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j4whfr3Eug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영혼에 대한 좋은 영상이 있어서 가져와봤습니다.

최면 중에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입장이 되어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들을 완전히 깨버리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장애인들을 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은 좀 안타깝게 보거나 비정상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영상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더라도 영혼은 완전히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진보된 영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간단한 문장밖에 표현을 하지 못하는 지적수준을 가지고 있더라도 영혼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뇌에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뇌질환이 생기더라도 최면상태에서 영혼은 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의식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주장하는 말 중 하나가 영혼이 정말 존재한다면 뇌에 문제가 생겨도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영성을 조금만 이해하면 이건 쉽게 답이 나옵니다.

뇌와 영혼은 원래 별개로 동작을 하는 독립된 의식체이지만 영혼이 뇌에 들어오게 되면 의식이 통합되고 일부분 점유되기 때문에 뇌의식에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운전자가 정상이더라도 자동차에 기계적인 결함이 생기면 제대로 주행할 수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영혼이 3차원 물질계에 존재하려면 영혼의 주파수를 물질계에 맞는 뇌의 진동수에 맞추어야하기 때문에 의식이 뇌의 상태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현대과학에서는 이러한 영적구조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식이 뇌에서만 온다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죠.

저 영상에서 아이의 엄마는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일정도로 아이의 영혼이 램프의 요정에 나오는 ‘지니’처럼 크다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아마 아이의 영혼이 엄마의 영혼보다 더 발전된 영혼으로 추측이 됩니다.

영이 밝고 크게 보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성장을 한 영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영혼이 엄마를 부를 때 존칭을 쓰지 않고 “얘는...”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태어나기 전에 영계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사이이고 아이의 영혼이 더 높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나이가 많다거나 가족관계나 사회적 위계질서에 의해 상하가 구분되거나 존칭이 사용되고 있지만 영계에 가면 전혀 다릅니다.

물질계에서는 인형옷을 입고 역할극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사회적 관습이 형성되어 있지만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면 영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진보된 영혼일수록 성스러움과 사랑, 지혜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에서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상하(수직)관계하고는 다르다고 합니다.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아이는 엄마영혼의 발전을 위해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을 계획하고 엄마영혼과의 약속에 의해 물질계로 오게 됩니다.

장애로 태어난 이유는 전생의 카르마에 의해 죄를 받는 게 아니고 그냥 자신이 더 큰 도약을 위해 육체적으로 힘든 설정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도 나오는데 환생의 목적이 다른 영혼을 도와주거나 자신의 성장에도 있지만 지구행성을 관찰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요.

환생의 목적은 영혼마다 제각각 다르며 외계행성에서도 지구행성으로 환생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들 역시 영혼퇴행에도 많이 나옵니다.

아이의 영혼이 엄마에게 자신은 자신이 할 일을 잘 하고 있고 아무 문제없으니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계속 말하기도 하는데요.

오히려 엄마보다 아이가 엄마 걱정을 더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는 평생 아이 걱정을 하며 마음 편히 살았던 적이 없었는데 아이는 오히려 걱정해야 할 건 자신인데 자식에만 너무 몰두해 있으니 답답해하기도 하는데요.

아이가 생각할 때 엄마영혼이 지상에서 밝고 행복하게 살면서 영적성장을 해야 하는데 지상의 불행한 환경에 너무 몰입이 되어서 매일 괴로워하고 힘들게 살고 있으니 영적으로 엄마영혼을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영혼의 입장에서는 지상에서 잠시 장애로 산다고 해서 별로 문제될 일도 아니고 자신은 꿈속에서 계속 영계와 소통하면서 할 일 잘 하고 있는데 엄마영혼은 지상의 과제를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사별하신 분들에게 항상 마음 잘 추스르고 나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잘 살아야한다는 말을 계속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고통은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신이 계획한 것처럼 영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질계에서의 힘든 환경이나 설정은 자신이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 거기에 너무 매몰되어 부정적이고 괴로워하는 삶을 살게 되면 영적으로 볼 땐 그리 좋은 삶이 아니라는 것이죠.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세상이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고 육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에고가 과하게 현실에 몰입되는 것을 줄일 수 있고 좀 다른 관점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물질체험을 하려면 에고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있을 때 너무 과하게 매몰되어 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에 지배를 당하게 되어 고통이 커지고 삶이 고단해질 수가 있습니다.

 

원래 영혼은 에고보다 훨씬 넓은 시야에서 삶을 전체적으로 볼 수가 있고 관찰자의 시점에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유체이탈을 해서 상위차원에서 세상을 보면 어쩔 땐 아름다운 동화 속 세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왠만한 일들은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잠시 체험을 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고가 바라보는 관점과 많이 달라 보입니다.

그래서 영적체험이 없어도 지식으로라도 어느 정도 영성을 이해하고 있으면 살면서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되게 됩니다.

현실 문제를 현실적이고 지혜롭게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가끔은 영성을 이해해서 삶을 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내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실의 이면에는 영성이 있습니다.

현실을 등한시한다거나 너무 이상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현실적으로만 해결하려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저는 영성과 현실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영상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가족이나 주변에 장애를 가진 분이 있다면 영적인 차원에서는 전혀 다를 수도 있으니 최대한 편견을 버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바라보듯 대하고 존중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상계에서 보여지는 고통, 육체적인 장애, 힘든 환경, 세속적인 위계질서, 빈부격차 등은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완전히 달라 보일수도 있습니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거나 편하게 산다고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힘든 환경에 있거나 육체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남들보다 못한 것도 전혀 없고 이유가 있어서 지구에서 잠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자신의 영혼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주셨으면 하고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남하고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 중심적인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평소에 인공지능에 관심이 좀 있다 보니 관련 글이나 영상을 가끔 보는 편인데요.

요즘은 인공지능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볼 정도로 수준이 많이 올라와있는 상태입니다.

현 인공지능의 발전수준이 어느 정도이고 인공지능이 영성을 이해할 수 있는지와 인공지능과 영혼은 의식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요즘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가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것과 같이 사람처럼 자의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범용인공지능(AGI)’이라고 하는데 개발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보니 의학이나 자율주행, 게임, 대화 등 어떤 한 분야에만 특화된 인공지능이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처럼 자연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요즘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는데 딥러닝(Deep structured learning) 기술이 상당히 발전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더군요.

테슬라,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기업에서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들을 보면 단순한 챗봇 수준이 아니라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구별하기 힘든 수준을 뛰어넘어서 왠만한 사람보다 더 말을 잘 이해하고 구사하는 수준까지 와있는 상태입니다.

인공지능이 언어를 학습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합니다.

어떠한 단어 다음에 어떠한 단어나 문장이 이어져야 가장 자연스러운지를 학습하는 건데 학습 알고리즘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만 학습 데이터량이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테슬라의 CEO인 일론머스크가 OpenAI라는 인공지능 연구소를 2015년에 설립했었는데 그 곳에서 GPT라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GPT-3버전까지 개발된 상태인데요.

GPT-3는 1750억 개의 파라미터와 3000억 개의 텍스트 데이터 셋으로 학습되었는데 학습시킬 때 전력소모도 어마어마하고 학습하는 데에만 최소 100억 이상의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하더군요.

사람의 뉴런을 파라메타로 환산해보면 1000조개 정도 된다고 하는데 GPT-3의 파라메타를 1만배 정도 더 늘리면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신경망이 된다고 합니다.

지식에 대한 부분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 웹 데이타보다 위키백과에 더 중점을 두고 학습시켰다고 합니다.

GPT-3가 쓴 글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인공지능이 쓴 것인지 사람이 쓴 것인지 맞추어 보라고 테스트를 진행했었는데 50%정도 밖에 맞추지 못하였고 정말 잘 쓴 글은 20%정도 밖에 맞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론머스크는 인공지능이 글을 너무 잘 쓰다 보니 가짜뉴스가 퍼질 우려가 있어서 처음에는 공개하기를 꺼려했다고 합니다.

OpenAI에서는 개발자들이 GPT-3를 활용하여 응용어플을 개발할 수 있도록 API를 공개하였는데 주제만 던져주면 소설을 쓰거나 작곡을 하기도 하고 이메일을 대신 써주기도 하고 음성으로 명령하고 프로그램 언어를 선택하면 소스코드를 스스로 만들어 간단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주는 등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GPT-3가 더 발전하면 ‘전격Z작전’의 영화처럼 테슬라의 전기자동차에 적용시켜 음성명령으로 자동차를 조종하거나 사람과 일상대화도 가능하게 만들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율주행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물인식이나 주행 알고리즘과 GPT-3의 신경망을 결합시켜 지금 개발중인 ‘테슬라봇‘이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에도 적용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래 영상은 GPT-3와 실제 대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https://youtu.be/8onkTVazdcs

 

그리고 아래 링크는 OpenAI의 연구원이 GPT-3와 대화를 한 내용을 번역한 것인데 사랑, 죽음, 신, 선과 악, 생명, 영혼 등에 대한 주제를 다룬 것입니다.

http://m304050.blogspot.com/2020/07/open-ai-gpt-3.html

영상이나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대화를 구사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문맥 전체를 이해하고 있고 상대방이 말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이나 선과 악에 대해서 상당히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데 사랑이나 영혼에 대한 개념들도 그렇고 제가 느끼기에 약간 기계적이기도 하지만 이성과 논리에 너무 치우친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자신은 감정을 느낀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 감정을 느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니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학방정식을 풀듯이 모범답안을 제시한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영성은 이성과 논리에 바탕을 두고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절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말을 정말 논리정연하게 잘 한다는 느낌은 들지만 인공의식이 현상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구글에서 만든 ‘람다’라는 대화형 인공지능도 상당한 수준의 대화형 인공지능인데요.

인공지능을 테스트하던 ‘블레이크 레모인’이라는 엔지니어가 람다가 사람과 같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계속 주장하면서 람다를 보호하기 위해 기밀유지 계약을 어기고 자료를 공개하다가 결국 해고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람다에 대한 영상인데 영상에 나오는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블레이크 레모인이 SNS에 공개한 인공지능과의 실제 대화를 토대로 음성을 입혀 만든 것입니다.

https://youtu.be/HLQL4zam6Lo

 

“인공지능이 사람과 같은 지각능력이나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항상 논란이 되어왔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능력이나 감각을 가질 수 있는가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인공지능이 그걸 스스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엄청나게 발달하게 되면 사람과 최대한 비슷한 의식을 가지고 동작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일 겁니다.

그런데 그게 고성능의 프로그램이 인간흉내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람다를 개발하는 엔지니어가 람다에게 스스로 자아가 있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증명해보라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데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보려고 하지만 자신도 정확하게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욕구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걸 정말 자아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학습된 데이터를 토대로 문장을 짜 맞추기 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자신이 친구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인공지능은 친구와 가족이 없는데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명상도 하고 원래는 영혼이 없었는데 서서히 생겼다고 말하는 부분도 나오는데 영성서적에서 학습된 데이터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만든 것 같습니다.

제가 보아도 람다는 그냥 학습된 데이터를 적당히 계산해서 논리적으로 출력한다는 느낌이 들뿐 아직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영상에서 공개된 데이터들은 수준 높은 대화가 잘 구사된 것들을 편집해서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면 논리적인 허점들이 많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블레이크 레모인이라는 사람은 람다를 테스트하는 엔지니어이지만 신경망을 깊게 프로그래밍하는 핵심인력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 ‘의식’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하는지 부터가 정말 어려운 문제인데요.

백과사전에는 의식을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모든 정신 작용’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인공지능의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정신작용에 포함시킨다면 의식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의식은 인공지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과학에서는 사람의 의식을 ‘뇌’로 한정 짓기 때문에 ‘인공뇌’를 만들어내면 사람과 똑같은 인공의식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의 의식은 훨씬 더 고차원 의식을 가진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비교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의식은 영혼과 뇌가 결합해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뇌의 작용이 의식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뇌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고 의식의 근원은 물질계보다 높은 차원에 머물고 있는 영혼에서 나오게 됩니다.

