역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현실 세계에서의 물질적 삶이나 감정적, 지적 균형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고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모든 체가 골고루 발달한 영혼은 물질적, 감정적, 지적, 영적 모든 측면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어 현실 세계에서 적응하며 생활하는 능력뿐 아니라, 영적인 통찰과 직관도 가지고 있어 양쪽 모두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균형 잡힌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영혼들은 다양한 차원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각 차원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이해하며 경험할 수 있게 되는데요.

영혼이 다양한 차원에서 오는 정보와 경험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영적 진리를 깊이 깨닫는 데 도움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해 영혼은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는 영적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가는 길]

완전한 깨달음은 차원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의 경험을 통합하여 완전한 의식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깨달음이라고 하면 어떠한 상태를 초월한다거나 가장 높은 차원에 도달하는 개념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비슷하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경험을 통해 모든 차원들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통합해서 의식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한다는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깨달음은 어떠한 수행을 통해 단순한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모든 영혼을 구성하는 여러 체들의 깊은 변화와 성장을 통해 완성되게 됩니다.

자신이 신성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은 깨달음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건 시작점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수행을 통해 고차원적인 어떠한 상태를 경험하거나 인식하는 것이 깨달음의 끝이라면 영계에서 명상수행만 하면 되지 태어나서 물질체험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철학적·영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며,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삶에 적용함으로써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고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차원적인 사랑을 이해하려면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하고 모든 존재의 본질이나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통찰력도 필요할 뿐 아니라 철학적인 사유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성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그만큼의 경험과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자신이 이해한 것을 실제 생활에서 얼마큼 적용하고 반영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배우는 사랑, 자비, 친절, 배려, 용서, 연민, 논리적 사고, 직관, 통찰력, 지혜, 감정적 균형, 집중력, 인내 등 모든 것들이 영혼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그냥 착한 것만으로도 부족하고 지혜와 통찰력만 가지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인데요.

물론 모두 상호보완적이고 중요한 요소들이긴 하지만 저는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사랑에 관련된 마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르마적인 문제들도 그렇고 영혼이 거주하는 차원을 결정할 때 사랑의 에너지가 중요하게 작용을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인데요.

논리적인 사고에 능숙하고 통찰력이 발달했지만 이기적이거나 배려심이 부족한 영혼이라면 그런 영혼들이 모여 있는 차원으로 가게 될 겁니다.

논리적인 사고와 지적활동을 주로 하게 되는 멘탈계라고 하더라도 그 차원에서 또 수많은 차원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지성이 풍부하고 똑똑하지만 너무 이성적이고 따뜻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영혼들이 사는 세상이면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곳에는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지성이 부족하고 생각하는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이타적이고 남을 배려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영혼들이 사는 곳이 훨씬 더 나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한 그런 차원의 세상들을 한번 상상해보시면 제가 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영성을 처음 접하고 놀랐던 점 중에 하나는 명상수행이나 영성공부를 엄청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 인격에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인격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영적인 수행만 혼자서 열심히 하기도 하고 영성과 인격을 별개로 보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제가 볼 때 그 영혼이 성장하려면 대인관계를 통해 인격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영성에 관련된 어려운 한자들로 가득한 책을 펴놓고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명상수행을 엄청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더군요.

신비주의나 뉴에이지, 신지학, 철학, 전통적인 종교들에서는 영혼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그런 고행이나 수행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물론 그러한 수행이 자신의 존재와 우주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영혼의 몸체들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해주기도 하고, 내면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어서 영적성장을 촉진시켜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자 하나의 방법일 뿐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며 영혼은 물질적 체험을 통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충분히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마음공부에 좋은 글들을 보는 일들도 마음의 평화를 찾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들이기에 충분히 명상과 같은 효과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영혼의 여러체들을 발전시키는 방법에는 수행과 일상생활에서의 경험 둘 다 도움이 되게 되지만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멘탈체의 논리적인 사고나 판단, 추론 같은 영역을 발전시키려면 생활에서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한 일들을 실제로 해봐야지만 발전시킬 수가 있는데요.

명상수행을 가끔 해주면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는데, 논리적인 생각을 할 때 더 효과적으로 할 수가 있어서 멘탈체의 성장을 더 빠르게 촉진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명상수행만 한다고 논리적인 사고의 능력이 발전하는 건 아니고 간접적인 도움이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직관체의 직관적 통찰이나 영감은 생각을 한다기보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에 의존하게 되는데요.

명상을 가끔씩 해주면 내면의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이 되기 때문에 직관적인 내면의 느낌을 떠올리는데 더 도움이 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수행도 간접적인 도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생활을 하면서 직관이 필요한 문제해결이나 창의적인 일들을 하면서 실제로 직관을 사용하고 적용을 해보아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직관체의 공감능력도 마찬가지인데요.

명상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그래서 자기 인식 능력을 향상시키게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공감능력이 좋으려면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에너지로 느껴야하는데 명상을 해주면 내면이 고요해지고 에너지를 느끼는 감각을 발달시킬 수가 있어서 도움이 되게 되죠.

하지만 생활 속에서 대인관계를 통해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그런 감각을 향상시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근원체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명상을 통해 자아를 초월하는 영적체험을 하거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등을 이해하게 되면 발달에 도움이 되게 되는데요.

명상수행을 통해 무아를 깨달았다면, 실제로 생활에서 사랑과 자비심을 발휘해보고 이타적인 활동을 해보아야 비로써 근원체가 발달하게 됩니다.

 

수행과 생활에서의 경험과 실천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면서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의 차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활에서의 경험과 실천을 하게 되면 수행을 전혀 하지 않아도 몸체들을 발전시킬 수 있지만, 수행만 하고 실제로 해보지 않는다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가 있겠지요.

 

최면 영상을 보다가 좀 특이한 분을 본적이 있는데요.

사는 게 너무 고단해서 자신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영성에서 찾고자 했던 분이었습니다.