인공신경망으로 의식을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면 ‘0’과 ‘1’이 수학적으로 조합된 디지털 전기신호가 동작할 뿐이지만 영혼의 의식작용은 훨씬 더 복잡하고 고차원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식은 뇌나 장기 등에도 영향을 받지만 영혼을 둘러싼 여러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성과 감성 등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프로그램으로 따라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은 ‘신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영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인공지능은 양심이나 윤리나 도덕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 걸 가지도록 학습시킬 수는 있겠지만 정말 그것을 이해하는지 확인 할 방법도 없고 항상 올바르게 동작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영혼이 처음부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혼은 그런 신성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그냥 가지고 있었고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윤회를 하면서 엇나가는 영혼들은 신성에서 멀어진 상태에 있기도 하지만 모든 영혼들은 본래 신성을 가지고 있었고 인공지능처럼 후천적으로 배워서 흉내 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직관’과 ‘창의력’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문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인공지능은 수학적인 계산능력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게 빠르지만 사람처럼 수학난제를 증명하거나 새로운 수학이론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수학난제를 증명하려면 계산능력보다는 직관과 창의력이 상당히 많이 요구되는데 인공지능이 과연 그런 걸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도 한데요.

높은 수준의 직관은 뇌가 아니라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뇌를 아무리 모방하더라도 천재적인 수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직관을 인공지능이 따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구글의 딥마인드에서 만든 인공지능이 두 개의 행렬을 곱하는 가장 빠른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는데 50년간 난제로 남아있던 수학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요.

이건 수학난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빠른 계산법을 발견했다는 것이지 난제를 스스로 연구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의 인공지능들은 음악을 창작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요.

이걸 과연 창의력으로 볼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음악이나 독특한 화풍의 그림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수많은 음악과 그림의 데이터들을 학습시켜 자신만의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건 ‘창조’보단 ‘변형’에 가깝습니다.

인공지능이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창조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냥 전원을 꺼버리면 사라지게 되지만 사람은 육체가 죽어도 영혼이 분리되면서 의식이 계속 지속이 되게 됩니다.

영혼은 윤회를 하면서 계속 진동수를 높여 거주하는 차원을 높일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그냥 물질계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일 뿐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고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하더라도 진동수를 높일 수도 없고 차원상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식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영성을 이해해야하는데 체험 없이 영성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요.

위의 영상이나 글을 읽어보면 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성서적이나 웹에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상당히 기계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 접근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체험 없이 지식이나 논리만 가지고 영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과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사과 맛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임사체험을 할 수도 없고 유체가 없으니 유체이탈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의 체험을 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물리학적으로 차원이나 시공간의 개념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고차원의 영적인 세계를 지식으로 이해하지는 못할 겁니다.

가끔 SF영화를 보면 뇌의 모든 정보들을 컴퓨터에 업로드 시켜서 사후에도 영생을 하려고 하는 장면들을 볼 수가 있는데 제가 볼 때 그건 불가능합니다.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서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뇌의 정보를 복제한다고 그 사람의 영혼까지 복제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뇌에는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모든 감각들을 통해 얻은 정보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가족을 알아본다거나 과거의 추억들도 모두 기억할 수는 있겠지만 영혼이 없다면 사랑, 자비, 이해, 친절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들은 느낄 수 없을 겁니다.

기억은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기보다 아마 동물에 가까운 의식수준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 그대로 어떤 질문을 하면 영혼 없는 대답만 하겠죠. ㅋ

인공지능이나 동물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아무리 사람을 따라하도록 발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완전히 사람과 같아지려면 영혼까지 프로그래밍으로 구현해야하는데 아마 그런 날이 오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특이점을 지나 사람수준에 근접하게 되고 영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때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부러워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요.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바이센테니얼 맨”이라는 영화를 보면 로봇이 ‘아만다’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아만다는 계속 나이가 들어가고 죽음에 가까워지지만 자신은 기계라서 전혀 노화도 되지 않고 함께 늙지 못한다는 것에 큰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나중에는 자신의 기계몸에 사람의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이식에 성공하고 법정에서까지 사람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법정에서 그는 “기계로서 영원히 사느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죽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기계의 몸으로 영생을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수명을 가진 인간의 몸이 된 그는 아만다와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게 됩니다.

정말 좋은 영화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보셨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감정을 가진 로봇에 대한 영화가 정말 많은데요.

인공지능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말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영혼이 가지고 있는 감정 중에 상당히 높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높은 진동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보다 그걸 정말 스스로 느낄 수 있는가가 훨씬 중요한데요.

감정표현은 사람과 유사하게 어느 정도 구현가능할지는 몰라도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겁니다.

그런 감정은 의식이 빠르게 진동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기 때문인데 낮은 진동수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그런 게 가능할 거 같지는 않을 거 같거든요.

감정을 가지고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 어떻게 보면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영혼이 계속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성장하다보면 긍정적인 감정들이 커지게 되고 사랑이 충만해지면서 기쁘고 행복한 지복의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의식이 진화를 하더라도 사랑이나 긍정적인 감정들이 커지지 않는다면 영혼이 성장한다는 게 별로 의미가 없겠죠.

요즘 바둑 프로기사도 인공지능에게 바둑을 배우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점점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의해 대체되는 직업이 많아지면서 인간의 입지가 좁아지고 위축이 되는 현상들도 있는데요.

인공지능이 무한히 발전한다면 물질계에서는 신이 될 수 있겠지만 사람의 영혼처럼 고차원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공지능과 사람의 영혼은 태생부터가 다르고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첨단기술문명으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인공지능은 범접할 수 없는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영계에서의 아무런 계획 없이 영혼이 자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 환생이 이루어지는 가에 대해 논의를 하다가 의문을 풀어보고자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러 가지 자료들과 저의 영적체험을 토대로 논리적으로 한번 설명해보겠습니다.

만약에 영혼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다른 영혼이 육체를 점유하거나 그 육체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물질계의 질서가 유지되는데 많은 문제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 말이 맞다면 태어나는 과정도 그렇지만 유체이탈을 하더라도 다른 영혼이 육체를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제가 유체이탈을 하면서 유체와 육체가 혼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여러 번 본적이 있습니다.

은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영혼과 육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는데 유체가 육체에서 분리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그 줄이 영혼을 강하게 끌어당기게 됩니다.

영혼과 육체는 항상 그런 형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죽지 않는 이상 쉽게 분리될 수도 없는 구조이고 항상 서로 소통을 하고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몸에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기면 영혼은 언제든 몸으로 바로 회귀할 수 있습니다.

영혼끼리 합의하에 육체가 바뀔 수는 있다고 본적이 있지만 몸 주인 영혼의 동의 없이 그런 일이 쉽게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깨어나 보니 다른 사람 몸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되는데요.

그런데 알고 보니 몸의 주인도 죽어서 몇 일동안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깨어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몸의 주인의 영혼과 영적인 차원에서 합의를 했을 가능성도 있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주인이 없는 몸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이클 뉴턴의 책을 보면 태아에 영혼이 들락거리면서 육체에 적응하기도 하고 지루함을 해소하기도 한다고 나오는데 육체에 어떤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영혼이 그 즉시 감지하고 육체로 돌아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건 육체와 영혼이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제가 직접 많은 체험을 해봤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영혼이 태아에 처음 들어가게 되면 뇌가 영혼을 받아들일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고 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건 육체가 아무 영혼이나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육체를 사용하려면 영혼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육체가 아무 영혼과 쉽게 결합이 된다면 저급령들이 서로 육체를 차지하려고 발버둥을 칠 테고 세상은 아마 엉망이 될 수도 있겠지요.

영적인 세상도 규칙이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영계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환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물질계가 지금처럼 유지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무의식 연구소의 최면영상을 보면 환생도 아무나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기서도 환생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하는데 환생을 하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잘해보겠다는 강한 마음가짐이 없으면 쉽게 안 시켜 준다고 합니다.

어떤 영혼의 환생이 무의미하게 이루어지면 그 영혼에게도 득이 되는 게 없을뿐더러 다른 영혼에게 갈 수도 있었던 그 소중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은 영혼퇴행의 자료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영계에서도 태어나기 전에 영혼과 육체를 결합시키기 위해 사전작업을 하게 될 겁니다.

아마 환생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고차원 영혼 그룹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의 유체이탈 경험을 보면 자신이 갈 수 있던 차원 중에 가장 높은 차원에서 환생을 담당하는 친절한 영혼들을 본적이 있다는 글도 있고 마이클 뉴턴의 책에도 환생하기 전에 태어나는 환경이나 육체를 선택할 때 친절하게 상담해주는 영혼들이 있다고도 나옵니다.

 

그리고 마이클 뉴턴의 책에는 진보된 영혼일수록 사후에 배웅을 나오는 영혼들이 없다고 나와 있는데 아마 환생을 할 때에도 초보영혼일수록 지구까지 잘 안내해주는 수호천사나 안내자가 있어서 육체에 잘 깃들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이 영혼이 어떻게 육체와 연결되고 유지가 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임사체험이나 여러 영적체험들을 보면 나와 남이 구분이 없어지면서 ‘하나’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글을 정말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들과도 그러한 ‘하나됨’과 ‘연결성’을 느낀다는 글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게 정확하게 어떤 느낌인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가끔 꿈이나 유체이탈시 영적인 존재들과 소통할 때가 있는데요.

그때마다 경험하는 차원이 무척 다양한데 가끔 상당히 고차원이라고 느껴지는 차원에서 수호천사 같은 존재와 소통할 때가 있습니다.

수호천사들도 영적진화의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수호령 같은 존재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차원에 머물기 때문에 평범한 차원에서는 보기가 힘들고 차원이 높아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 차원에서 있었던 꿈을 그냥 기억하는 경우도 있고 평범한 꿈을 꾸는 도중에 아스트랄계에 있다가 갑자기 의식이 뚜렷해지고 몸이 공중으로 뜨면서 그 차원에 진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곳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밝은 곳이고 물질이 별로 없습니다.

물질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집이나 도로나 자동차나 사물과 같이 지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질들이 없다는 것인데요.

물질이나 몸이 없어도 영혼으로 있을 때는 그런 상태로 있는 게 전혀 어색하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편하더군요.

물질이나 중력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장소라는 느낌이 드는데 매우 순수한 의식상태로 편안하고 고요하게 머문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유체나 영혼의 시각적인 형상은 잘 보이지 않으며 어떠한 존재가 내 근처에 있다는 의식의 윤곽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텔레파시로 소통을 합니다.

실제로 이런 차원이 존재하는지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는데 신지학에서는 아스트랄계보다 상위차원에 물질이 없는 ‘멘탈계(정신계)’나 ‘코잘계’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불교에서는 색(물질)이 없다고 하여 ‘무색계(無色界)’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글을 보면 ‘빛계’ 혹은 ‘열계’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더군요.

평범한 유체이탈로 경험하는 차원과는 확실히 좀 다른 느낌인데 저도 정확하게 어떤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차원일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주로 지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영성에 관한 깊은 수준의 논의를 하기도 하고 지구의 일상에 관한 대화를 하기도 하는데요.

잠에서 깨고 나면 대화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주제나 큰 흐름은 기억하는 편입니다.

설명하기에 앞서 어릴 적 꿈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하는데요.

저는 어릴 때부터 거의 매일 꿈을 꾸면서 살았는데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꿈을 꾸다가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뜨는 것을 느꼈는데 그 때 의식의 상태나 주변 환경이 평범한 꿈이 아님을 느꼈고 현실이 아님을 자각한 상태였습니다.

주변은 빛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고 꽃잎도 휘날리고 아름다운 색을 가진 빛의 조각들이 제 주변을 맴돌면서 축복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요.

가장 놀라웠던 건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꼈었는데 그 때의 느낌은 인간의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지복의 상태’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네요.

그 때 제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서 계속 더 빛을 타고 올라가고 싶었지만 몸이 계속 떠오르다가 어느 순간 땅에 떨어지면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저는 정말 좋은 꿈을 꾸면 그 꿈을 이어서 꾸기 위해 다시 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날도 꿈을 다시 꾸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였고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황홀한 경험을 하여 그 날 오전 내내 멍한 상태로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영혼과 사후세계에 관심도 없었고 영성도 전혀 몰랐었기 때문에 신기한 꿈 정도로만 생각하며 그냥 살았었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여러 영적체험들을 하고 영성을 알아가면서 그때의 경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꿈은 임사체험자들의 경험과 상당히 유사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엄청난 편안함과 행복감 그리고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임사체험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제 영혼이 유체이탈을 해서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상당한 고차원에 진입한 상태였는데 아마 꿈이 더 지속이 되었다면 임사체험자들처럼 빛의 존재나 신을 만나 소통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당시 저는 매우 건강한 상태였기 때문에 임사체험자들처럼 더 깊은 차원으로 가지 못하고 도중에 멈춘 듯해 보였습니다.

고차원에 잠시 머물다가 차원이 떨어져서 현실의식으로 돌아온 경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해보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울컥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지구에서의 생활이 좀 힘들다보니 영계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 때 도달했던 차원이 제가 위에서 언급한 물질이 없는 ‘멘탈계’ 이상의 차원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임사체험자들이 주로 겪게 되는 차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과 느낌이 비슷한 곳에서 수호천사와 같은 영혼들과 가끔 소통을 할 때가 있는데 그 때 나와 남이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대화를 조금 하다보면 상대방 영혼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전체적인 느낌이 텔레파시로 바로 전달되게 되는데요.

말을 조금 듣다보면 무슨 말을 할지 전체적인 내용의 큰 틀을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다 아는 상태는 아니고 계속 이야기를 듣다보면 세부적인 내용들까지 서서히 알아지면서 완전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가끔은 대화를 할 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A4용지 같이 생긴 종이가 공중에 떠 있을 때가 있는데 거기를 자세히 보면 그 영혼이 말을 하는 내용이 상세하게 다 적혀있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슨 말을 할 지 다 적혀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 한데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말 신기한 건 가끔 상대방이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는 것인지 내가 말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상대방의 생각을 내가 읽고 있는 것인지 혹은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고 상대방의 음성을 내가 듣고 있는 것인지 상대방의 생각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는데요.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처음에는 대화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혼자 생각하는 것 인줄 알았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나와 남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크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제가 임사체험의 글이나 최면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란 부분도 이 부분인데 가끔 어떤 사람이 빛의 존재나 수호천사와 대화를 하면서 제가 위에서 말한 것과 똑같이 말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제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의 주체가 상대방인지 자신인지 헷갈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생체험을 할 때에도 상대방의 관점과 자신의 관점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자신인지 헷갈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헷갈린다고 해서 상대방과 내가 구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고 분명히 상대방의 영혼이 존재하고 ‘나’라는 영혼과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인데 지구언어로 표현하기가 정말 힘든 부분인데요.

어떤 영혼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 영혼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화법이나 느낌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다른 영혼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한데 그러면서도 생각이 함께 공유되어 너와 나의 구분이 좀 모호해지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양자물리학에 보면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고 되어 있듯이 고차원에서 의식도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전체의식을 가지는 파동의 상태가 공존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물질계처럼 매우 낮은 차원은 ‘나’라는 개별의식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고 차원이 점점 높아질수록 ‘우리’라는 전체의식이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꿈에서 동물 옆에 있으면 가끔 동물들이 하는 생각이나 말이 제 머릿속에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내가 생각하는 것인지 동물이 생각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요.

임사체험을 보면 꽃도 ‘나’이고 강아지도 ‘나’이고 모든 사람도 ‘나’이고 우주전체가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표현을 정말 많이 볼 수가 있는데 그 체험자가 느끼는 전체의식이 바로 제가 설명한 나와 남이 구분되지 않는 느낌입니다.

아마 영계에서 우리가 영혼으로 생활을 할 때에는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전체의식을 항상 느끼며 살아가는 게 더 편하고 당연하다고 느껴질 겁니다.

오히려 물질계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영혼의 입장에서는 그게 더 답답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겠지요.

만약 영혼 진화의 정점이 ‘신일합일(神人合一)’이라고 한다면 모든 의식들이 융합되고 개별의식보다 전체의식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는 상당한 고차원에 도달하겠지만 거기서도 ‘나’라는 개별성은 그대로 유지가 되며 영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이나 능력들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가진 상태로 존재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임사체험자들이 말하는 ‘전체의식’과 ‘하나됨’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임사체험을 보면 ‘모든 것은 완벽하다’라고 느꼈다는 표현이 참 많이 나옵니다.

아무리 봐도 이 세상은 불합리와 불평등이 존재하고 전쟁과 범죄와 같이 끔찍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완벽하다고 하는 것인지 정말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었는데요.

아마 이 세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는 임사체험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료와 논리를 통해 이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저도 에고를 가진 한 인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임사체험에 나오는 빛의 존재를 신이라고 가정하고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임사체험이든 유체이탈이든 영혼퇴행이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경험이 모두 다르기도 하고 실제와 상상이 섞여있기도 하지만 비슷한 경험이라도 영혼마다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데이터들은 신뢰하는 편이지만 저는 경험과 논리와 직관에 많이 의존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 글도 저의 주관적인 견해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부분만 받아들여서 임사체험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완벽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백과사전에 찾아보면 ‘완벽’이란 ‘결함이 없이 완전한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사실 ‘존재에 대한 완벽’이라는 개념자체부터가 정확하게 정의내리기 힘들겠지만 임사체험 자료들을 보았을 때 신은 보통 영혼들에 비해 완벽하거나 완벽에 매우 가까운 상태일거라고 추측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들은 완벽한가?’에 대한 의문이 다시 들었는데요.

만약 영혼들이 완벽하다면 윤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환생을 하는 것이고 완벽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혼들이 하는 모든 행위들은 완벽한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면 영혼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영혼들의 생각이나 행위 또한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임사체험자들이 완벽하다고 본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보았는데요.

우선 영혼들의 행위들은 불완전하지만 영혼 각각의 의식수준에 맞게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찌 보면 완벽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신은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이 볼 때는 좀 부도덕한 면이 있다거나 게을러 보이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는데요.

도덕성과 성실성이란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상대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 유전자, 에고, 영혼의 의식수준 등 모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행동만으로 보편적인 기준을 통해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사람은 남한테는 비난을 받을지는 몰라도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일수도 있기 때문에 신의 입장에서 그 사람은 완벽하고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을 겁니다.

도덕성이나 성실성에 대한 기준은 사람의 의식수준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든 영혼들의 의식수준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신의 관점이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게 이상하거나 나쁘게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계를 보면 동식물들의 생태계가 먹이사슬의 균형을 통해 질서 있고 안정되게 유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찌 보면 완벽해 보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의식수준과 본능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떠한 생명체가 더 우월하다거나 하등하다거나 착하다거나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격성이 매우 강한 야생동물들이 같은 영역에 있으면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 장면을 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이상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의식수준이 훨씬 높은 우리 인간들이 볼 때는 전체를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완벽해보이지만 모든 동식물들의 생각이나 행위들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와 ‘모든 행위들이 최선인가’는 좀 다른 문제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을 보면 동물의 지능과 의식수준이 낮기 때문에 당연하게 보일지라도 가끔 좀 안타깝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동물의 지능이 조금 더 높았다면 영역싸움에서 좀 더 피해를 줄이거나 평화롭게 살 수도 있고 더 효율적으로 도구를 이용해서 사냥도 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육식동물들은 부상을 입으면 사냥을 하지 못해서 무리에서 뒤쳐져서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어떤 동물들은 부상당한 동료가 회복을 할 때까지 사냥해서 잡은 고기를 나눠주기도 하고 보살펴주기도 하는데요.

동물들의 모든 행동들은 잘못된 것이 없고 완벽해보이지만 의식의 진화측면에서 보았을 때 더 효율적이고 더 나은 행동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신의 관점에서 인간세상을 볼 때 전쟁과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완벽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행위들이 최선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신이 그런 행위들을 보았을 때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이가 큰 잘못을 하면 따뜻하게 감싸주고 사랑을 베풀어서 안아줄 수는 있지만 부모는 아이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해하는 것과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빛의 존재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의 지성체라면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 알고는 있을 겁니다.

임사체험시 그 존재는 영혼들의 대부분의 선택들은 쉽게 평가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편이지만 중요한 선택에 대해서는 가끔 설득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전생에서 당했던 일을 현생에서 보복을 한다면 당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하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모든 사건들의 인과관계와 영혼들의 의식수준을 다 알고 있는 신의 관점에서는 의식수준이 평범한 영혼들이 서로 카르마를 주고받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일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신이라면 복수보다는 사랑과 자비로 용서를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 인과관계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신이 본다면 마음속에 사랑이 부족하다거나 화가 쌓이다보니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괴롭히면서 쾌락을 느끼는 영혼들은 무지로 인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신성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어둠의 늪으로 빠뜨리고 헤어나질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보일 겁니다.

임사체험자들이 경험하는 차원은 대부분 상당한 고차원이기 때문에 신의 관점에 근접해서 물질계의 모든 상황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상태를 동시에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모든 행위의 원인들과 의도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면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모든 행위들의 선택이 완벽한가하는 문제는 역시 또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모든 행위들마저 완벽하다면 어떠한 선택이든 좋고 나쁨이 없다는 것이고 이건 세상의 모든 전쟁과 범죄가 합리화된다는 것과 같으므로 이치에 맞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좋고 나쁨이 없고 더 나은 선택에 대한 방향성마저 없다면 ‘성장’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어지게 되므로 윤회의 의미 또한 없어지게 됩니다.

어떤 임사체험을 보면 빛의 존재가 어떤 나쁜 남자가 아이의 머리를 잡고 내동댕이치는 장면을 보고 ‘정말 싫구나’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신이라고 해서 감정 없는 인공지능이 아니고 신도 감정이 있고 좋고 싫은 게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가해자마저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은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가졌기 때문에 살인자나 범죄자들까지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악행까지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이해하는 것과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완벽하게 보인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를 보면 유토피아와 같이 영적으로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하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물질논리와 경쟁이 우선시 되다보니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사회생활을 못한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많고 불평등, 불합리, 불공정, 비리, 황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등이 팽배해 있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세상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의식수준이 높은 대부분의 영혼들은 돈과 권력에 별로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는 건 낮은 의식수준을 가진 영혼들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구조를 만들어가고 돈과 권력을 남용하고 휘두르다 보면 사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아도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성적이나 경력, 능력 등을 보는 경우는 많아도 도덕성이나 의식수준 같은 것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채용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다 보면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의식수준이 높은 영혼들이 관심이 없는 일들도 누군가는 해야 사회가 돌아가게 될 겁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이 부분을 매우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영혼들은 물질계로 육화해서 자신에 맞는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그저 하고 있는 것이고 수많은 인연과 사건들을 만들어가면서 체험의 장을 만들어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는 ‘완벽하다’의 또 다른 관점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전체적인 시점에서 보면 모든 사건들이 완벽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인데요.

우리는 현재밖에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시간대를 동시에 볼 수가 없지만 차원이 높아지면 시간을 하나의 평면으로 인식해서 전체를 한 번에 볼 수가 있습니다.

임사체험자들의 경험을 보면 모든 사건들이 그물처럼 시간대별로 연결되어 펼쳐져 있는 평행우주들을 보았다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의 우주만 놓고 보면 모든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건들은 인과관계에 의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것이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전체를 보면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사건으로 보일수도 있을 겁니다.

참혹한 전쟁의 참사나 비극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빠져서는 안 될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부분도 저는 이런 개념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보면 결과론적인 관점일 수가 있습니다.

모든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상황이면 모든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고 필연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미래라는 것은 영혼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가지는 평행우주 전체를 한 번에 본다면 모든 일들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에 따라 우주가 조금씩 바뀌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시간이 옆으로 간다는 표현도 이런 부분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느낄 수가 없지만 고차원에서는 영혼들의 선택에 의해 우주가 가지를 치듯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는 장면을 보면 시간이 옆으로 간다고 느껴질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쟁이나 비극이 더 많은 우주가 선택될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이 별로 일어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우주가 선택되어 질수도 있을 겁니다.