최면을 해보니 그 분은 전생에 어느 큰 절에서 오랜 시간 수행을 하며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덕망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현생의 고난과 어려움은 그가 스스로 더 큰 시련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는 것이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속세를 떠나 절이나 산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이들을 보며 그들이 영적으로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요.

그건 단지 직업과 삶의 방식이 다르고 영혼이 배우는 과정이 다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사는지가 아니라 영혼이 얼마나 성장했으며 어떤 의식 수준에 도달해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 다양한 과목 공부를 통해 쌓는 지식과 논리적 사고, 철학적 고민에서 얻는 통찰, 남을 돕고 봉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사랑과 자비, 어려운 상황을 가족과 함께 극복하며 얻는 용기와 지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힘, 그림이나 음악이나 글쓰기 등의 예술 활동을 통해 표현되는 감성이나 창조성,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통해 경험하는 인간애 등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배우는 모든 것들은 영혼의 다양한 측면을 조화롭게 발달시켜 영적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 자비, 희생, 봉사, 헌신,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삶, 양심적인 생각, 논리적 사고력, 지적 활동, 철학적 탐구, 지혜의 증진, 대인관계를 통해 얻는 교훈, 예술적 표현, 감성 발달, 창조적 활동, 문제 해결 능력 등은 우리의 영혼이 더 높은 의식 상태로 나아가도록 돕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의 방식이 영적 성장을 더욱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루게 하는지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상이나 종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영혼이 점차 성장할수록 환생을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시대, 환경, 조건의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영혼이 윤회를 통해 모든 측면에서 균형 있게 최상위 단계까지 발달하게 되면 윤회에서 자유로워지거나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환생할 필요는 없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고귀한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신비주의 사상이나 뉴에이지, 신지학, 철학, 종교 등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영혼의 구조와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적어보았는데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고 예시를 많이 들다보니 글이 좀 길어졌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상들보다는 임사체험이나 영혼퇴행, 유체이탈 등을 훨씬 더 신뢰하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지만 참고할 정도로만 가끔 보는 편입니다.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이 있어서 정리한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기에 모든 내용을 다 믿기보다는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유체이탈(out of body expierence-OBE)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로버트 먼로’라는 사람인데요.

먼로는 1915년에 미국에서 태어나서 1995년에 돌아가신 분인데 마이클 뉴튼보다 시대적으로 약간 앞서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해 연구를 한 사람입니다.

제가 자료를 계속 보다보니 마이클 뉴튼이 최면으로 밝혀낸 사후세계와 비슷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기도 하고 임사체험들의 경험들과도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나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을 하여 그 분이 밝혀낸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와 영성에 관한 견해를 좀 적어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좀 아니다 싶은 부분들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영적체험이라는 것이 자신의 상상이 섞여있을 수도 있고 영혼마다 체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저는 어떤 글을 보더라도 나름대로의 기준에 맞게 항상 필터링을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자료를 수집하면서 잘못된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고 책의 내용들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에 맞게 스스로의 판단하에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로버트 먼로는 대학에서 엔지니어링과 음악을 공부하다가 라디오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라디오 진행을 맡기도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직접 제작을 하기도 하면서 미디어 업계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는 지역 방송국도 인수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서 사업가로써 성공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매일 같이 1년 동안 똑같은 꿈을 꾸게 되는데 몸에 진동이 느껴지는 현상을 자주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수많은 의사를 만나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또 진동이 생겨서 기다리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천장으로 뜨면서 유체이탈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자주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먼로는 직접 유체이탈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실을 만들고 의식, 뇌파, 심리학, 신경과학, 의료,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까지 고용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을 하게 되는데 모든 실험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진행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두 명의 실험 대상자를 방음이 되어 있는 밀실에 넣고 각각 유체이탈을 시킨 후 같이 만나서 대화하고 돌아다니게 하는 실험을 하게 되는데요.

유체이탈을 동시에 시작하고 끝내게 한 다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각각 따로 들어봤는데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실험실의 모든 연구원들이 유체이탈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실험대상 중 한 사람은 철저히 과학적인 사고만 하는 물리학자였음에도 이 실험의 결과를 보자마자 영혼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로버트 먼로는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돈이 엄청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모든 실험을 진행했었고 돈을 목적으로 실험이나 연구를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일반 사람들도 유체이탈을 쉽게 배울 수 있게 ‘먼로 인스티튜트’라는 연구기관도 설립했는데 지금도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먼로의 말에 의하면 일반인들도 잠을 자면서 가끔 유체이탈을 하고 있으며 쉬운 건 아니지만 연습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먼로는 “Out of the Body Experiences (유체이탈 여행)”, “Far Journeys (먼 여행)”, “Ultimate Journey (궁극의 여행)”등의 총 3권의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구소련과 미국이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우주선을 달에 보내기도 하고 무기를 개발하기도 했지만 초능력 부대를 창설하여 치열하게 정보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CIA에서는 정보전을 위해 ‘스타게이트’라는 극비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유체이탈과 원격투시를 훈련시키며 엄청난 실험과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특정좌표를 이용해서 적군의 군사시설이나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군사기밀을 빼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때 그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람들이 먼로 연구소에서 유체이탈을 전문적으로 배웠다고 하더군요.

미국에는 ‘FOIA’라고 하는 미국 정보 공개법이 있는데 보통 기밀로 유지되고 있는 국가 안보 관련 정보들은 25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정보의 민감성에 따라 기간이 연장되거나 어느 정도 공개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특급기밀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정보들은 모두 공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도 그 법에 의해 1995년에 CIA에서 공개를 하게 되었고 대중들에게도 실제로 존재했었다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먼로연구소는 CIA에서도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고 실제로 문서로도 기록이 남아있을 만큼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글을 이해하려면 ‘Focus(포커스)’라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요.