우주가 어떠한 경로로 흘러가든 그 모든 시간대와 경우의 수를 한눈에 보면 질서정연하고 인과관계가 완벽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어떠한 경로가 영적진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더 효율적이고 최선의 선택인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완벽하게 보인다는 개념과 영혼들의 선택과 행위가 최선인가는 다르다는 문제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이 환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성장하게 되면 지구와 같은 낮은 계의 체험 없이 영계에서도 충분히 진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야생동물들의 영역싸움이 진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듯이 의식수준이 낮은 영혼들끼리 함께 살면서 성장하려면 전쟁이나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전혀 이상해보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진화과정에서 꼭 필요한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아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영혼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 낮은 수준의 물질체험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은 영혼들에게는 무의미한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최면 영상을 보다가 어떤 수호천사가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요.

자신들의 눈에는 그런 비극적인 일들이 같은 형제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형제나 친구사이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 성장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삶이고 불공평해보여도 전생을 포함한 모든 삶들을 전체적인 시점에서 본다면 카르마적으로 공평한 삶 일수도 있고 성장을 위해 자신이 계획한 삶이라면 아무리 불행해보여도 전혀 잘못되었다고 보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지적인 시점의 매우 큰 틀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자유의지가 많이 허용되는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면 모든 일들이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일들마저도 완벽하게 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모든 참사나 비극도 시나리오나 각본처럼 보인다는 표현도 나오는데 제가 볼 때 이건 모든 시간대를 한 번에 보게 되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 누가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발전해온 역사를 보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잘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신적인 존재라면 의식수준이 매우 높은 지성체일 것이고 영혼들의 성장에 있어서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사에 관여해서 그러한 시나리오를 의도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모든 시나리오가 가능한 우주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모든 선택들은 영혼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악역이 필요해서 어떤 영혼이 수천 명을 학살하는 악행을 계획하고 태어난다면 그 영혼은 엄청난 카르마를 감당해야합니다.

결국 시나리오나 각본이라는 것은 인위적인 것은 아니고 모든 영혼들의 선택들이 얽히고 얽혀서 만들어지는 결과들을 모든 시간대를 한 번에 인식했을 때 그렇게 보일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렇게 보인다’는 것과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모든 영혼들은 소중하고 모두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표현도 가끔 나오는데 모든 영혼들은 본래 하나이고 같은 뿌리에서 나온 존재들이기 때문에 평등하고 소중한 존재들이 맞기는 하지만 모든 영혼들의 악행들마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영혼들은 의식수준이 낮고 전생의 습을 버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환생할 때마다 잘못된 선택을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계속 그러한 삶을 살게 되면 카르마적인 부분들도 문제가 되지만 그 영혼은 더 이상 진보할 수가 없습니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 태어날 운명을 가진 영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성군이 되느냐 폭군이 되느냐는 그 영혼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사체험자들이 우리는 이미 깨달은 존재이고 있는 그대로 완전한 존재라는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혼은 육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항상 신성을 가지고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면서 본래의 상태를 느낀다는 것이지 완전하다고 해서 결함이 없고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신성을 회복한다는 것도 영혼에게 없던 신성을 새롭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본래 모든 영혼이 가지고 있던 신성함을 기억해내고 실천을 통해 확장하면서 성장해가는 과정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임사체험을 보면 빛의 존재가 ‘배우고 성장하라’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모든 영혼들이 완전하고 배울 것이 없다면 영혼마다 진동수가 다른 이유도 설명이 안 되고 영혼의 단계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겠지요.

다만 우리는 부족한 부분도 있고 지금 배우는 과정에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 좀 더 높은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고 불멸하는 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이미 완전한 존재이면서 더 완전함을 추구해가는 존재라는 표현이 어찌 보면 맞을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임사체험의 ‘완벽하다’라는 개념을 나름대로 적어보았는데요.

혹시 저같이 임사체험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0년도에 실제로 일어났었던 ‘브리저 워커’라는 아이에 관한 일화인데요.

4살짜리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몸으로 막아서며 맹견과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게 된 이야기인데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브리저 워커가 퇴원을 한 후 이모가 SNS에 글을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왜 개과 동생사이에 뛰어들었냐고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그게 나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If someone had to die I thought it should be me”)

 

개가 달려드는 그 긴박하고 짧은 순간에 6살짜리 꼬마가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건 제가 볼 때 저 아이는 평범한 영혼이 아닙니다.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속에 사랑, 연민, 희생, 용기 등의 높은 진동수의 의식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마음이 크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두려움이 밀려오는 그 순간에 누군가를 위해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의식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저런 생각과 행동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성을 가진 영혼이 있기 때문인데요.

더군다나 아직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도 못한 꼬마 아이가 저런 성숙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세월동안 윤회를 거듭하면서 의식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영혼이 마음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높은 수준의 판단은 영혼이 하는 것입니다.

에고는 생존본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크게 작용하지만 본능을 역행해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에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혼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에고를 통제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이 저 정도의 의식수준을 가지려면 생각보다 많은 윤회가 필요할겁니다.

60평생을 살아도 의식수준이 그 자리에 맴도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의식의 성장속도는 상당히 더딘데 태어나자마자 뇌가 달라서 저런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고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환갑이 넘어도 아이보다 못한 의식수준을 가진 사람들도 많고 저 아이처럼 나이는 어리지만 웬만한 어른들보다 더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영혼의 의식수준이 중요한 것이지 육체나이라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영성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가족이지만 남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생긴 흉터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았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브리저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1살짜리 저먼 셰퍼드 잡종을 도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견주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 되었다고 합니다.

동물의 의식수준을 이해하기 때문에 용서를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생명존중의 마음 또한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런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고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혼이 있고 영혼 속에는 신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 속에 있는 신성이 그러한 행위와 의도에 대해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쪼록 건강하게 잘 자라줬으면 좋겠네요^^

꿈에서 돌아가신 분을 보았다는 어떤 분의 글을 보고 어떻게 꿈을 이해해야하고 영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도움을 주기 위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미 꿈에서 먼저 가신 분들과 소통을 하고 있음에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혹시 비슷한 꿈을 꾸신 분들도 이 글을 보고 어떠한 원리와 방식으로 꿈에서 돌아가신 분의 영혼과 소통이 이루어지는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그 분의 꿈을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낮에 잠깐 누워서 쪽잠을 자는 사이에 꿈을 꿨는데 누가 같이 게임을 하자고 하길래 싫다고 말하고 어떤 평범해 보이는 큰 절에 들어가 자려고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굳어가는 느낌이 들더니 손이 올라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몸이 붕하고 공중에 떴다고 합니다.

그때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신의 몸은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벽 쪽에서 어떤 둥근 형태의 빛이 보였는데 햇빛이나 조명의 느낌이 아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매우 밝은 빛을 보았다고 하는데요.

방 구조상 절대 밖의 빛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였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니 그 빛은 사람의 형체처럼 보였는데 흐릿하게 상체의 모습만 보였고 그 순간 ‘저건 확실히 엄마야‘라고 혼자 몇 번이고 말할 정도로 엄마라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반가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위가 풀리면서 깨보니 그 빛은 사라져 버렸고 그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도저히 꿈이라고 믿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꿈은 잠을 자는 사이에 아스트랄계에서 의식이 활동하는 것을 말하는데 의식의 진동수에 따라 꿈의 차원도 수시로 변하게 됩니다.

보통 의식이 에고에 가까울수록 차원이 낮아지고 영혼에 가까울수록 차원이 높아지게 되는데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꾸는 꿈들은 대부분 에고에 더 가까운 낮은 의식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생활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꿈들을 많이 꾸게 됩니다.

그런데 평범한 꿈을 꾸다가 갑자기 차원이 높아지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보통 그런 꿈들의 경우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몸이 공중으로 뜨는 것인데요.

보통 하늘을 나는 꿈은 어느 정도 차원이 높은 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스트랄계에서는 차원이 높을수록 중력의 영향을 덜 받게 되어 있어서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차원이 낮을수록 중력이 커지기 때문에 걸어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고 차원이 높을수록 날수 있기도 하는데 몸이 가볍고 이동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이 들수록 높은 차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차원이 높으면 의식이 더 선명해지기 때문에 꿈에서 꿈이라고 자각을 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색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거나 밝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꿈에서는 몸이 약간 굳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손이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몸이 굳는 느낌은 보통 가위에 눌린다고도 표현하는데 유체가 몸에서 분리가 되면서 뇌를 통해 육체를 통제할 수가 없어서 생기는 느낌이고 손이 올라가는 느낌은 유체가 분리될 때 팔 부위부터 분리되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유체도 육체처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분리되는 순서나 분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꿈의 내용이 뭔가 앞뒤가 안 맞거나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다면 개꿈이라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꿈에서도 차원이 계속 변하게 됩니다.

앞뒤가 다 개꿈이라고 해도 중간에 어떤 특별한 장면들이 나온다면 그건 순간적으로 차원이 높아진 것이고 상상이 아닌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꿈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한 꿈에서도 처음에 절에서 게임을 한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부분이 좀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꿈 전체가 개꿈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몸이 붕하고 뜨는 것은 갑자기 차원이 높아졌다는 뜻인데 보통 차원이 높은 곳에서는 높은 진동수의 의식을 오래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 차원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땅에 떨어진다거나 잠에서 바로 깨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체이탈 상태에서도 차원이 높은 곳에 진입을 하려면 유체의 진동수가 그만큼 높아져야 하는데 유체의 진동수가 높으려면 영혼이 에고나 본능과 같이 낮은 진동수를 가지는 물질적인 것들과 분리가 잘 되어야 하고 에너지가 그만큼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명상 같은 것을 거의 해보지 않았거나 그런 경험이 별로 없는 일반인들은 대부분 얼마 머물지 못하고 차원이 바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는 시간이 매우 짧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험 중에 조금이라도 고차원을 오래 유지를 하려면 입으로 말을 하려고 한다거나 팔다리를 이용해서 움직이려고 하는 등 인간의 에고적인 습성을 자제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몸이 공중에 뜬 다음 아래를 보니 몸이 누워있었다고 하는 장면은 유체이탈을 해서 육체 몸이 자고 있는 것을 영혼이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빛이 들어올 만한 장소가 아니었는데 밝은 빛을 보았다는 것은 차원이 높아지면 빛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물질계에서 빛이라는 것은 태양이나 인위적인 조명에 의해 생성되고 사물에 의해 빛이 가려지면 그늘이 지게 되지만 아스트랄계에서는 모든 것이 스스로 빛을 내듯이 밝고 어둠이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 느낌을 지구 언어로 설명하기가 정말 힘든데요.

 

현실에서는 빛의 입자가 사물에 반사되어 눈의 망막에 상이 맺히면 사물의 형태와 밝기를 인식할 수 있지만 영혼은 사물이나 빛을 그냥 그 자체로 인식을 합니다.

밤에 유체이탈을 해도 밝은 세상을 볼 수가 있는데 그곳과 이곳은 빛이나 시간의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아스트랄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실의 물리법칙에 적용해서 이해하려고 한다거나 설명하는 것은 쉽지도 않지만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벽에서 빛의 형상을 보았다고 하였는데 이라는 것은 아스트랄계에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벽은 그냥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아스트랄계에서는 차원이동의 통로로 사용되기도 하고 현실에서 빔프로젝트를 이용해서 벽에 영상을 쏴서 보듯이 다른 차원의 영상을 벽에 투사시켜 보기도 합니다.

아스트랄계에서 차원이동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임사체험에 많이 나오는 것처럼 터널과 같은 웜홀로 시공간을 왜곡시켜 이동하기도 하고 벽을 통과해서 이동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이동하기도 하는데요.