먼로 나름대로 의식의 단계나 차원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인데 제가 보기엔 의식수준보다는 의식의 상태나 깊이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보이더군요.

포커스 레벨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포커스 레벨 0 - 물리적 현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물리적 현실을 나타냅니다. 이는 감각을 통해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그와 상호작용하는 기본적인 상태입니다.

[포커스 10 - 정신은 깨어있고, 신체는 잠든 상태]

신체는 깊은 휴식 상태에 있지만 정신은 깨어 있고 명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깊은 명상 상태와 유사하며, 다른 포커스 레벨로 이동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아마 가위 현상이 시작되는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포커스 12 - 확장된 인식]

이 상태에서는 의식이 확장되고 심화된 인식을 경험합니다. 직관적인 통찰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며, 자신과 우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 상태입니다.

[포커스 15 - 시간이 없는 상태]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존재하는 무시간의 상태로, 여기서 과거 생을 탐험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원한 현재'를 경험하는 상태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아마 전생을 보거나 예지몽을 꾸는 것은 이 레벨 이상의 의식 상태로 추측됩니다.

[포커스 21 - 물리적 현실의 경계]

물리적 현실과 비물리적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을 나타냅니다. 유체이탈이나 비물리적 존재와의 접촉이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또 다른 현실로 들어가는 단계이고 시간과 공간의 끝자락이라고 합니다.

[포커스 22 - 전환 구역]

물리적 존재와 비물리적 영역 사이에서 의식이 전환되는 상태입니다. 혼수상태나 임사 체험과 같은 상황에서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포커스 23 - 잃어버린 영혼의 영역]

물리적 생을 마감한 후 혼란스럽거나 잃어버린 상태의 영혼들이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영혼들이 머물 수 있는 지역입니다.

누워있는 자신의 몸을 볼 수 있고 벽을 뚫고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마주하는 단계이고 임사체험 초반에 겪는 경험과 거의 유사하다고 합니다.

[포커스 24~26 - 신념 체계의 영역]

특정 종교적 신념이나 체계에 강하게 연관된 영혼들이 모이는 장소입니다. 각 신념 체계나 종교에 따라 나뉘어 있는 영역입니다.

[포커스 27 - 집합 장소]

'회복 지역' 또는 '재평가 지역'이라고도 불리며, 죽음 후 영혼들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치유를 받으며 다음 경험을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포커스 레벨 34/35 - 게이트웨이 및 그 너머]

더 높은 차원이나 추상적인 영역을 탐험할 수 있고 더 깊은 통합성과 우주적 의식을 경험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 차원에 외계 영혼들이 지구를 관측하게 위해서 많이 몰려와 있다고 합니다.

먼로 책에는 IT(I-there)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개인의 고차원적 자아 또는 고차원적 의식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더 높은 차원의 자신과의 연결을 상징한다고도 하는데 보통 영성에서 말하는 상위자아와 연결되는 의식상태가 34/35 레벨정도 되는 듯 합니다.

한 개체의 여러 분신의 집합체이며 개인의 모든 생애와 경험이 하나로 통합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현생을 포함한 전생들의 또 다른 나의 모든 인격체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 IT는 ‘상위자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며 과거 전생의 자신이나 물질체험을 하고 있는 자신의 여러 분령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상태인 듯 합니다.

IT는 깊은 지혜와 통찰을 제공하는 존재로, 체험자가 자신의 삶과 존재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합니다.

이는 영적 성장과 깨달음을 위한 중요한 원천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포커스 40 - 우주적 의식]

이 레벨에서는 우주와의 깊은 일체감을 경험하고 모든 존재의 상호연결성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순수한 의식이나 우주적 의식의 상태로 묘사됩니다.

아마 깊은 명상이나 임사체험을 통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의식의 상태가 최소 이 레벨정도 되는 듯 합니다.

[포커스 41-43 - 고차원적 존재와의 상호작용]

이 레벨은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고차원적 존재나 의식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합니다. 포커스 41-43은 상위 차원에 존재하는 존재들과의 만남, 고차원적인 지식과 경험의 교류를 탐구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의식이 은하계로 이어지는데 태양계내의 IT와 태양계 밖의 IT를 아우르는 집합IT로 다른 항성이나 성단에 존재하는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IT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체험해본 사람들은 다른 은하계에 존재하는 자신이 인식된다고 합니다.

제가 유체이탈을 하면서 다른 차원계나 아주 먼 다른 은하계에서 살고 있는 듯 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여러 번 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의식상태가 이정도 레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포커스 44-49 - 우주적 연합과 통합]

이 레벨은 우주적 차원에서의 존재와 연결되고, 우주의 큰 흐름과 통합되는 상태를 포함합니다. 여기에서는 인간 존재의 개인적인 경계를 넘어서서, 우주의 더 큰 계획이나 목적과 일치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포커스 50 이상 - 최상위 의식 상태 및 초월적 경험]

포커스 50 이상의 레벨은 매우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의식 상태를 탐구합니다. 이 레벨에서는 개인의 의식을 넘어서서 존재의 근본적인 본질을 탐구하고, 우주적 원리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레벨은 초월적 경험이나 궁극적인 존재의 상태를 포함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개별적인 인식과 자아를 넘어서는 차원의 탐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존재의 근본적인 진리와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먼로연구소에서 유체이탈을 체계적으로 배운 어떤 일본인이 이 레벨을 체험했었는데 우주 밖으로 나가보았더니 또 다른 우주들이 비누거품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물리학에는 ‘버블 우주론’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각 우주가 마치 비눗방울처럼 존재하며 우리의 우주는 단 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무한히 많은 우주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 각각의 우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서로 다른 물리적 법칙과 상수를 가질 수 있다고 하고 새로운 버블 우주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본인이 유체이탈로 우주 밖에서 본 버블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버블우주론이 실제로 맞을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먼로는 ‘미라논‘이라는 영적 존재가 자신의 지도령이라고 하며 미라논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라논은 포커스49에 존재하는 고차원 영혼이라고 하는데 49레벨이면 인간 영혼의 의식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상당히 영적으로 진보된 존재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아마 지구에서 윤회하는 영혼이 아니거나 오래전에 지구를 졸업한 고차원 외계 행성에 거주하는 고급령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먼로가 지구영계를 넘어서 우주의 더 깊은 다른 의식차원으로 여행을 하면서 ‘인스펙’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고차원 존재들을 만났다고 하는데요.

인스펙(Inspec)은 “Intelligence pieces(지적 존재)”의 줄임말로 먼로가 그들을 지칭하기 위해 나름대로 만든 이름입니다. 인스펙들과 소통도 하고 함께 차원 여행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기도 하고 배움을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스펙들도 미라논처럼 인간 영혼의 의식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고차원 지적 존재들이라고 하는데요.

인스펙들은 대부분 우호적이었다고 하는데 가끔 적대적인 존재들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들 중에는 지구를 아는 존재들도 있었고 모르는 존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스펙들 중에는 지구처럼 차원이 낮은 행성에서 무거운 육체를 입고 환생한 경험이 전혀 없는 영혼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 중 자신과 소통한 어떤 인스펙의 존재는 먼로의 지구 이야기를 듣고 매력을 느껴서 실제로 미국 뉴욕에 태어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막상 지구에 태어나보면 기억도 잃어버리고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으로 엄청 개고생은 한다고 하는데 묘한 매력이 있어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영계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어서 지내기는 편하긴 한데 아무래도 변화도 별로 없고 좀 지루하다보니 약간은 자극적인 모험을 선호하는 영혼들도 있는 듯 한데요.

제가 가끔 영적인 체험으로 영계를 보아도 확실히 그 곳은 평화롭고 정적인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요.

“외계인 인터뷰”라는 책을 보면 지구를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걸 보고 믿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로스웰 외계인 추락 사건은 증언이나 증거도 너무 많고 제가 보기에도 팩트가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틸다라는 간호장교와 대화한 내용 중에 지구가 탈출 못하는 감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됩니다.

추락 사건의 진실 유무와 책의 내용은 별개라는 겁니다.

제가 볼 때 그건 그냥 책을 많이 팔기 위해 작가가 넣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지구가 감옥이라면 위에서 말한 인스펙이라는 고차원 존재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게 맞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지구에 자진해서 태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고도로 진보된 고차원 영혼들은 지능도 높고 생각보다 똑똑합니다.

그리고 제가 유체이탈을 하면서 아주 먼 다른 차원계나 태양계 밖에 있는 외계행성들을 수도 없이 보기도 하고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지구가 탈출 못하는 곳이라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죠.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은 임사체험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영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면 세상의 모든 임사체험들이 다 허구라는 소리인데 그냥 말이 안 되는 것이죠.

그런 건 그냥 소설일 뿐이니 두려워하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가끔 유체이탈 한 후 지구 대기권에서 자연이나 지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우주 먼 곳에서 푸른 행성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있는데요.

인간의 상태로 보는 지구와 영혼 상태로 보는 지구는 정말 다릅니다.

지금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행성에 절대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영계에서는 인간일 때와 의식의 상태가 많이 다르기도 하고 영혼의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되어 있어서 이번엔 잘해보겠다며 다시 태어나기 위한 결정을 스스로 하기도 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들도 볼 수가 있습니다.

영혼퇴행에 관한 자료들을 보면 어떤 영혼들은 자신의 카르마를 빠르게 정화시키거나 성장 속도를 높이려고 일부로 장애자로 태어나기를 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전생과 똑같이 남에게 피해를 많이 주고 이기적인 삶을 또 반복해서 살았던 어떤 영혼들은 뼈저리게 후회하며 이번에는 장애자나 피해자로의 삶을 살아보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영혼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그만큼 인간과 영혼의 의식이 다른 건 사실입니다.

지구에 태어나려는 이유는 배움과 성장이 주목적이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영계의 지루함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영혼들을 도와주려는 목적이 있기도 하고 카르마 정화나 마음 수련 등 영혼마다 제각각 다른 목적들을 가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먼로 자신이 유체이탈을 통해 알게 된 대부분의 정보들은 자신이 직접 본 것이거나 지도령이나 인스펙들과의 소통에 의해 알게 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최면 방식을 사용하는 마이클 뉴튼의 연구 결과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보았을 때 꽤나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자신의 기준에 맞게 걸러서 들을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먼로는 연구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체이탈을 가르쳤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경험이나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고차원에서의 영적소통은 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서로 다를 수가 있다 보니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듯합니다.

여기서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 나오는데 인류는 고도로 진보된 고차원 영혼들이 유전자 조작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왜 최초에 인류를 창조했는지에 대한 견해는 먼로 연구소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영혼은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육체는 고차원 영혼들이 영혼의 윤회를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행성마다 영혼이 들어가 윤회하면서 배움을 얻기에 적절한 생명체를 창조하거나 유전자를 개량하며 관리하는 고차원 영혼들이 있는 듯합니다.

원숭이가 유인원이 되고 다시 인간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중간 단계의 화석이 없는 것도 그렇고 인간의 진화가 단기간에 너무 급격하게 이루어졌다는 점들을 볼 때 진화론은 상당히 불완전하고 결함이 많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차라리 외계인이나 고차원 영혼들이 원숭이 유전자를 개량해서 인류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 영혼이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게 저에게는 훨씬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포커스23에는 차원이 둘로 나뉜다고 합니다.