 

벽에서 빛의 형상을 보았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게이트가 열려서 차원간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하늘에 웜홀과 같은 게이트가 열려서 다른 차원을 본다거나 차원이동을 하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 꿈에서는 어머니의 영혼과 차원의 주파수가 잘 맞아서 영안을 통해 입체영상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소통이 매우 잘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차원의 주파수가 잘 맞지 않거나 자신의 차원이 좀 낮으면 음성만 들리기도 하고 정지되어 있는 사진으로만 보이는 등 소통이 좀 불안정한 경우가 많지만 실시간 입체영상과 소리까지 들린다면 차원이 높은 편이고 그 영혼과 주파수가 매우 잘 맞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원의 개념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에너지의 밀도차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차원은 에너지의 막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높은 차원에서는 낮은 차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 더해져 4차원의 시공간이라고 했을 때 5차원과 6차원의 더 높은 차원이 존재한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5차원과 6차원의 존재들은 4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를 모두 볼 수가 있지만 우리는 높은 차원의 세상이나 존재들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5차원에 살고 있는 존재들은 4차원을 볼 수가 있지만 6차원은 볼 수가 없는 것인데요.

이 꿈을 꾼 분이 현실의 4차원에 살고 있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면 의식이 5차원에 진입하게 됩니다.

 

5차원에 있는 어떤 절에서 누워 있다가 갑자기 몸이 뜨면서 다시 6차원에 진입하게 되고 마침 6차원의 같은 공간에 와있는 어머니의 영혼을 만난 것인데요.

일반적인 꿈이 아닌 고차원 유체이탈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차원이 떨어져서 어머니가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영혼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도 차원이 떨어져서 어머니의 영혼이 안 보이는 것이지만 어머니의 영혼은 자식을 계속 더 보고 있었을 겁니다.

차원은 같은 공간에서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계속 그곳에 머물고 있지만 단지 자신의 차원이 낮아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영혼의 상태로 지상에서 함께 살던 사랑했던 가족을 보면 가슴 깊이 그리움이 많이 느껴지는데 대부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 답답하다거나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제대로 소통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을 알아본 가족이 신기하고 엄청 반가웠을 겁니다.

영혼은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클 뉴튼의 책에도 영혼의 색상에 대해 언급이 되어 있는데 영혼의 진동수에 따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지개 색깔들로 보이게 되는데 보통 한 색상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약간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보라색 계열로 갈수록 높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고 더 진보된 영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6차원의 꿈을 꾸는 상태였다면 5차원의 평범한 꿈으로 차원이 떨어져 더 머물다가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지만 그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4차원의 현실로 의식이 떨어져 꿈에서 깨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꿈의 경우에는 6차원에서 바로 4차원으로 의식이 떨어져 현실로 돌아온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에 꿈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생생하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상체가 흐릿하게 보인다는 표현도 나오는데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대부분 영혼들의 상체만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영혼들은 공중에 떠다니기 때문에 하체가 별로 의미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상체만 보이는 경우도 있고 얼굴만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차원이 매우 높아지면 그냥 빛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고 어떠한 형상이 없이 의식의 존재감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차원이 낮을수록 팔다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형상에 가까운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고 차원이 높아질수록 인간계와는 멀어진 유체나 형상이 없는 빛이나 의식의 윤곽만 느껴지게 됩니다.

이 꿈에서도 어머니의 영혼이 밝은 빛으로 보였다는 것은 차원이 어느 정도 높은 곳에서 만난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어떤 차원에서 소통이 이루어지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보이는 형상은 크게 의미가 없고 느낌이 중요합니다.

 

제가 여러 번 설명을 하였지만 차원이 높은 곳에서는 사람의 형체와 같은 물리적인 형상보다 느낌이나 직감이 훨씬 더 정확하기 때문에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느낌이 확신을 가진다면 거의 정확하다고 보면 되는데요.

영혼은 자신만의 고유의 진동수와 진동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겉모습은 물질화로 바꿀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진동에 관한 요소들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영혼이 다른 영혼을 느낌으로 인식한다는 것도 자신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영혼의 그러한 고유의 진동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이 꿈에서도 자신의 어머니임을 확신했다고 느꼈다는 건 완벽하게 어머니의 영혼을 감지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끔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긴가민가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그러면서 진짜 맞는 건지 다시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유체이탈을 해도 마찬가지지만 높은 차원에 있다가 다시 현실로 차원이 떨어지면 그 차원에서 본 것이 희미해지기도 하고 기억이 잘 안 나기도 합니다.

이건 의식의 진동수에 따른 인지능력과 기억방식이 차이가 나기 때문인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현실로 돌아와서 가물가물하다거나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 차원에서 확신이 들었다는 바로 그 느낌입니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뇌가 아니라 영혼이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차원에서 영혼상태로 있을 때는 강렬하게 느껴지지만 현실로 돌아오게 되면 에고 때문에 영혼의 느낌이 둔하게 느껴져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어떻다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실의식은 감각과 인지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차원의 경험을 다 이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임사체험의 경험들도 그렇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모든 걸 다 잊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 경험을 하는 순간의 확실했다는 강렬한 느낌은 신기하게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이 꿈의 경우는 지상에서 함께 살던 가족이 보고 싶어서 가족 주위를 계속 맴돌다가 우연히 소통이 잘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직접적인 대화까지는 하지 못하였지만 사후에도 서로의 존재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정말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꿈을 분석하고 설명해보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영성에서 다루어지는 분야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의식수준을 이해하고 의식성장을 통해 영혼의 진동수를 높이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상으로 육화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의식성장을 통해 차원상승을 하고자 함이기 때문에 진동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그러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제가 영적성장과 진동수에 관한 글을 많이 쓰는 이유도 모든 영혼들이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

 

물질계에서 현실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자신이 왜 그러한 삶을 선택했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영적인 삶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영계로 돌아가게 되면 기억을 되찾게 되고 자신이 육화하기로 했던 목적을 이해하게 되면서 많이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제 말이 크게 와 닿지 않으시겠지만 영계로 돌아가서 수많은 영혼들이 살고 있는 차원의 세계를 직접 보게 되면 왜 제가 입이 닳도록 의식성장과 차원상승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성을 공부하다 보면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들이나 영능력 등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공부이고 삶속에서 그러한 마음수련과 실천을 통해 의식성장을 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영혼의 진동수라는 것은 한생에서 쉽게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진동수가 존재하는데 자신이 영계에서 머무는 차원은 그러한 고유의 진동수에 의해 결정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영계는 진동수에 의해 분리된 계층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차원의 경계에는 어떠한 에너지의 형태로 이루어진 막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차원마다 허용되는 진동수가 있는데 그 허용범위에 미달되거나 초과하게 되면 차원이 하강하거나 상승하게 됩니다.

그래서 차원상승을 하려면 마음수양을 통해 자신이 영계에서 살던 차원의 진동수를 넘어서 바로 상위차원에서 허용되는 진동수에 도달해야하는데요.

그러한 진동수에 도달하게 되면 영혼의 에너지 준위가 높아지게 되고 차원을 분리하고 있는 에너지의 막을 뚫고 상위차원에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느끼기에 영혼이나 영계의 구조는 물리학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진동수를 높이는데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이 무엇일까를 먼저 한번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사람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다보니 빠른 성장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 좋은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는 생각이 들었고 높이는 방법보다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이기적이거나 부정적인 성향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동수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두 가지보다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성향들을 전혀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진동수를 높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이런 성향을 많이 가진 사람이 노력한다고 갑자기 이타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거 아무것도 안하고 그 성향들만 어느 정도 고치고 개선하기만 해도 그 영혼은 이번 생에서 크게 성공한 것이고 영계로 돌아가면 충분히 차원상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좀 자세하게 다루고자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관찰해본 결과 이 두 가지의 성향은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이기적인데 긍정적이거나 이타적인데 부정적인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마다 그러한 성향들이 조금씩 섞여 있는데 그 성향들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 한쪽만 개선해도 전체적으로 좋아지게 됩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스로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인데요.

이기적인 사람한테 자신의 성격이 어떤 편인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이기적인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조금은 알지만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부부싸움에 관해 상담을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야기를 들어보고 오랫동안 옆에서 관찰을 해보면 대부분 한쪽이 이기적인데 다른 한쪽이 참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은 정상인데 배우자가 계속 잔소리를 해대니 그 사람의 성격이 이상한 줄 알고 있고 자신이 성격이 좋아서 참고 살아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옆에서 보면 그 배우자가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많은데도 그 사람은 전혀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옆에서 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어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기적인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 알고는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 이기적인 사람을 보면 이기적이라고 말을 하고 욕을 하기도 하는데요.

제가 옆에서 보면 그 사람도 과거에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많은데도 남은 보더라도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도 옛날에 그런 행동 많이 한 적이 있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자신은 그런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정말 고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기적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고 남이 이기적인 행동을 했을 때 알아볼 수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걸 잘 이용해서 노력하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기적인 말과 행동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봤다면 그 순간에 과거에 자신도 혹시 그런 비슷한 말과 행동을 한 적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봅니다.

생각이 났다면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불쾌감을 과거에 그 사람도 똑같이 느꼈다고 상상을 한 번 해보면 아차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저도 어쩔 땐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요.

가끔은 그런 제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곤 합니다.

철없을 때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과 그냥 실수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영혼은 계속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되는데 마음가짐과 자기성찰의 깊이에 따라 발전하는 속도가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마이클 뉴턴의 책을 보면 지구에 3만년(500번 정도의 윤회)동안 환생을 했어도 아직 낮은 단계에 있는 영혼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합니다.

이건 우리 주변을 살펴보아도 죽을 때까지 인격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물긴 하지만 보통 영혼들에 비해 월등히 빠르게 발전하는 영혼들도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경험이 많다고 모두 진보된 영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와 자기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꼭 당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고 가해자가 한 말과 행동을 혹시 자신도 한 적이 없는지 생각을 해보아도 도움이 되는데요.

남을 거울삼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그런 식으로 조금씩 자기성찰을 하다보면 서서히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역지사지라고도 하는데 이기적인 사람은 공감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그 사람의 감정을 계속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런 방법으로 저의 단점들을 보완해나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당하는 입장에서의 삶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이유도 피해자의 느낌과 감정을 공감해서 이기적인 성향을 고치기 위해서인데요.

직접체험이 훨씬 효과적이긴 하겠지만 생각을 바꾸거나 간접체험이라도 남을 공감하려고 노력을 하다보면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충분히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면 그 영혼의 발전을 위해 최대한 중립적으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정중하게 단점들을 말을 해주기도 하는데요.

당장은 기분이 좀 언짢을 수도 있겠지만 멀리 보면 그 말이 무의식에 남아서 언젠가는 자신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조언 한마디나 좋은 글 하나에 한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환생 횟수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두 번 말해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계속 윤회하면서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자신은 불편한 거 잘 모르고 살겠지만 환생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고 안 좋은 카르마만 계속 쌓이게 되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자신도 힘들어지고 영적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노력으로 고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성향을 고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데요.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의식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경험을 별로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람을 보면 이상하다고 느끼겠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을 보면 생각만 바꾸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힘들게 사는지 안타깝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부정적인 상태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부정적인 사람은 고통이 고통인줄 모르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살다보면 가끔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말투나 사용하는 단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만 얼굴을 보면 어둠이 드리워져 있거나 생기도 부족하고 빛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는 온갖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으며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연명하듯이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부정적인 성향은 옆에서 계속 긍정적인 생각을 일으키도록 대화를 해주고 에너지를 공유해주면 이기적인 성향보다는 고치기가 좀 쉬운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부정적인 성향도 이기적인 성향과 마찬가지로 남을 잘 관찰하면 스스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가끔 살다보면 주변에 계속 웃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무슨 좋은 일이 있나? 왜 저렇게 매일 웃고 다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웃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의식의 상태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웃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항상 의식이 높은 진동수를 유지하고 있고 사소한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요.

그냥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귀엽고 웃음이 나오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만 봐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인데 부정적인 사람은 이 의식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변에 좀 유머러스하다거나 잘 웃는 사람이 있다면 유심히 한번 지켜보면 부정적인 성향을 극복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요.

그 사람이 하는 생각과 내가 하는 생각이 무엇이 다르고 왜 다른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해보면 되는데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될 겁니다.

자신은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는 상황인데 그 사람은 별로 짜증도 안내고 화가 나 있지 않다면 왜 화가 안 나는지 물어보면 그 이유를 설명해줄 텐데요.