하나는 물질계에 대한 집착 때문에 물질계 가까이서 계속 머무는 상태이고 또 하나는 각자가 자신의 상념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 속박되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 차원에 있는 죽은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해 혼란에 빠져있기도 하고 멍한 상태로 있으면서 죽기 전에 하던 일을 습관적으로 계속 반복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영혼들은 그 곳에서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머무르기도 하지만 어떤 영혼들은 수천년을 머문다고 합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도 나오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곳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다는 게 저에게는 약간의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어릴 때 죽어서 포커스23에 갇혀 있었는데 부모와 함께 걸어가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부모가 와서 자신을 꼭 찾아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로는 그 아이를 그곳에서 구제해주기 위해 다가갔지만 자기가 죽은지도 모르고 있고 부모님이 절대 낯선 사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계속 그곳에 묶여 지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종교인들은 그 곳에서도 계속 신을 섬기며 예배도 하면서 종교 활동을 하는데 그들의 종교에 대한 강한 믿음과 신념 때문에 구제하기가 힘든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먼로의 말로는 그 곳에 갇혀 있는 이들은 밖으로 나가는 배를 타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쉬울 때도 있지만 어떤 영혼은 거의 불가능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마이클 뉴튼 책에서는 하위 차원에 있는 영혼들을 구제하러간 영혼들이 가끔 조롱과 비웃음을 당한다고 하더군요.

현실에서도 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비웃는 경우가 있듯이 영계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먼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제가 어느 해변가에서 날아다니는 나비를 따라 다니며 뛰어 노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요.

그 때 그 해변가에는 큰 배가 정박해 있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 항구에는 야구장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큰 전광판 같이 생긴 것이 있었는데 그 전광판을 자세히 보니 사람 이름이 적혀있고 왜 죽었는지에 대한 ‘사인’이 적혀있더군요.

‘사고사, 질병, 자살’등 세세하게 다 적혀있었습니다.

명부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내용들도 적혀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

아마도 그 곳이 먼로가 말한 포커스23의 영역인데 이제 막 죽은 사람들을 포커스27의 영계로 데려가기 위한 곳이 아닐까 합니다.

죽은 사람이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이건 자각몽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꿈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걸 자각몽이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자각몽을 전혀 못 꾸는 사람들도 많고 자각몽을 꾸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죽고 나서 죽은지도 모르는 것도 꿈에서 꿈인 걸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살아생전에 자각몽을 잘 꾸었거나 영성에 대해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죽은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죽고 나서 죽음을 빠르게 인지하기도 하고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를 겁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지도령이나 수호천사들이 길을 안내하려고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사람으로 살았을 때 영성을 전혀 모르고 물질 위주의 에고적인 삶만 살았다거나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에만 고집스럽게 빠져 있는 성격의 사람들은 그 도움의 손길을 잘 느끼지도 못하고 의식이 깨어나질 못해 상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할 겁니다.

포커스 24~26은 신념체계의 영역인데 비슷한 것을 믿는 영혼들이 모여 만든 세계라고 합니다.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 신념, 가치관들을 품게 되었고 포커스23~26들의 중간단계 영계들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같은 것을 믿거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신의 진동수에 맞게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가게 된다고 하는데요.

차원이 높아지면 생각이 물질을 만들어내게 되므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영혼들이 수없이 많이 모이면 그 생각에 상응하는 진동을 가지는 차원의 세상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세계, 매일 싸움만 하는 사람들의 세계, 시험공부나 일만 하는 사람들의 세계, 정욕의 세계, 남을 괴롭히거나 사기를 치는 범죄자들의 세계 등 여러 세계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의식수준이 높은 고차원 영혼들이 보기엔 답답하거나 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는 곳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 영혼들 스스로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세계일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포커스27로 가지 못하고 23~26에 가는 경우가 많다보니 헬퍼 영혼들이 구출하러 그 차원으로 내려간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 영역에 있는 영혼들은 자신의 생각에 너무 매몰되고 묶여 있다 보니 헬퍼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포커스 24~26이 인간들의 신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라면 아마도 태초 인류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포커스 27만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요.

그래서 원래는 사람이 죽으면 포커스27로 다이렉트로 가서 죽은 가족들도 만나고 인생회고도 하고 다시 환생을 계획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정상인데 인간의 마음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생각이나 사념들이 만들어 놓은 하위층 중에 자신의 진동에 맞는 곳으로 끌리듯 들어가서 일정기간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포커스27은 따뜻하게 반겨주는 친구나 가족, 친구 영혼그룹들이 있는 곳이고 다음 환생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먼로는 이곳에 ‘센터’라고 불리는 영혼들을 위한 여러 시설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 나오는 시설들과도 매우 유사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헬퍼(도우미)’라고 불리는 진보된 영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친절하고 지혜롭고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윤회하는 영혼들을 항상 도와주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제가 영계에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환생을 담당하고 있는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고차원 영혼그룹들이 있을 거라는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그 영혼들이 바로 포커스27에 거주하는 헬퍼 영혼들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헬퍼영혼 같은 고차원 존재들이 영계와 영혼들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유지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의 유일한 법칙은 자신의 믿음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영계에서는 자유의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죽은 후에 자신이 낮은 차원에 머물고 싶다면 설득해서 데려올 수는 있어도 절대 강요할 수가 없고 환생도 절대 강요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가 있는데 유일하게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생각이 물질을 창조하므로 자신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창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포커스27은 인간 의식의 마지막 단계라고 합니다.

이 곳에 있는 센터들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리셉션 센터]

죽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곳인데 죽음의 충격이 경감되도록 지구와 유사한 환경이 재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먼로는 이 곳이 지구의 ‘공원’같은 느낌이라고 합니다.

헬퍼들은 영혼들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구, 목사, 승려 등으로 변장을 해서 영혼들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컨텍트’라는 영화가 생각이 나는데요.

조디 포스터가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가서 외계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외계인이 조디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조디의 기억 속에 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외모를 물질화 시켜서 만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배려심이 많고 외모를 마음대로 물질화 시킬 수 있는 고차원 영혼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거라고 추측해 볼 수가 있고 아마 저라도 그렇게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재활 센터]

죽음의 충격을 치유하고 재생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부상이나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이 곳에 와서도 여전히 자신이 아파서 병원이 입원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육체가 없어지면 그런 질병이나 고통은 다 없어지지만 자신의 그런 생각 때문에 자신이 아픈 환자인 것처럼 인식이 된다고 합니다.

결국 나중에는 자신은 이미 죽었고 영혼은 아프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런 현상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교육 센터]

모든 인간들의 전생 데이터가 축적이 되어 있는 곳이며 필요에 따라 데이터를 꺼내서 체험해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여러 영혼들에 의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만들어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주의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서 그 곳을 관찰해 볼 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계획 센터]

상담사와 전생의 데이터들을 보고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진보되어 왔는지와 어떠한 개선이 더 필요한지 등을 상담 한 후 다음 환생할 곳을 선택하기도 하고 태어날 환경등도 결정한다고 합니다.

선택지가 별로 없는 영혼들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전생의 카르마에 많이 묶여있는 영혼들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인생의 전체적인 틀과 중요한 만남 같은 것은 미리 계획되어 있지만 세부적인 것들은 계획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부분 역시 임사체험과도 상당히 유사한 부분인데 삶 전체의 큰 틀은 정해져 있을 지라도 자유의지가 상당히 많이 허용되어 있고 자유의지에 의해 삶은 원하는 데로 창조될 수 있다고 합니다.

[환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장소]

다시 사람으로 환생을 하려고 줄을 서는 곳이 있는데 행렬이 엄청나게 길다고 합니다.

그만큼 대기자가 많은 듯 보이며 ‘환생감독자’라고 불리는 지적존재가 순서를 관리한다고 합니다.

환생의 순서를 관리하기도 하고 적절한 시점과 환경에서 환생할 수 있도록 조율하기도 하는데 영혼이 환생할 환경, 가족, 사회적 배경 등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이 곳을 통과할 때 모든 기억은 지워지고 확대되어 있던 그 사람의 의식은 물질계에로만 집중할 수 있도록 축소된다고 합니다.

먼로의 책에는 이 과정을 “awareness step-down (의식의 단계적 축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가끔 의식이 확대된 채로 태어나는 존재들이 있는데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에너지를 읽는 능력이 있거나 영감이나 육감이 상당히 발달해있다고 합니다.

선천적으로 영능력이 있거나 인스펙들과 같이 상당히 진보된 고차원 영혼들을 말하는 듯 합니다.

의식을 제한시키는 시스템의 오류인건지 아니면 의식의 진동수가 너무 높거나 강력하면 제한시키기가 어려운건지 그것도 아니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제한을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네요.

그 이후에는 자신이 태어날 곳을 향해 날아간다고 하는데 지상에서 가까운 사이로 인연을 가지게 될 사람들과는 가느다란 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실이 자신이 태어날 곳으로 끌리듯이 안내하는 듯 한데요.

제가 환생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고차원 영혼들이 어떤 영혼을 환생시킬 때 사전작업이 이루어질 거라는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지상에서 가까운 인연과는 연결되는 가느다란 실이 그런 작업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영혼과 육체도 은줄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데 환생을 결정하고 나면 자신이 선택한 육체와도 은줄이 연결이 되게 되고 가까운 인연과도 가느다란 실의 형태로 연결이 되는 듯합니다.

그런 줄들은 육체를 가지고 사는 동안 계속 연결되어 있는 듯하고 완전히 죽게 되면 해체될 거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독특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모든 인간들의 소원과 의지가 실현되도록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모든 타이밍들이 항상 조절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일을 담당하는 지적 존재들은 모든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적절한 타이밍에 어떠한 이벤트들이 일어나도록 조율한다고 합니다.

아마 영계에서 미리 계획한 중요한 일들이나 인연,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신기한 동시성 같은 것들이 우연인 것 같지만 그런 일이 생기도록 영계에서 모든 상황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조절하는 듯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거나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을 때 꼭 이루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고 노력을 많이 할수록 영계에서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있는 존재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최면 영상을 보다가 얼핏 들은 기억이 있는데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소원을 빌면 그 메시지가 천상에서도 들을 수가 있다고 하는데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소원이나 남을 위해 기도하는 이타적인 소망들은 고차원 영계에까지 매우 잘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리사욕과 같은 욕심이나 탐욕,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나쁜 마음들은 전달이 잘 안된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생각이나 마음도 에너지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이타적인 에너지는 진동수가 높고 탐욕이나 이기적인 생각의 에너지는 진동수가 낮다 보니 생각의 진동수에 따라 영계로 전달되는 높이도 달라서 그런 듯합니다.

생각의 에너지가 고차원까지 전달되려면 아무래도 진동수가 높아야하기 때문이죠.

위에서 설명한데로 고차원 영계에 지구 영혼들의 소원이나 소망을 이루어주는 영적인 존재들이 있다면 진동수가 낮은 생각들은 그 영혼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잘 이루어지지 않지만 남을 위한 순수한 생각들은 전달이 잘 되기 때문에 도와주는 영적인 존재들이 있어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아닌가 합니다.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하늘에서 기도를 듣고 현실화되도록 도와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선한 방향으로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는 영적인 존재의 도움과 개입이 있는 경우가 꽤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포커스 레벨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보면 21~23은 영계도 아니고 물질계도 아닌 흔히 말하는 ‘중음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고 지상의 인간과 비교적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낮은 차원으로 보입니다.

24~26은 지구영계 내에서 약간 낮거나 일반적인 수준의 아스트랄계나 유계를 묘사하는 듯 하고 27은 윤회하는 영혼들을 위한 지원센터들이 있고 다음 환생을 준비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많은 도우미 영혼들이 있는 곳인 듯합니다.