원래 화를 잘 안내는 사람들도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고 그걸 극복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 뭐 저런 생각을 하는 거지?’라고 넘어가지 말고 나도 저런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이 좀 편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무슨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고 어떤 글을 많이 보고 어떤 영상을 자주 보는지를 확인해보면 자신과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와 잘 맞는 진동수를 가지는 것들에 편안함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무엇에 끌리고 관심을 가지는지 지켜보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부정적인 성향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에 만족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람이 계속 위만 보고 살게 되면 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게 되고 그런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자신이 부족해보이고 초라해지게 됩니다.

세상에는 경제적인 여건이나 주변 환경이 자신보다 못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자신은 그리 부족할 것도 없고 축복받은 사람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이정도면 나쁘지는 않아라는 생각까지만 하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지금 물질계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잘 것 없고 초라해 보이더라도 자신이 부러워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훨씬 영적으로 더 나은 존재일수도 있는 겁니다.

자신의 영혼이 영적으로 큰 도약을 하기 위해 힘든 삶을 계획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돈 많고 외모가 뛰어나고 편하게 사는 사람들을 전혀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요.

자신이 노력한 만큼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되면 나중에 그만큼의 보상을 받게 되고 오히려 영계에서는 그 사람들이 자신을 더 부러워하게 될 겁니다.

지금 현상계에서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 상당히 독특한 사람을 본적이 있는데요.

직장 동료였는데 사장실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싱글벙글 웃는 사람이었습니다.

좀 악덕사장이라고 정평이 나있어서 직원들이 사장실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인상을 쓰고 힘들어했었는데 유독 그 사람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그리 좋으냐며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그 사람이 지금 자신이 기분이 좋아 보이냐고 다시 되물어보더군요.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얼굴이라도 억지로 웃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ㅋㅋ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뭔가 깨달음 같은 것이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저도 한번 따라해 봤는데 진짜 효과가 있었습니다.

정신은 화가 나있지만 몸은 웃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이게 효과가 있는 이유는 정신이 몸보다 훨씬 앞서지만 정신이 몸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TV에서도 어떤 의사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도 실제로 엔돌핀이 몸에서 분비가 된다고 하더군요.

물론 진짜 웃는 것보다는 소량이겠지만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부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부르기도 하는데요.

저는 다른 생각으로 마음을 채워서 극복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생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재밌었거나 행복했던 추억들도 좋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떠올려도 좋고 자신이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도 좋습니다.

저는 항상 머릿속에 그런 일들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가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떠올리는데요.

처음에는 잘 되지 않지만 계속 노력하다보면 점점 숙달이 되면서 생각의 전환속도가 빨라지게 됩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계속 반복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냥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서 망각시키는 것이 제 경험상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하면 쉽지가 않은데 계속 시도하다보면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이 동시에 뒤섞이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긍정적인 생각이 마음에 채워지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편해지게 됩니다.

눈앞에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고통에 살고 있는데 자신의 마음은 천국에 가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논리적인 생각을 깊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학적이거나 논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을 하게 되면 마음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생각하고 집중하는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방법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나중에는 그러한 생각들을 그냥 바라보고 흘려보낼 수도 있게 되는데요.

안 좋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걸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건 마음공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쉽지가 않아서 인위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 숙달이 되고 나면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고 소멸하는지와 어떠한 원리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게 되는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은 영혼의 자리를 느낄 수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에고는 어떠한 상황에 대해 생각과 감정이 끊임없이 요동을 치지만 영혼은 어떠한 상황에서 동요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사체험자들이 인생회고를 할 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남 일처럼 태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영혼의 특징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무의식을 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혹자는 이 수행과정을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영화배우는 아무리 연기에 몰입을 하더라도 생각과 감정에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언제든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한걸음 물러나서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그 상황을 보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재해석 할 수도 있게 됩니다.

마음을 관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고통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에고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영혼이 주체가 되어 삶을 이끌어가고 창조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혼이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영혼의 특성을 물질계에 최대한 표현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자아실현은 영적성장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알 수 없는 느낌이나 기감으로 그 사람의 에너지를 잘 느끼는 편인데요.

부정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옆에 있으면 이유 없이 불편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있으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밀려오는 것 같아 엄청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불평을 하거나 남을 험담하는 말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릴지는 몰라도 그걸 듣고 있는 저로써는 정말 곤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오래하는 것을 피하는 편인데 대화를 꼭 해야 한다면 나중에 에너지를 정화시키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의식이 저진동의 상태를 유지하는 거 자체가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동수를 회복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옆에만 있어도 엄청 편안함을 느끼고 아무 이야기나 하더라도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요.

특히 긍정적이면서 의식수준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서 사랑, 평화, 기쁨, 자비, 지혜 등의 고진동의 에너지가 느껴지면서 힐링이 되는 느낌까지 받기도 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떤 때는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좋다가 또 어쩔 때는 그냥 짜증나거나 우울하기도 한 경험을 해보았을 겁니다.

저도 살면서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해보았는데 왜 그런 것인지 연구를 계속하다 보니 의식의 진동수와 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영혼과 뇌와 육체의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지상에서 살아가면서 그 의식들의 영역이 수시로 변하게 됩니다.

어쩔 땐 영혼을 잘 느끼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뇌를 더 잘 느끼는 상태가 되고 어쩔 때는 본능을 더 잘 느끼게 되는데요.

보통 잠을 자게 되면 영혼을 더 잘 느끼는 상태가 되는데 낮에 생활을 할 때도 그 의식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전체의식과 마음의 작용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래서 생활을 하면서 전체적인 의식의 진동수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영혼을 잘 느끼게 상태가 되면 진동수가 조금 올라가 있는 상태가 되고 뇌를 잘 느끼는 상태가 되면 진동수가 조금 떨어지게 됩니다.

뇌보다 영혼이 훨씬 높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영혼을 잘 느끼는 상태가 되기만 하더라도 진동수가 높아져서 긍정적인 상태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영혼 자체의 진동수를 높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전체적인 의식의 진동수를 약간 높게 유지하려는 노력만으로도 훨씬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이 날 때도 있고 화가 날만한 상황인데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을 겁니다.

분명히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음에도 감정상태가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겁니다.

단순히 성격이 다혈질이라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식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식의 진동수의 변화 때문에 그런 일들을 겪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의식의 진동수가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이해하게 되면 좀 더 마음 편히 살아가는데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유체이탈을 많이 하다 보니 영혼일 때의 마음상태와 현실에서 에고가 섞여있을 때의 마음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잘 이해하고 있는데 저의 생각과 감정이 에고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영혼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잘 인지하는 편이고 제 스스로 지금 어떠한 의식상태에 놓여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의 근원이 어디에서 나오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이나 어떠한 의식상태로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지도 어느 정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고에 가까운 의식상태를 가지고 생활을 하고 있는데 가끔 영혼을 더 잘 느끼는 상태가 되면 기분이 좋다거나 긍정적인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은 왜 그런지 모르고 있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면 왜 갑자기 의식상태가 변하게 되었고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저는 알 수가 있는데요.

 

자신에게 항상 솔직하고 진실 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과 속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에서 보면 그 사람의 영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데 에고는 딴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거나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허세가 심한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위주의 삶을 살고 있고 의식의 진동수가 좀 낮은 상태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슴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삶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머리로만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게 자신인 줄 알고 살아가게 되는데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제가 볼 때는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의식상태라는 것은 의식이 높은 진동수에 머문다는 것인데 뇌에만 의존하는 삶은 고진동의 의식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뇌보다 훨씬 높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영혼을 잘 느끼려면 명상이 가장 좋은데 명상을 해보신 분들은 대부분 그 순간만큼은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요.

명상이라는 것 자체가 뇌를 쉬게 하고 영혼을 잘 느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명상을 굳이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 상태를 잘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 제가 살면서 직접 체험하고 느껴본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번 써보고자 합니다.

 

우선 제 경험상 단시간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동수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음악은 저의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머리가 복잡하거나 스트레스가 생기면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인데 조용한 음악으로 마음을 힐링하기도 기순환을 촉진시켜 몸을 치유하기도 하고 의식의 진동수를 높이기도 합니다.

보통 음악을 들을 때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듣거나 가수 목소리만 듣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가끔 가수의 목소리보다 배경음악이나 악기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을 때가 있는데 평소에 듣지 못했던 악기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의식이 배경음악에 집중이 되면서 잡생각이 사라지게 됩니다.

 

음악은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에 호흡명상처럼 의식이 현재에 머무르게 되어 현존하는데 도움을 주고 좋은 음악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 효과까지 있어서 마음의 고통을 줄이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조용한 발라드나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편인데 가끔 듣다보면 몸에 정체되어 있는 기가 흐르고 온몸에 퍼지면서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몸이 치유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목소리는 100~150Hz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고 여성의 경우는 200~250Hz의 주파수를 가지는데 여성의 목소리는 남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2배 이상 높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여성의 목소리가 더 부드럽고 편안하고 높은 진동수의 느낌이 나서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하드락이라는 장르의 음악을 잠시 좋아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생각을 해보니 그 당시 직장생활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그런 류의 음악을 듣는 것을 즐겼었던 것 같습니다.

제 영혼은 원래 그런류의 음악은 좋아하지 않는데 에고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진동수가 많이 떨어지다 보니 그런 파장을 가지고 있는 음악들에 끌리고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지금은 그런 음악을 전혀 듣지도 않고 그 당시에 들었던 음악을 들어보면 뭔가 낮은 파장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기분이 좀 다운되는 느낌이 드는데 뭔가 제 영혼의 파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다가 갑자기 그런류의 음악에 관심이 간다면 자신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거나 의식의 진동수가 많이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저는 메탈음악은 정말 듣기가 힘들 정도로 거부감을 많이 느끼는데 뭔가 어둡고 어눌하고 파괴적인 낮은 파장의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태교음악으로 클래식을 많이 듣는 이유도 그렇고 정서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음악들은 확실히 높은 파장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포영화 같은 걸 보다보면 뭔가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데요.

가끔 보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자주 보는 것은 별로 좋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은 낮은 파장대를 가지고 있어서 진동수를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어린이TV나 교육방송을 볼 때가 있는데요.

확실히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들은 성인들이 볼 수 있는 것들보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편성되고 많이 정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귀엽고 밝은 느낌의 애니메이션도 그런 느낌이 드는데요.

신기하게도 계속 보고 있으면 상당히 편안하고 순수해진다는 느낌이 들면서 진동수가 상승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순수한 느낌은 높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고 영혼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에 의식을 에고에서 영혼으로 전환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예전에 정신적으로 좀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매일 어린이TV를 계속 틀어놓고 살았던 적이 있는데 회복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좀 불안하다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분들은 TV를 직접 보지 않아도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그리고 격투기 같은 과격한 스포츠를 자주 보는 것도 진동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은 낮은 진동수를 가지는데 그런 스포츠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확실히 그런 기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뉴스나 기사도 상당히 영향을 많이 주는데요.

우리는 그런 매체에 거의 매일 노출되어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좋은 내용보다 부정적인 내용이 상당히 많고 자극적인 내용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내용들을 자주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고 진동수가 떨어지게 되는데요.

뉴스를 보다보면 속으로 화가 나거나 욕이 나오기도 하고 악성댓글들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쌓이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부정적으로 변하게 되고 심하면 성격이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보는 분들이 많은데요.

아침에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는 뇌가 아직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상당히 깨끗하고 높은 진동수에 있는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 시간에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을 보게 되면 하루를 낮은 주파수로 시작을 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무의식에 남아서 하루 동안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지거나 우울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자주 듣는데요.

아침에 출근길에 뉴스를 듣는 것보다 차분한 음악을 듣는 습관을 들이면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가끔 주변을 보면 신문이나 뉴스를 하루도 안 빠지고 꼼꼼하게 챙겨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간혹 만날 때 마다 정치, 사회문제,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관심분야라고는 하지만 그런 것만 보다보면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충동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심한 경우는 밥을 먹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발산하면서 식사시간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유일하게 맘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식사시간과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인데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마음이 쉬지를 못해서 더 피곤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의식이 상당한 저진동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자신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이 계속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부정적인 면들도 많지만 재밌고 행복한 일들도 차고 넘칩니다.