28이상의 고차원은 지구영계를 벗어나 지구 영혼들보다 의식레벨이 훨씬 높은 고차원 영혼들이 사는 다른 우주나 행성들의 영계를 말하는 듯합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다시 환생하기까지 영혼들이 거쳐가는 과정이나 영계의 차원들은 영혼마다 각양각색인 것 같습니다.

물질계에 집착이 많아서 중음계에서 떠도는 영혼, 죽은지도 모르고 현생에서의 생활을 죽고 나서도 계속 반복하는 영혼, 저승사자나 안내자 영혼에게 인도되어 영계로 올라가는 영혼, 낮은 차원의 영계에 묶여 있다가 의식이 깨어나 스스로 영계로 올라가는 영혼, 죽자마자 물질계의 집착을 버리고 상황을 바로 이해하고 자신이 가야할 영계로 바로 올라가는 영혼, 죽고 나서 지구영계를 벗어나 자신의 고향인 고차원 외계행성으로 돌아가는 영혼 등 정말 다양한데요.

마이클 뉴튼의 책에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스스로 가든 도움을 받아서 가든 언젠가는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내자 영혼들은 길을 헤매는 영혼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해서 데리고 간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생전에 영성을 어느 정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죽으면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사후에 길을 덜 헤매지 않을까 합니다.

먼로는 인간이 살아온 모든 현실 속에서 순수하고 무조건적 사랑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좀 더 차원 높게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을 계속해서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는 영혼이 배우기 위한 학교라고 말하고 있으며 의식의 진화과정에 있어서 순수함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건 임사체험, 영혼퇴행, 유체이탈뿐만 아니라 모든 성현들의 말씀에도 강조되고 또 강조되는 진리중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사랑으로 행동할 때 지구 졸업에 좀 더 가까이 가게 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육체로 생활하는 동안 가끔 친절한 행동이나 남을 도와주고 하는 것들은 보다 높은 사랑을 경험하거나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먼로는 말합니다.

제가 의식성장에 대한 글을 쓰면서 진동수가 높은 성향을 가지는 친절, 배려, 사랑, 용서, 연민, 지혜, 순수, 맑음, 순리, 조화 등의 인격이나 덕목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었는데요.

먼로가 유체이탈 체험으로 이해한 의식의 레벨과 성장에 대한 부분도 저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듯합니다.

로버트 먼로는 1990년에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연구센터에서는 70레벨 이상의 더 높은 차원의 영계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고 합니다.

먼로는 자신의 책에 죽음 이후에도 연구소의 활동을 지원하고, 그가 연구한 비물질적 현실과 의식 탐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을 했었는데요.

지금도 연구소의 일부 참여자들은 먼로의 영향으로 여겨지는 직관적인 지도나 영적 도움을 경험했다고 보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분들 말로는 먼로가 사후에 영계에서 지도령이 되어 먼로연구소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먼로가 유체이탈을 통해 알게 된 사후세계에 대해 나름 요약해서 적어보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먼로가 남긴 명언들을 소개해볼까 하네요.

"The primary reason for out-of-body exploration is to realize that you are more than your physical body and to access the greater reality that lies beyond."

"유체이탈의 주된 목적은 당신이 물리적 몸 이상임을 깨닫고 그 너머에 있는 더 큰 현실에 접근하기 위함이다."

"The greatest illusion is that mankind has limitations."

"가장 큰 착각은 인류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Fear is the great barrier to human growth and understanding."

"두려움은 인간의 성장과 이해에 대한 큰 장애물이다."

"We are not human beings having a spiritual experience. We are spiritual beings having a human experience."

"우리는 영적 경험을 하는 인간 존재가 아니라, 인간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이다.“

"Understanding is not necessary; just the intent to reach, to discover."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도달하고 발견하려는 의도가 중요하다.“

"You do not go anywhere, experiences come to you. You are the center of all."

"당신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당신에게 다가온다. 당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다.“

"Your only limitation is your belief in limitation."

"당신의 유일한 한계는 한계에 대한 당신의 믿음이다.“

"In exploring the edges of our known reality, we find the keys to our deepest potential."

"알려진 현실의 경계를 탐구하면서, 우리는 가장 깊은 잠재력의 열쇠를 발견한다.“

"By questioning the boundaries of what we perceive as real, we open the door to infinite possibilities."

"우리가 현실로 인식하는 경계를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연다.“

"There is no limitation in what you can do or who you are except the limitations you accept in your mind."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나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제한은 오직 당신의 마음이 받아들이는 제한에 불과하다.“

얼마 전에 하지원씨가 방송에 나와서 자신이 경험했던 신비한 영적인 현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봤는데요.

제가 그 프로를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제가 놀란 이유는 하지원씨와 똑같은 경험을 해서 그런 건 아니고 비슷하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인데요.

하지원씨가 몇 년 전에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달처럼 뭔가 떠있는 것이 보였는데 직감적으로 그 형상이 미래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커트머리를 한 50~60대의 여성처럼 보였는데 파티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저 때 너무 좋았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지원씨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니 놀라서 바로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아마 미래의 하지원씨는 과거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못 볼 줄 알았는데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보고 많이 놀라서 사라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일본에 간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그 형상이 나타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하지원씨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요.

한번은 유체이탈을 해서 저의 고등학교 때의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운동장의 한쪽 면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계단식 벤치가 있었는데요.

가끔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나면 친한 친구들과 그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유체이탈을 해서 상공 20미터 쯤 공중에 떠서 그 광경을 구경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과거의 제가 옆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저를 똑바로 쳐다보더군요.

제가 그 때 굉장히 놀라서 바로 몸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유체이탈 상태에서는 보통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평정심을 잃으면 몸으로 복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 과거의 저의 모습을 보고 ‘저 때 저기에 앉아서 많이 놀았었지’라고 생각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있었는데 과거의 내가 나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보통 차원이 높은 곳에서 차원이 낮은 곳에 사는 존재들을 보고 있으면 거의 대부분 저를 알아채지 못하는 게 정상인데 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별로 놀라지도 않는 듯한 표정이더군요.