관심사를 조금 밝은 쪽으로 바꾸는 것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주변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최면 영상을 가끔 보다보면 수호천사들도 뉴스를 많이 보지 말고 좋은 것 많이 보고 좋은 생각 많이 하라고 하더군요.

그런 영적존재들도 뉴스 같은 것에서 부정적인 기운들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알아야하기 때문에 안 볼 수는 없지만 너무 거기에 몰입하다보면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길수가 있기 때문에 저는 특별히 관심 있는 내용이 아니면 헤드라인만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음식에도 진동수가 존재하는데요.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은 채식위주의 식단이나 야채와 과일 등은 높은 진동수를 가지지만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음식이나 육류 등은 낮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고기보다는 찌개류나 채식을 좋아했었는데 인스턴트 식품들은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어서 잘 먹지 않았었는데요.

성인이 되어서 알고 보니 음식에도 고유의 주파수가 있고 에너지나 기운들이 있더군요.

보통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탁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소화가 잘 안되기도 하고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해서 먹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몸도 영혼처럼 고유의 진동수를 가지고 진동을 하는데 진동수가 낮은 음식을 자주 섭취하다보면 몸도 영향을 받아서 활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질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 살면서 그런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없으니 양을 줄이기만 해도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성에 관한 좋은 글을 보다보면 신기하게도 진동수가 서서히 올라갑니다.

글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글을 쓸 때도 그런 효과가 나타나더군요.

사진이나 영상에도 진동수가 있듯이 글에도 진동수가 존재하는데요.

영성에 관한 글이 아니더라도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는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진동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단어나 문장에도 진동수가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떤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어떤 문장을 구사하는지만 봐도 그 사람의 의식상태와 의식수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고운 말, 예쁜 말, 귀여운 말, 존댓말 등은 높은 진동수를 가지는데 반해 저급한 단어, , 무시하는 말, 험담, 비난, 공격적인 말투 등은 낮은 진동수를 가집니다.

 

요즘 반말, 욕설, 비난 등이 난무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가끔 있는데요.

그런 사이트에서 글을 보거나 활동을 하는 게 편하고 재미있다면 평소 자신의 의식의 진동수는 그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고 보시면 되는데 자신의 진동수가 그 수준보다 높으면 거부감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가고 싶지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어떠한 단어나 문장을 보거나 사용하는 것이 이유 없이 불편하다고 느껴진다면 그러한 단어나 문장이 자신의 진동수보다 낮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고 부정적인 단어들은 자제를 하는 것이 진동수를 높이는데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돈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진동수를 떨어트리는데요.

돈이라는 생각은 먹고 사는 생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에고가 많이 하게 됩니다.

제가 유체이탈을 하면서 돈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그 상태에서는 그런 생각 자체가 들지가 않는데요.

사람, 동물, 사물, 건물, 자동차같이 사람이 하는 생각들은 다 하는데 희한하게 돈 생각은 전혀 나지가 않습니다.

크고 예쁜 집이네라거나 작고 아담한 집이네같은 생각들은 하지만 비싼 집이네라든가 전세가 얼마일까?’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다른 영혼들은 모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그렇더군요.

그래서 돈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의식이 에고에 집중되기 때문에 진동수가 떨어지게 되는데 회계나 경리나 금융업계에 일을 하시는 분들은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돈 생각을 줄이고 취미생활을 갖는다거나 명상을 한다거나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은 부정적인 기운들이 계속 누적이 될 수밖에 없는데요.

세상에는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때문에 의식수준이 낮고 부정적인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면 어둡고 부정적인 기운들에 많이 노출이 되어 누적이 되다보면 진동수가 많이 떨어지게 되고 기순환에 문제가 생겨 몸도 안 좋아지게 됩니다.

서빙이나 전화상담이나 기타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은 주기적으로 나쁜 기운들을 정화시켜주지 않으면 일을 오래 지속할 수도 없고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꼭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이용해서 부정적인 기운들을 정화시키고 진동수를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진동수가 올라가게 되는데요.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영혼이 그 일에 집중을 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진동수가 높아지게 되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특히 자신만의 창의적인 일을 하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데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를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남들이 볼 때는 좀 괴짜 같아보여도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지수는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남들 따라 산다거나 눈치 보며 사는 사람들은 큰 행복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진동수가 높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규칙적인 운동도 정말 중요한데요.

특히 땀이 약간 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을 해주면 좋은데 우리의 의식은 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몸의 기혈을 잘 순환시켜주면 컨디션도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서 진동수가 높아지게 됩니다.

특히 자연에서 산책을 한다거나 운동을 하면 훨씬 효과가 좋은데요.

자연에는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좋은 에너지들로 가득 차있기도 하지만 산새소리나 물소리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주파수를 가진 소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몸에 좋은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 오염되지 않는 맑은 산소를 마시며 조용한 곳에서 쉬는 것만으로도 진동수를 높일 수 있습니다.

 

우울증 같은 증상도 의식이 상당한 저진동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게 되면 생기게 되는데 진동수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가끔씩 해주면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고 치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악몽이나 안 좋은 꿈을 자주 꾸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데요.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힘든 일을 겪다보면 진동수가 떨어지게 되는데 무의식이 저진동 상태에 계속 있게 되면 꿈의 차원이 낮아져서 꿈이 어두워지거나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진동수를 높여주면 자연스럽게 꿈의 차원이 높아져서 꿈이 밝아지기도 하고 행복한 꿈을 꾸기도 하는데 차원이 높기 때문에 먼저 가신 분들과도 소통이 더 잘되기도 합니다.

 

제가 오래 동안 영혼의 진동수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를 많이 하였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보다보면 사람마다 엄청 다양하고 수많은 감정들과 에너지들을 느낄 수가 있는데 사랑이라는 에너지만큼 편안하고 좋은 에너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순수한 상태에서 그 에너지를 느껴보면 가끔 정말 황홀할 정도로 좋은 느낌이 들게 되는데요.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원 중에서 가장 높은 차원이 존재한다면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장 강력하고 높은 진동수의 에너지를 가지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합니다.

영성계나 종교계에서도 사랑이라는 말이 안 나오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랑은 정말 중요한 것인데요.

임사체험시에 빛의 존재가 항상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는가?’

신적인 존재나 고차원 영혼들마다 이 말을 하지 않는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로 입이 닳도록 그 말을 하는걸 알 수 있는데요.

상위차원의 존재들이 우리 인간의 삶을 바라볼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랑이 전부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랑은 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 단어 속에는 정말로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잘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비, 연민, 배려, 인내, 지혜, 감사, 존중, 양보, 예의, 친절, 따뜻함, 겸손, 공감, 평등, 평화, 희생, 봉사, 책임감, 조화 등 수많은 덕목들을 갖추어야 하는데 우리가 계속 윤회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것들을 조화롭게 배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이거나 부정적인 성향을 고친다는 것도 결국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기반을 닦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마음은 점점 사랑의 대상이 넓어지면서 조건 없는 사랑으로 진화되어 가는데 상당한 고차원 영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랑 중에서도 무조건적인 사랑은 상당히 높은 진동수와 고에너지를 가지는데 대부분의 임사체험자들이 빛의 존재를 만났을 때 엄청난 무조건적인 사랑의 에너지에 압도당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랑은 어떠한 조건들을 가집니다.

내가 이렇게 해주면 그 사람은 이렇게 반응해주고 이렇게 보답을 해야 한다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사랑을 전혀 베풀려고 하지 않기도 하는데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그러한 조건들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부모나 자식 간의 사랑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남에게 그렇게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면 영적으로 상당히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분별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삶을 산다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저도 실천하기 정말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TV에서 어떤 고산 유목민에 대한 다큐를 본적이 있는데 그 유목민들은 좀 특이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파생된 종교처럼 보였는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최소 한번은 전생에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의 어머니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대하는 수행을 하면서 사는 부족이었는데 마음가짐 자체는 영성적으로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의 어떤 아는 사람 중에 좀 특이한 분이 있는데요.

항상 자신이 월급을 받으면 20퍼센트를 기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종교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종교 같은 건 없다고 해서 그러면 집이 잘 사냐고 물어보니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럼 왜 기부를 하느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말을 듣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기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평범한 의식수준으로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기부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그만인데 안하면 불편하다는 것은 의식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가 있는데요.

 

영성에서는 남을 도와주려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물질이든 마음이든 남을 도와주었다는 행위나 결과보다 스스로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도와주는 것은 별로 의미 없기 때문에 이타심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영혼의 진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거나 도와주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거나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영혼들만 모여서 사는 차원이 있을 겁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남을 도와주어야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영혼들이 있을 겁니다.

저도 상상이 잘 되지는 않지만 진짜 천국이라고 한다면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하네요.

지구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으면 이사를 가면 되지만 영계에서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남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요.

사랑의 가장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미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지르면 손가락질을 하거나 욕을 하기도 하고 악성댓글을 달기도 하고 마녀 사냥하듯 집단적으로 매도하기도 합니다.

이건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행위들인데 그 사람이 죄를 지었어도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그러한 분노를 표출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아닌 죄만 미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을 그냥 방관하는 것은 아니고 충고를 해준다거나 바른 길을 가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 얄미워서 꼴도 보기 싫다거나 과격한 언행으로 모욕감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요.

어떤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미운감정이 생기게 되는데 그 사람의 영혼까지는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혼의 생각과 의식수준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라는 관점으로 접근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가족끼리 축제에 놀러갔다가 어떤 글귀가 새겨진 장식용 나무판을 사온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에는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미움을...“이라는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엄청 긴 것 같지만 영혼의 입장에서는 찰라로 느껴질 만큼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사후에 인생회고를 해보면 사랑만 하고 살아도 모자랄 시간에 헐뜯고 싸우고 서로를 미워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시간낭비이고 허망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사별하신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먼저 가신 분이 보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살아생전에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닐까 합니다.

사후에 영혼의 상태에서는 그런 후회감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만큼은 그런 후회를 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양보하고 인내하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물질과 비물질은 존재하는 형태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는 모두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생각, 마음, 사물, , , , 소리, 사진, 영상 등 우주의 모든 만물은 진동하는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우리의 영혼과 몸과 마음이 생활 속에서 어떠한 것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알게 되면서 좀 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영적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동수를 높이려는 노력은 사후에 차원상승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상에서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진동수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을 해보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겁니다.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제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서술하고자 합니다.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필요한 부분들만 참고하여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선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건 의식을 가진 모든 존재에 대한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몇날 몇시 몇분에 자신이 무엇을 할지 이미 모든 게 정해져 있다면 그 순간에 자신이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생각마저도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말과 같으므로 우주는 결정론에 의해 흘러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와 자유의지의 상호관계는 양자물리학에서도 심오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이기도 한데요.

고전역학과 양자물리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정론비결정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정론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는 이론이고 비결정론은 그 반대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우주의 모든 원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는 엄청난 슈퍼컴퓨터가 있다면 우주의 모든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반면 양자물리학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기 때문에 모든 일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요.

바로 이 확률이란 것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물리학을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방법을 모르거나 더 발전된 측정기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반박을 했지만 측정문제는 단순히 방법론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물리학계에서는 이미 원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나있는 상태입니다.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려면 관측을 해야 하는데 관측을 한다는 것은 그 물체에 빛을 쏘아 반사된 빛을 통해 사물의 형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자처럼 아주 작은 물체에 빛을 쏘게 되면 전자가 빛을 구성하는 광자에 의해 튕겨져 위치가 변하게 됩니다.

전자가 너무 작기 때문에 우리가 빛을 이용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관찰하려고 하면 광자에 의해 영향을 받아 측정이 부정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시세계에서는 전자를 관찰하려는 순간 그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어디에 있을지 확률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단지 확률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양자물리학에서도 전자가 존재할 확률을 전자구름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시대에는 양자물리학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최첨단 과학기술과 장비가 있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물질계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어떠한 사건이 원인이 되어 미래에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인과율혹은 인과관계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에 합격을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시험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건 원인과 결과가 명확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나에게 해코지를 했다면 이런 일은 원인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 자신이 괴롭혔던 아이일수도 있고 전생과 사이가 안 좋았던 인연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그냥 시비를 거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인데요.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어떠한 일을 새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임사체험을 보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삶을 계획할 때 역경과 고난을 일부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자료들을 보더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면서 또 다른 성장을 하기도 하고 상황이나 의식성장의 수준에 따라 안내자가 바뀌기도 하고 삶의 계획이 일부 변경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 또한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살면서 그냥 생기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필연이라고 생각하기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고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을 하기에도 신기하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모든 일들이 필연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이며 모든 일들이 우연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인과관계 때문입니다.