그리고 전생이나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듯 한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볼 때에도 그런 경우는 없었는데 또 다른 내가 지금의 나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건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하지원씨의 영상을 보고 놀랐다는 건 제가 하지원씨가 말하는 미래의 영혼의 입장이 되어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떠올려봤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때 하늘에서 그런 형상을 본 기억이 없더군요.

아마 과거에 에고의 내가 아닌 영혼의 내가 본 것이라서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원씨도 그런 경험을 하고나서 아마 우리가 모르는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제가 보기에 하지원씨는 영적체험을 어느 정도 해본 분이고 영성에도 관심이 좀 있는 분 인거 같은데 방송이다 보니 상당히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듯 보이더군요.

그리고 과학자들이 앞에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좀 답답해한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경험처럼 미래의 하지원씨가 꿈에 유체이탈을 해서 과거의 자신을 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지원씨의 상위자아가 지상의 모습을 본 것이거나 하지원씨가 사후에 영혼이 되어 과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떠한 경우이든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간을 초월하는 고차원 세계가 존재함으로써 충분히 설명이 되는 현상이죠.

가끔 영적인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저 영상처럼 나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과학자들이 나와서 체험자들의 말들이 모두 비과학적이고 망상인 듯 가르치려는 경향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요.

저는 이제는 저런 거 보면 설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냥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저런 과학자들은 죽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깨닫게 되면 영계에서 부끄러워하게 될 겁니다.

사람마다 영혼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천차만별인데요.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자라온 환경이나 사상 그리고 체험의 유무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가장 크게 좌우하는 요소는 ‘체험의 유무’와 ‘직관’ 때문입니다.

뇌도 지능이 있듯이 영혼도 지능이 있는데 영혼의 지능 중에 ‘직관’이라는 능력이 있는데요.

직관은 진실을 알아채는 능력이고 영혼들마다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뇌의 지능이 높은 천재나 명문대 나온 박사라고 하더라도 직관이 부족한 영혼은 진실이나 진리를 알아채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직관이 발달한 영혼은 영적체험을 전혀 하지 않아도 그 세계에 대해 그냥 느낌으로 알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자료들을 연구하다보면 영혼이 존재하지 않고는 도저히 모든 현상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건 증명이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겁니다.

반면 직관이 부족한 영혼이나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은 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고 진리에 쉽게 눈을 뜨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어떠한 현상에 대해 숨은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거나 거짓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과 진짜를 잘 구분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이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해 저렇게 말하는 거는 죽고 나면 모두 다 알게 될 일이니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다른 차원에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시각적으로도 실제와는 약간 다르게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에고가 없는 영혼상태로 보다보니 그 느낌이 현실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사진첩에서 어릴 때 자신의 사진을 보면 추억이 떠오르듯이 영혼상태에서도 과거의 자신을 보면 추억이 떠오르는데 사진이 아니라 마치 현실인 것처럼 소리까지 포함한 동영상으로 보인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보통 어릴 때 추억이 생각날 때는 안 좋았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좋았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듯이 영혼상태에서도 과거의 자신을 보면 순수하고 행복했었던 기억이 많이 떠오르게 됩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육체도 없어지고 돈도 아무런 의미도 없어집니다.

영혼이 의미 있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과 행복했던 기억들뿐입니다.

‘젊은이는 희망으로 살고, 늙은이는 추억으로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공부도 중요하겠지만 좋은 추억들도 많이 만드시고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서 행복했던 기억들도 영혼 깊이 많이 간직하셨으면 합니다.

아래 영상은 하지원씨가 겪었던 신비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입니다.

https://youtu.be/3WeovDTOJvA

유체이탈로 영계에 가보면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하고 독특한 풍경들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요.

물리법칙이 완전히 다르다보니 중력에서 벗어난 건물들도 많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화풍이나 풍경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번은 팔각정자 여러 개가 보이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정자모양은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팔각정자와 비슷해 보였는데 전체적인 분위기와 상황이 상당히 이질적이고 특이하더군요.

눈이 많이 왔는지 나무들과 땅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는데 춥다는 느낌보다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영계에서 눈이 오거나 눈이 쌓여있는 장면을 보면 현실과는 달리 애니메이션에서 눈이 오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이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팔각정자들이 땅에 붙어있지 않고 공중에 떠있더군요.

정자들은 공중에 떠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시계방향을 그리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정자들이 살아서 움직이듯이 호흡을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정자로 날아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엄청나게 높게 떠 있더군요.

마치 몇 백층 높이의 건물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는데 아래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는 듯 사람들이 살고 있더군요.

같은 차원에서 지상과 공중으로 세상이 분리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차원에서 하위차원의 또 다른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상당히 독특한 구조를 가진 세상이었습니다.

그 곳은 걸어 다닐 수 있는 땅도 있고 건물들이 그냥 공중에 떠 있기도 했는데 그 차원의 세상이 영화 ‘아바타’나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전체적으로 공중에 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 하네요.

정자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있었는데 정자 중 한 곳에는 스님들이 몇 분 앉아계시더군요.

뭘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니 화선지에 붓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불경을 적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뭔가 회의를 하는 듯 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가 유체이탈한 차원이 그 차원보다 높다보니 제가 바로 옆에 있어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조금 지켜보다가 현실로 돌아왔는데 여운이 남을 정도로 독특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세계를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으로 그려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정확하게 표현이 잘 되지 않더군요. ㅋ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들이 지구데이터만 있고 영계데이터가 없어서 그런지 아무리 프롬프트를 잘 입력해도 지구와 유사한 이미지들만 생성이 되더군요. ㅋ

인공지능이 더 발전하면 그 때 보았던 그 세상을 정확하게 다시 한 번 그려보고 싶군요.

하늘위에 정자들이 떠 있는 모습이 잘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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