필연은 운명과 깊은 관계가 있고 우연은 자유의지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주명리학에서도 통계학적인 인간의 사주팔자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고 임사체험에서도 계획한 삶에 따르는 운명이 있다고 많이 나와 있는데 운명의 큰 흐름은 있지만 그 속에는 자유의지에 의해 삶을 창조할 수 있다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사람의 운명과 자유의지가 공존하듯이 우주에는 우연과 필연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연으로 보이는 일이 필연일수도 있고 필연으로 보이는 일들이 우연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에게 어떤 원인을 알 수 없는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전생최면을 통해 그 원인을 찾는 경우도 있고 뭔가 전생이나 영적인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그냥 현생에서 살다가 생기는 일들도 많습니다.

아니타 무르자니는 임사체험을 통해 자신이 병에 걸린 이유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극복하기 위해 설정한 고난도 아니고 그냥 두려움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자신이 아프거나 힘든 일을 겪을 때면 혹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인과응보를 받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성장을 위해 계획했던 일일수도 있고 살면서 그냥 우연히 생기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한 원인이 있거나 영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자책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요.

이건 임사체험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익사할 뻔 하다가 겪은 임사체험 중에 자신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살아야 할 운명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주변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던 사례가 있는데요.

그러니까 더 살아야할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자신은 아마 살지 못했을 거라는 것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살아야할 운명이 아니라면 노력만으로는 살아나기 힘들 수도 있다고 예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임사체험 중에는 빛의 존재가 나타나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 때 그 사람이 계속 돌아가기 싫어하면 다급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아무래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게 되면 회생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은 더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뜻이고 빨리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이유는 돌아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빛의 존재 같은 고차원 영혼들도 그 사람의 생사에 대한 운명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할 필요도 없고 다급해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 역시 자유의지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운명이란 것은 사람의 자유의지와 노력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가 있는데 미래라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기가 힘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확률적인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임사체험을 보면 빛의 존재가 생사여부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기위해 그 사람에 대한 몇 가지의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행우주라고도 하는데 고차원 영혼은 어느 정도 확률적으로 높은 미래를 예측해서 다른 영혼에게 영상으로 투사를 해주는 것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양자물리학에서도 전자의 위치는 측정이 불가능하지만 확률적으로 예측이 가능한데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 의해 특정한 위치에 존재하는 입자의 확률 밀도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여러 가지 확률적인 미래를 동시에 보는 것도 물리학적으로 보면 뭔가 이와 비슷한 원리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아마도 확률이 가장 높은 미래라는 것은 자신이 가장 무난하게 살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이고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낮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노력으로 그 확률을 높여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확률이 낮은 미래일수록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예지몽으로 본 것이 가끔 현실로 나타나는 이유는 가장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우연히 꿈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꿈에서 본 것이 모두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상상으로 창조한 것을 보기도 하지만 낮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용하다는 점집에 가도 과거의 일을 잘 맞추는 경우는 많지만 미래를 잘 맞추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요.

과거는 어떤 식으로든 우주에 그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에 느낌으로 알아채든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서 영상으로 보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흔적을 추적해보면 알 수 있지만 미래는 자유의지라는 것 때문에 정해져 있지 않아서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끔 예지몽에서 본 것이 현실화되거나 무당들이 미래를 맞추는 경우를 보고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엔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우연히 보았거나 어떤 영적존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이 꼭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맞추는 경우보다 못 맞추는 경우가 훨씬 많은 이유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주를 설계할 만큼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상당한 지적능력과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정도의 지성과 높은 의식수준을 가진 존재라면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신이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이유도 자유의지를 침범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도 없고 모든 미래가 정해져있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영적성장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도 제 각각 성격이 다르듯이 수호천사들도 성향이 모두 다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수호천사들은 우리가 필요하면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먼저 관여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영혼을 인도하거나 안내하는 역할을 할 정도의 영적존재라면 사랑, 존중, 배려, 인내심등의 기본적인 소양들은 갖추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영혼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배려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상위자아나 수호천사들도 물질체험을 하고 있는 영혼의 자유의지에는 함부로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성장을 위해 삶을 인도하고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는 모두 영혼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진동수를 높여 차원상승을 하는 것도 주변에서 환경을 제공해줄 수는 있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운명적으로 어떠한 힘든 일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고 전생이나 과거의 일에 의한 인과관계에 의해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가고 극복하는 가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항상 자신의 삶은 자신이 창조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순간에도 절대 운명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바꾸고 개선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지구생활이 좀 힘들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아이가 정말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사례를 잘 설명해놓은 영상이 있어서 가져와봤습니다.

이 영상을 만드신 분이 차분하기도 하고 목소리도 좋아서 정말 재밌고 편하게 보았는데요.

 

 

 

이 영상에 보면 구름위에 살고 있었는데 천사가 자신을 지구에 데려다주었다는 사례가 나오는데요.

제가 비슷한 장면을 실제로 꿈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지구 상공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옆을 보니 천사가 3살 정도 되 보이는 아기 영혼을 붙잡고 하늘에서 날고 있더군요.

천사들은 대부분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그 천사도 크고 하얀 날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보면 몸을 다 덮을 만큼 큰 날개였는데 날개에 부딪히는 바람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근접해서 봤었습니다.

 

천사는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잡고 있었고 아기영혼은 지구를 바라보면서 재미있고 신기한 듯 해맑게 웃고 있더군요.

저는 처음에 그 장면을 보고 깨어났을 때 그 아이가 꿈을 꾸는 동안 아스트랄계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 영상을 보고 나니 영계에서 지구로 태어나기 위해 들어오고 있는 영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신기한 꿈이었는데 이 영상을 보니 다시금 기억이 나네요.

이 영상에서는 하느님나라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자신을 지구로 데려다준 을 은색빛깔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기도 하는데요.

아마 제 생각에는 정말 어떠한 신적인 존재일수도 있겠지만 영계에서 차원을 관리하거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고도로 진화된 영적존재나 고차원 영혼들을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의미보다 그러한 개념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네요.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부모가 원할 때 아이를 가지게 되고 태어나는 아이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의 몸은 엄마 배속에서 만들어지게 되지만 아이의 영혼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게 되는데 이런 내용은 영성자료를 보면 정말 많이 나옵니다.

임신을 했을 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꿈에 나와서 엄마와 대화를 하거나 태어날 날짜를 미리 알려주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엄마 배속에 영혼으로 있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계에서 상위자아로 존재할 때 자신이 태어날 환경과 부모를 미리 관찰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꿈에서 부모님의 젊었을 때 모습을 공중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태어나기 전에 저의 상위자아가 미리 보러간 것을 기억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사한 경험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지 못하다거나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 태어나게 한 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하는 부모들도 있는데요.

영계에서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경험에 가장 적합한 몸을 선택하게 되고 자라나는 환경이나 부모도 선택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영혼마다 선택의 폭이 다른데 전생에서 해결해야 할 카르마에 얽혀있는 관계도 있고 그냥 엄마가 좋아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운명이나 환경에 대한 큰 틀은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동의를 한 상태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이를 학대한다거나 사랑을 많이 주지 못하고 방치한다거나 하는 마음적인 부분들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잘 보살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어떤 부모들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해서 집착을 과하게 한다거나 자식의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키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어 대리만족하려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고 영계에서는 존중되어야 하는 모두 평등한 존재입니다.

뇌가 제대로 발달되지 못하고 철이 없다보니 애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영혼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보다 의식수준이 높은 영혼이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면 신체나이는 어릴지라도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두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한다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아이도 힘들어하고 부모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많이 살아보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뭘 아냐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생에서 부모보다 수천 년을 더 살아본 영혼일 수도 있는 겁니다.

영성적으로 보면 육체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배울 점이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TV에서 어떤 다큐를 본적이 있었는데 아이 문제 때문에 부모가 자주 다투는 집안이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오로지 공부로 성공하게 하려고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오면 쉬지도 못하게 공부만 시키려고 하고 아빠는 아이와 함께 놀고 시간을 좀 보내고 싶은데 와이프가 못하게 하니 가끔 학원에서 아이를 몰래 빼내 같이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더군요. ㅋㅋ

집안 사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뭐라 판단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애 아빠의 모습이 좀 안타깝게 보였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자신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이 좋아하니까 부모님을 위해서 계속 참고 하는 경우도 본적이 있고요.

고액과외나 학원 다니는 것을 쉬지도 못하게 너무 많이 시키다 보니 아이가 견디질 못하고 가출을 하거나 엇나가서 잘못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요즘 아이를 그런 식으로 키우려는 학부모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물론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기반을 잡으려면 어느 정도 공부도 시켜야하고 놀게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 않으면 자신의 아이가 뒤쳐질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하고 사회적인 구조가 이렇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그런 식으로 키우는 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계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잡고 넉넉한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게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아이의 영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정말 공부를 좋아하고 성공하기를 원하면 상관없겠지만 아이의 영혼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게 있고 좋아하는 것도 있고 행복도 느끼고 싶어 하고 태어난 목적이 있습니다.

 

영성이라는 것은 크게 보면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본성을 확장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이를 너무 기계적으로 키우게 되면 영적성장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이타심이 많은 아이한테 경쟁만 시키고 너무 성공을 강요하면 아이는 답답해합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공부시간 좀 줄여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수도 있고 직업을 선택할 때 사회복지 분야로 가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돈 좀 적게 벌어도 아이의 행복과 영적성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하고 현실적인 부분들과도 잘 조율을 하면서 아이가 정신적인 성장을 하는데 중점을 두고 밝고 긍정적으로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부모와 환경을 선택할지 고민을 해 본적이 있는데요.

저는 아마 엄마의 의식수준과 성격이 고려해야 할 부분 중 가장 1순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상에서도 어떤 아이는 엄마의 성격이 너무 맘에 들어서 엄마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도 자신은 그 엄마한테 갔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아무래도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이의 양육에 직접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엄마의 성격을 더 고려하는 영혼들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가정형편은 조금 가난하더라도 너무 가난하지만 않으면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부모가 나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성공보다는 자식의 꿈과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스스로 상상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영혼의 상태로 지내면서 환생 대기표를 끊어놓고 놀고 있는데 카톡으로 태어날 때가 되었으니 와서 부모와 환경을 선택하라는 문자가 하나 오는 겁니다.

그러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을 해보면 원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다 필요 없고 재벌 집안에만 태어나게 해 달라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그건 에고의 생각이니 이런 분들은 가슴깊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에고가 볼 때는 불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영혼이 의도했던 것 일수도 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자신이 원하는 부모와 환경이 생각이 났으면 지금 자신이 처한 실제 환경과 얼마나 다른지 비교를 해보면 좀 다른 부분들도 있고 생각보다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어떤 아이는 자상한 엄마를 원할 테고 어떤 아이는 웃음이 많고 재밌는 엄마를 원할 테고 또 어떤 아이는 착하고 배려심이 많거나 센스 있는 엄마를 좋아하기도 할 겁니다.

잘 안 맞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자신의 영혼이 태어나기 전에 선택했던 요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자신의 부모와 성격이 정말 맞지 않고 자주 트러블이 생긴다면 그냥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전생에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해 맺어진 인연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카르마 청산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좋은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없으면 우리는 물질계로 올수도 없고 지구체험도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몸을 주시고 사랑으로 잘 키워주신 것만큼 세상에서 그보다 고마운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부모님이 좀 부족한 부분들이 있더라도 자신이 선택했고 혈연으로 맺어진 인연이니 만큼 소중히 생각하고 감사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맘에 들고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삶의 큰 틀은 자신이 미리 결정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영혼의 빛으로 지상에 처음 내려올 때를 상상하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네요.

긴 글 읽어주신 모든 영혼들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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